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2050년을 위해 인류가 준비해야 하는 것: 201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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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2050년을 위해 인류가 준비해야 하는 것
2018년 9월 11일
1부: 오직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 유효하다
인류는 전례없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모든 과거의 이론이 붕괴하고 있으며 어떤 새로운 이론도 이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례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와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2050년에 겨우 30대 초반일 겁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2100년, 곧 22세기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살아갈 겁니다. 오늘날 태어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이들이 2050년 또는 22세기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시대에도 직장을 얻고 세상을 이해하고 인생의 미로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기술을 가져야 할까요?
안타깝게도 오늘날 누구도 2100년, 아니 2050년의 세상 조차도 어떤 모습일지 알지 못하며, 따라서 누구도 이 질문의 답을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인류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했던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신체와 뇌, 마음을 제어할 수 있게 된 오늘날, 과거에는 고정되었고 영원할 것이라 여겼던 모든 사실들을 이제 확신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그 어느때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인 1018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미래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의 기본적인 요소가 크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1018년의 중국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1050년 쯤 송 제국이 멸망하고 거란족이 침입하며, 또 역병이 돌아 수백 만 명이 죽는 것을 겪게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1050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부와 베짜는 직공으로 일하고, 정부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군대와 관료를 가질 것이며, 가부장제가 유지될 것이며, 평균수명은 여전히 40세 언저리일 것이고, 인간의 육체적 특징 또한 전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1018년, 가난한 이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쌀을 파종하고 비단을 짜야할 것인지를 가르쳤습니다. 부유한 이들은 아들에게는 공자의 가르침과 서예, 말을 타고 싸우는 법을 가르쳤고, 딸에게는 검소하고 성실한 부인이 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1050년에도 이런 기술이 유용하리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중국만이 아니라 다른 세계 역시 2050년에 어떤 특징을 가질지를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으로 돈을 벌지, 군대와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어떤 관계를 가지게 될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떤 이들은 아마 지금보더 훨씬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며, 생명공학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을 통해 인간의 육체 또한 과거와는 비할 수 없는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대부분의 기술이 2050년에는 쓸모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보가 희귀한 것이었고 부족한 정보 마저도 검열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없었기에, 이는 매우 합리적인 교육방법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1800년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면 당신은 바깥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알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신문, 도서관 등 세상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어떤 도구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글을 알고 책을 접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소설이나 종교 서적을 제외한 책은 거의 없었습니다. 스페인 제국은 모든 국내 인쇄물을 철저하게 통제했고, 외국 서적 또한 검열을 통과한 것들만 드물게 허용했습니다. 당시의 러시아, 인도, 터키, 중국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근대적 학교 제도가 등장했을 때, 모든 아이들을 읽고 쓸 수 있게 만드는 것과 지리학, 역사, 생물학의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곧 인류의 거대한 진보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를 막으려 하는 이도 없습니다. 그 대신 어떤 이들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며, 우리의 관심을 불필요한 것으로 돌리게 만듭니다. 당신이 지금 멕시코의 한 마을에 살며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대부분의 시간을 위키피디아를 읽고, TED 강연을 보며, 온라인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정부도 그들이 원하지 않는 정보를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이제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것이 극도로 쉬워졌습니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클릭 한 번으로 시리아 알레포에 떨어진 폭격 소식과 북극의 빙산이 녹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또한 수많은 반대되는 주장들이 있어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알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역시 수많은 다른 주제들 때문에 사람들은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없으며, 또한 정치와 과학이 너무 어렵게 보일 때, 고양이 비디오나 연예인 소식, 포르노 영상은 더욱 유혹적이 됩니다.
이런 세상에서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장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이 더 많은 정보일 것입니다. 이미 학생들은 너무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신, 사람들은 그 정보가 합리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며, 무엇보다도 수많은 작은 정보를 모아 세상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이는 서구의 진보적 교육이 수백년 동안 추구해온 목표이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서구 학교에서는 만족스러운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정보를 직접 먹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권위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진보적인 학교로 하여금 거대담론에 대한 특별한 공포를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많은 지식과 약간의 자유를 줄 경우 학생들이 알아서 세상을 이해하고, 설사 그들 세대가 모든 지식을 하나의 일관된 세계관으로 승화시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래에 이를 해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을 것이라 가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일이십 년 내에 우리가 내릴 결정은 인류의 미래 자체를 결정할 것이며, 우리는 오직 우리가 지금 가진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뿐입니다. 만약 이 세대가 우주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가지지 못한다면, 인류의 운명 또한 그저 던져진 주사위에 의존하게 될 뿐입니다.
2부: 변화는 시작되었다
학교는 너무 많은 정보를 주입하는 것 외에도 미분방정식 풀이나 C++ 프로그래밍, 시험관의 원소 식별과 중국어 대화 같은 특정한 기술을 가르치는데 너무 전문화되어 있습니다. 2050년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기술이 가치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C++ 프로그래밍이나 중국어 대화에 너무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막상 2050년이 되었을 때,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프로그래밍을 더 잘하며, 새로운 구글 번역 앱이 만다린, 칸토니즈, 하카를 거의 불편함 없이 통역해줄지 모릅니다.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떤 기술을 가르쳐야 할까요?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가 다음의 “네 가지 C”, 곧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력(creativity)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곧, 학교는 구체적인 기술 교육을 줄이고 보다 범용적인 삶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정신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2050년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품을 발명하는 능력 못지 않게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재발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변화의 속도와 함께 경제적 변화 외에 “인간의 조건” 또한 변화하고 있습니다. 1848년, 공산당 선언에는 “모든 확실한 것들이 공기중으로 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사회경제적 구조였습니다. 2048년에는 물리적, 인지적 구조 또한 공기중으로, 혹은 데이터 클라우드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1848년에는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농장에서 직장을 잃었고,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도시로 옮겨갔습니다. 하지만 공장에서도 자신의 성별을 바꿀 필요나 새로운 감각을 개발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직물공장에서 일자리를 찾고 나면 남은 인생은 그 일을 하며 보낼 수 있었습니다.
2048년 사람들은 어쩌면 가상 공간으로 이주해야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별 역시 바뀔 수 있으며 인체에 이식된 컴퓨터에 의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하게될 수 있습니다. 3차원 가상 현실 게임에서 최신 의상을 디자인하는 직업이 이미 존재하며, 10년 내로 이 특정한 직업뿐 아니라 이와 비슷한 예술적 감각을 필요로 하는 직업에 인공지능이 도입될 수 있습니다. 즉, 25살 때 연애 사이트 프로필에 “런던의 옷가게에서 일하는 25살의 이성애 여성”이라고 썼던 여인이 35살 때는 “나이는 조정 중이고 성별도 따로 없음. 뉴코스모스 가상세계에서 신피질 활동을 하며, 인생의 목적은 지금까지 어떤 패션 디자이너도 가보지 못한 영역을 가보는 것”이라고 쓰게될 수 있습니다. 45살 때는 연애나 자기소개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저 적절한 알고리듬이 내게 딱 맞는 상대방을 찾거나 – 아니면 만들어 – 줄 겁니다. 패션 디자인 예술 분야는 알고리듬이 너무나 발달한 나머지 과거 당신이 만들었던 가장 뛰어난 작품 조차도 자부심 보다는 창피함만을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45살이면 아직도 지켜보아야 할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충분히 더 남아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누구도 우리가 보게될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떤 구체적인 미래도 실제 진실과는 거리가 멀겁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21세기 중반의 세상을 설명하고 그 내용이 마치 과학 소설처럼 느껴진다면, 그 예측은 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다른 이가 21세기 중반을 당신에게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전혀 과학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확실히 맞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미래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오직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이러한 심오한 변화는 삶의 기본적인 구조마저도 그 가장 확실한 특징을 바꾸면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인류가 문명을 만들기 전의 오랜 과거부터 인간의 삶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일을 배우는 시기와, 그 일을 하는 시기입니다. 삶의 전반부에 우리는 지식을 축적하고, 기술을 갈고 닦으며, 세상을 보는 관점을 세우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었습니다. 열 다섯살의 나이로 학교를 가지 않고 하루 종일 가족이 소유한 논에서 일하더라도, 그 시기 가장 중요한 것은 논 농사를 하는 방법과, 대도시에서 온 욕심 많은 곡물 매매상을 상대하는 법, 옆 논의 주인과 물과 땅을 두고 생기는 충돌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삶의 두 번째 시기에는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을 바탕으로 돈을 벌며 세상을 탐험하고, 사회에 기여하게 됩니다. 물론 50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쌀에 대해, 상인과 이웃에 대해 배울 수 있지만, 이는 일찌감치 배웠던 내용을 조금더 섬세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21세기 중반의 세상에서, 급격한 변화의 속도와 길어진 수명은 이러한 과거의 모델을 무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인생은 점점 더 잘게 쪼개지며, 각 구간은 연속적이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는 그 어느때 보다도 더 중요하고 복잡한 질문이 되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수준의 스트레스를 포함합니다. 변화는 언제나 스트레스를 동반하며, 일정한 나이 이후 사람들은 변화를 꺼려하게 됩니다. 15세의 아이에게 세상은 끊임없이 바뀌는 것입니다. 신체가 자라고 생각이 깊어지며,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며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개발하는데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십대는 이를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이를 신나는 일로 즐깁니다. 그러나 50살이 되면, 이제 변화는 두려운 것이 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과 싸우기를 포기합니다. 이미 가 보았고, 직접 해 보았고, 남은 것은 티셔츠 뿐입니다. 안정적인 삶을 선호합니다. 지금 가진 기술과 경력, 정체성과 세계관에 너무 많은 투자를 했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일수록 이를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50대에는 자신의 정체성과 인격을 크게 바꾸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뇌과학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비록 성인의 뇌 또한 과거 우리가 알고 있던 것 보다는 더 유연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십대의 유연한 뇌에는 비할 수 없습니다. 뉴런을 다시 연결하고 시냅스를 추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21세기는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정체성을, 직업을, 세계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떨어진 사람이 될 뿐입니다. 기대수명의 증가는 당신을 살아있는 화석으로 만들지 모릅니다. 이제 50살은 충분히 젊은 나이일 것이며, 따라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 단순히 경제적인 면을 넘어 사회적으로 –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신을 재발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소함이 새로운 표준이 되는 시대에 당신의 과거 경험과 다른 모든 인류의 과거 경험은 예전처럼 믿을 수 있는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개인으로써의 한 사람과 전체 인류는 초지능 기계나 강화 신체, 인간의 감정을 믿을 수 없이 정밀하게 조종하는 알고리듬, 인류에 의한 기후 격변, 매 십년 마다 직업을 바꾸어야 하는 급격한 변화 등 지금까지 어떤 인류도 겪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대해야 합니다. 완벽하게 전례가 없는 이런 상황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막대한 양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고 이를 흡수하거나 분석할 방법이 전혀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엄청난 불확정성이 세상의 우연한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인 특성일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지적 적응력과 충분한 감정적 균형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당신이 가장 잘 아는 영역을 때로 포기해야 하며,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를 편안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히도, 아이들을 알 수 없는 것들에 익숙해지게 만들고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게 만들도록 가르치는 것은 물리학 공식이나 1차대전이 발발한 이유를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것으로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교사들 역시 20세기 교육을 받았으며, 이때문에 21세기가 요구하는 지적 유연성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산업혁명의 결과 우리는 마치 생산라인과 같은 교육 시스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을 한 가운데 커다란 콘크리트 빌딩이 서 있고, 내부에는 수많은 동일한 교실이 있으며, 각 교실에는 책상과 의자가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종이 울리면, 같은 해에 태어난 서른 명의 아이들과 함께 그 중 한 교실로 들어가게 됩니다. 매 시간, 어른 한 명이 들어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이 일로 정부에서 봉급을 받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지구의 형태를 이야기하고, 다른 이는 인류의 역사를, 또다른 이는 인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비록 인류가 이 방법으로 커다란 진보를 이루어냈다는 것을 부정할 이는 없겠지만, 이제 이 모델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쓸만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캘리포니아 교외와 같은 선진국 뿐만 아니라 멕시코 시골에도 적용가능한 모델은 없습니다.
3부: 인간에 대한 해킹
지금 내가 멕시코나 인도, 앨라배마의 구식 학교를 다니는 15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바로 이것입니다. 곧, 어른들을 너무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대부분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들 또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어른들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법이었고, 이는 그들이 세상을 잘 알기 때문이며 또한 세상이 느리게 변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는 다릅니다. 점점 더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며, 어른들이 말하는 정보가 시대를 초월한 지식인지, 아니면 오래된 편견인지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럼 무엇에 의지해야 할까요? 기술일까요? 하지만 기술은 더 위험요소가 많은 도박입니다. 기술은 여러 면에서 당신을 도와줄 수 있지만, 기술이 당신의 주도권을 가져갈 경우 이제 당신은 기술의 포로가 될 수 있습니다. 수천 년 전, 인류는 농업을 발명했지만, 이 기술은 소수의 엘리트만을 살찌웠고 다수 인류는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가 뜰 때 부터 해가 질 때 까지 잡초를 뽑고, 물을 나르고, 뜨거운 태양 아래헤서 옥수수를 수확해야 했습니다. 같은 일이 지금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술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가 확실하다면, 기술은 당신이 이를 얻을 수 있게 만들어 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삶에서 원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면, 기술이 당신의 목표를 조종하고 당신 삶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기술이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될수록, 당신은 점점 더 기술이 당신에 봉사하기 보다 당신이 기술에 봉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자신의 얼굴을 환한 스마트폰에 처박고 배회하는 좀비들을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그들이 기술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기술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럼 당신 자신에게 의지해야 할까요? 이 말은 세서미 스트리트(역주: 미국의 교육용 프로그램)나 옛날 디즈니 영화에서 나올때는 그럴듯하게 들렸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디즈니도 이제 이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 앤더슨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려 할 때 조차도 외부에서 가해지는 조작의 희생양이 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의 소리는 절대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는 우리 뇌가 본래 가지고 있는 생화학적 오류 외에도 국가나 이데올로기, 상업적 광고에 쉽게 휘둘리기 때문입니다.
생명공학 기술과 기계학습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은 더 쉽게 조작될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따르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코카콜라, 아마존, 바이두 혹은 정부가 당신을 조종하는 방법을 파악하고 당신이 반응하는 약점을 누를 때, 과연 당신은 당신의 진짜 자신과 그들의 지시를 따르는 자신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 교훈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교훈이기도 합니다. 바로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죠. 사실 철학자와 선지자들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충고는 21세기 오늘날 그 어떤 과거보다도 더 중요한 조언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노자나 소크라테스의 시대와 달리, 이제 당신을 당신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이들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코카콜라, 아마존, 바이두, 그리고 정부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스마트폰이나 당신의 컴퓨터, 당신의 은행 계좌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을 속속들이 이해하려 합니다. 당신은 오늘날이 컴퓨터 해킹의 시대라는 말을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말은 진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이 시대는 바로 인간을 해킹하는 시대입니다.
알고리듬은 지금도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사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보고 있습니다. 곧, 당신의 모든 걸음걸이, 모든 호흡, 모든 심장 박동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빅데이터와 기계학습 기술을 이용해 당신에 대해 점점 더 잘 알게될 것입니다. 이 알고리듬이 당신을 당신보다 더 잘 알게되는 순간, 이제 그들은 당신을 조종하고 조작하게 될 것이며, 당신은 그저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게될 것입니다. 당신은 매트릭스와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사실 이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알고리듬이 당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당신보다 더 잘 이해한다면, 당신을 움직이는 권력 또한 알고리듬이 가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당신은 알고리듬에게 모든 권력을 기꺼이 이양하고 알고리듬이 당신에게 최선의 것을 선택해 주리라 믿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저 편안하게 세상의 발전을 지켜보면 됩니다. 사실 당신이 특별히 해야할 일도 없습니다. 알고리듬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줄테니까요. 그러나 혹시 당신이 자신의 존재와 미래에 어느 정도 주도권을 가지고 싶다면, 당신은 알고리듬보다, 아마존과 정부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하며, 그들이 당신에 대해 파악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더 잘 알아야 합니다. 빨리 뛰기 위해서는 모든 짐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모든 환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건 매우 무겁기 때문입니다.
페페민트에서 가져 왔습니다.
원문은 영국의 Wired Magazine 기사입니다.
(https://www.wired.co.uk/article/yuval-noah-harari-extract-21-lessons-for-the-21st-century)
유발 하리리는 이스라엘의 40대 초반의 인류역사 학자로서
호모사피엔스 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인류역사학자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역사관, 통찰력, 가치관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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