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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필 ] 잡목이 주는 교훈: 201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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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 만 우
댓글 0건 조회 244회 작성일 18-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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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목이 준 교훈 / 이 만 우                                                                                                                                            

 

봄은 봄이로소이다. 영변 약산에는 진달래가 진홍색으로, 나의 고향 앞산에는 개나리가 노란색으로 봄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건조하고 흙이 거친 야산 정상에는 모질게 살아 남은 잡목이 늦으나마 봄소식을 전한다.  타성이 되어버린 계절이지만 이곳에도 어김없이 시절은 찾아온다. 겨울 내내 나지막이 엎드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가 봄기운에 기지개를 켜며 억센 모습으로  흰 꽃을 피워낸다

 

산행 중 이곳을 스치면서 천박한 환경과 흰색이 무슨 관련이 있나 하고 궁금한 적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답을 모르겠다. 흰색 하면 눈, 백합꽃, 등 청순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흰색으로 피는 것은 너무 강한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화려한 색을 가져도 벌 나비 초대에 경쟁이 치열한데 흰색으로는 승기를 잡기가 어려울 텐데 말이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쓸모 없다하여 잡목이란 이름이 주어진 작은 나무들이 거친 산을 지켜왔는지 모른다. 줄기는 가늘지만 단단하며 서로 얽혀 있다. 잎은 작지만 억세다. 꽃송이도 작고 단단하며 열매도 콩보다 큰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는 비바람 눈보라에 견디기 쉬운 자생적 모습일 것이다. 간혹 풀꽃도 보이기는 하는데 이들은 화려하지만 약하다. 동물들의 먹거리로 유혹에 빠지기 쉽다. 뿌리칠 방도를 강구해야한다. 그래서 꽃대를 높이 쳐들거나 때로는 가시로 무장하고 있다.

 

잡목은 어떤 운명으로 이곳에 정착해 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태어난 곳을 원망하거나 다른 곳을 넘보지 않는다. 강한 햇빛이 목을 태워도 스치는 구름에 야속한 내색이 없다. 높은 곳에서 푸른 나무들을 굽어보고 있어도 부러운 눈초리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밤이 되면 찬 이슬이 설 이어 목을 축여주고 선선한 바람도 찾아와 땀을 씻어주는 덕에 낮에 겪은 시름을 덜어낸다. 현란한 아랫마을 등불보다 해 맑고 포근한 달빛 속에 반짝이는 별들에 더 매료되어 밤을 지새우곤 한다. 이렇듯, 잡목은 야산에서 당한 고초를 참고 견디며 위로 삼아 만들어진 자기 고유의 모습에 만족하며 묵묵히 종을 이어왔다.

 

언뜻, 우리 주위를 살피면 화려하게 앞을 지나치는 이들을 마주치곤한다. 어떤 이는 열심히 일해도 살기가 힘들고 또 누구는 놀고도 잘 지내는 듯하다. 성급한 마음에 무엇인가 되어 보려고 여기 조기 기웃거리며 발버둥 쳐보지만 역부족이다. 더 가지면 행복한 줄 알고 이것저것 쓸어 안아보지만 즐거움도 잠시뿐 오히려 짐만 되었다. 대열에 뒤지지 않으려 힘껏 달려 보아도 앞을 달리는 이들과는 더 멀어져만 간다. 실망과 좌절의 순간들이 물밀 듯이 다가온다. 더구나 지금은 인생 후반에 접어드니 체력마저 약해지면서 꿈 하나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지 않나 싶어 더욱 서글퍼진다.

 

더듬어 보면 이는 오직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불가에서는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고통스럽고 존재하는 것도 모두 불안하다 하였다. 이것으로 위안으로 삼곤 하지만 짐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살아오면서 세월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때로는 사라져 버린 생물이 얼마나 많겠는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만도 기적이고 행운이다. 사회 일원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짐을 지고 오는 동안 비바람과 눈보라도 맞주쳤다. 어떻게 해쳐 나왔는지 기억이 없지만 남은 흔적은 어딘가에 옹골지게 남아 나만의 나를 만들고 있으리라. 그래도 사이사이 쾌청한 날이 끼어 있기도 해서 따스함과 포근함도 느껴보았으리라.

 

돌이켜 보니 지금까지 순간순간 겪어온 시련은 내일을 위한 준비에 불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모르고 그때마다 불평불만으로 이를 맞이했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을 떠올리니 씁쓸함을 금할 길 없다. 힘든 나날들은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달련 시키려는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 고난은 고난이 아니라 자연 일부로 함께 어우르기 위한 단지 나의 몫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보니 나를 괴롭혔던 둘러싸인 환경은 허물이 아니었다. 이를 어떻게 맞이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이 어떻게 만이 나를 행복 불행으로 가른다.

 

나지막하게 웅크리면서 앉아 있는 잡목들의 모습이 초라하게 보일 줄 모르지만, 이는 나름대로 생존하는 최선의 방식이며 열정적인 삶의 증거이다. 주어진 환경을 묵묵히 받아드려 자기만의 모습으로 다져온 이들, 겸손하게 자연과 우주에 순종하고 어울리며 강하게 종을 유지하는 지혜에 머리가 숙어진다. 삶이란 어차피 공수래공수거, 밑져야 본전이라  말들하지만, 그래도 가슴속에서 식어 버린 삶의 열정을 잡목의 교훈을 불씨로 삼아 다시 지펴보련다. 그리고 운명의 행진곡에 맞추어 힘껏 발을 내디디어 나도 지구에 다녀갔다는 작은 자국이라도 남기고 싶다


이른 아침 밖에는 어둠 속에 안개마저 자욱하다. 지척이 절벽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거친 환경 속에서도 봄이 찾아오면 흰 꽃을 만발하게 피워 내듯이, 곧 태양이 솟기 시작하면 안개와 어둠은 물러나고 눈부신 새날이 찾아올 것을.       06-21-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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