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친구의 귀한 선물: 2017-12-15 > 문예 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문예 게시판

[수 필] 친구의 귀한 선물: 2017-12-15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 만 우
댓글 0건 조회 244회 작성일 17-12-15 00:00

본문




친구의 귀한 선물  

                                                                                                                                                                                                                

"야 친구야 선물 하나 보낸다. 귀한 선물이 될지 모르니 즐거운 마음으로 열어 보아라."  한참 연락이 없던 친구의 전갈이다. 잠시 후 선물이 카톡이란 포장지에 싸여 전달되었다. 궁금해 열어보니 내가 75세까지 살아있을 확률이 54%, 80세까지는 30%, 90세까지는 5%라는 내용이다. 살아 있다 해도 그 중 1/3은 병원 아니면 양로병원에, 다른 1/3은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 나머지 1/3만이 스스로가 자기 관리 할 수 있다한다. 100세 시대에 웬 말이냐며 믿어지지 않겠지만 설사 그 통계가 신빙성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자기는 아니다. 누구나 일상에서는 자기와 유사한 사람들을 만난다. 나의 경우 아직도 산에 오르고 자전거를 즐기고 달리기를 하고 여행을 자주 떠나는 선배를 주로 만나게 된다. 그래서인지 생존 통계를 믿고 싶지 않다.


지난주 정기검진 차 대학병원 대기실에 있었다. 그곳에서 기다리는 이들이 거의 노인이라는 점에 실로 놀랐다. 사회적으로는 나도 그 연령층인 듯 싶은데 나는 아직이다. 과연 그런가. 좀 오래전 성인 데이케어 센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정신이 건강하고 거동할 수 있는데 왜 일상 활동을 남에게 의지하는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그런데 요사이 그곳을 다시 방문하고 친구의 선물을  드려다 보니 내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알았다.



주말 산행을 마치고 양로병원을 방문했다. 그 곳에는 팔순에 접어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치 있는 유모로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선배 한 분이 있기 때문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이젠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다. 어제 그분이 오래전에 출연했던  코메디쇼, 영화를 유투브에서 찾아 다시 보았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있었다. 미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은 그가 유창한 영어로 관객으로 부터 폭소를 자아내는 솜씨에 놀랐다. 산행 내내 그분을 생각하며 같이한 산행이었다. 그곳에서 봉사하는 한 분이 우연한 기회에 사진첩을 보다 사진 속 나를 가리키며 내 이름을 기억해 냈다 한다. 뵈는지가 20년이 흘렀는데.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한번 와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벌써 찾아뵈리라 생각은 했으나 어디 계신지 모른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했다. 이야기를 듣고서 건강 상태가 이토록 심한지 미처 몰랐다.


그곳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휠체어에 의지하며 목욕 소대변 처리 식사 등 일상생활 대부분을 도우미에 의존한다. 환자 중에는  종교 지도자로서, 사회 단체장으로, 큰 사업장 대표로, 교장 선생님으로, 정부 관료로서...한때 사회에 큰 기둥 역할을 하신 분들도 있다. 가족이 찾아주어 외로움을 달래주는 이도 있지만 어떤 이는 가족이 없이 쓸쓸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내가 찾아간 선배도 찾는 이가 거의 없는 그런 분의 한 사람이다.


내가 잠시 들린다고  귀띔 해주어서인지 수염 머리도 잘 손질하고 복장도 단정하게 하고 누워있었다. 나는 산행 복장이라 예의에 어긋나고 저녁 식사 시간이라서 작은 선물만 전 하려했으나 온종일 기다렸는데 그냥 가면 매우 서운해 할 거란다. 할 수 없이 안내를 받아 다가가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내 받은 충격, 글쎄 차라리 말하고 싶지 않다. 몸을 일으켜 휠체어에 태워 식당으로 모셨다. 말하기가 불편해 옆자리에 앉아 나 혼자 내 묻는 이야기에 눈빛으로만 답을 하신다. 잠시 동안 이나마 손을 잡고 있는 동안 내 손을 꼭꼭 오므린다. 나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내 눈이 적셔진다. 식사가 준비되어 그곳을 나오려는데 옆에 계신 분이 가족이 없는지 찾는 이가 별로 없어 몹시 외로워하며 무심코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한다. 한때 유명세로 펜들도 있을 것이고 지인도 적지 않았을 진대 찾아오는 이가 별로 없다니. 정승의 모가 죽으면 조문객이 성왕인데 막상 정승이 떠나면 썰렁하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 세상인심인가. 나도 분명 예외는 아니다. 양로병원을 나서는 나의 발길이 무겁기 그지없다. 한편 구차한 일에 도움을 주는 봉사자들, 비록 직업이라 하더라도 기꺼이 맡아준 간병직원들의 손길에 감탄하며 고마움을 전한다.  그들의  영혼에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양로원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아닌 양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막상 안을 살펴보니 이는 내 일이고 내 가족의 일이고 내 친구 내 이웃의 일임을 다시 알게 되었다. 친구가 보내준 선물에서 세상에 없을 확률이 75세 46%,  80세 70%,  90세 95% 라는 보이지 않는 숫자가 모습을 들어 낸다. 이 숫자 속에는 곳곳한 나를 연하게  밖으로만 돌리던 내 눈을 안으로 보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살만큼 살아도 철이 안 드는 풋풋한 내 마음이 안타까워, 그래서 친구는 귀한 선물이라 했나 보다. 한해가 지는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진다. 그 속에 외로운 이들의 숨결도 사이사이에 끼어 깊고 은은하게 들려온다. 모두  이를 놓치지 말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Copyright © 한미 산악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