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유레카 !: 201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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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 -산 고고니오(11,490 ft) 산행기 / 이 만 우
산고고니오 산으로 나서는 어둠 속 찬 공기는 도시 불빛을 더욱 초롱초롱하게 만든다. 혹시 퍼밋이 남아있나 해서 관리사무실 게시판을 살피니 다행히 원하는 비비안크릭 트레일에 여분이 있었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탓인지 예상 밖의 일이다. 일찍 도착했는데도 하이킹전용 주차장에 빈틈없다. 생동감 있게 사는 모습에 덩달아 일원이라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뿌듯하다. 오늘은 처음부터 느슨하게 산행하리라. 그래서 이곳까지 지정보다 낮게 달려왔다. 그 덕에 스치는 도시의 모습이 낱낱이 눈에 들어오고 드높은 새벽하늘의 은은한 변화도 가슴으로 찾아온다.
짐을 챙기는데 옆에 도착한 20대 중반의 데이브라는 청년이 인사를 건넨다. 초행이라 조금 긴장되고 설레기도 한단다. 온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아주 여러 번, 가끔 정상에서 밤을 지낸다 했더니 눈을 크게 뜨며 산행 정보를 캐묻기 시작한다. 나는 1.0마일정도 가면 강을 건너라는 안내판이 나오고 강을 건너면 트레일 입구 사인이 보이고 1.0마일 더 가면 퍼밋이 필요한 윌더니스 지대에 들어선다고. 그리고 2.0마일도가면 할프크릭 야영장, 이곳에서 2.5마일 오르면 하이그릭 야영장이 나오는데 이곳은 식수가 흐르니 처음부터 많은 물은 필요 없다는 말도 덧 붙였다. 하이트릭에서 정상까지는 3.5마일이지만 대부분 더 길게 느껴진다는 말도 전했다. 안내서에는 트레일 입구부터 왕복 17.5마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주차장부터는 20.0마일은 족히 된다고 일렀다. 시간 조절, 에너지 안배, 트레일 상태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다. 이 청년도 정신없이 나와 함께 한다. 초발심을 잊지 말고 앞으로 위트니, 레이니어, 데날리, 와스카란, 에베레스트 꿈꾸기를 바란다는 끝말로 헤어졌다.
평시보다 늦은 출발이지만 오늘은 혼자이고 느긋한 산행이니 상관없다. 느긋느긋 아주 느린 속도로, 1.0마일마다 쉬고 자연의 친구인 새 바위 나무 플 바람 어울려 한 계절을 마무리하는 모습도 유심히 보리라. 트레일 입구에서 보이스카우트 한 무리를 만났다. 기분이 어떠냐는 나의 인사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화답한다. 애들이 귀엽다. 새벽 산길에서 맞는 특별한 느낌을 주기 위해 2.0마일 정도 산행을 하고 벌써 하산 중이란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마음을 심어주는 리더가 존경스럽다. 가슴이 따스한 이들의 행복한 앞날과 미국의 희망이 엿보인다.
경사진 돌길을 심장에 물어보며 천천히 오르막길을 걸었다. 고요하게 퍼지는 여명에 도시가 기지개 켜며 소란스런 하루가 시작된다. 부스러진 고사목이 개울을 가로질러 누워있다. 수십 년을 길손에게 건널목이 되어주다가 이젠 견디다 못해 허리마저 부러질 것 같다. 안쓰럽다. 아침 햇살이 울창한 숲 나뭇가지 사이로 직선으로 내리꽂으면 나뭇잎의 프르름이 선명해진다. 숲을 뚫고 온 빛을 받아 피어오르는 안개는 승무를 능가하는 춤사위를 만들어낸다. 이곳은 새날을 이렇게 맞는다. 눈부신 신의 솜씨를 전하고 싶지만 소박한 내 글감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저 가슴에만 담아둔다.
잠시 쉬고 있는데 큰 짐을 메고 내려오던 중년 두 여성이 옆에 배낭을 내려놓는다. 할프크릭에서 야영했다며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며 호들갑을 떤다. 이어 얼마 전에 산이 된 샘킴을 아느냐고 묻는다. 그분의 발디 산 1,000번 산행을 채워주기 위해 200명과 함께 한 산행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분명하다. 나도 뜻을 함께 하기 위해 1001번째 산행을 정상에서 밤을 지냈다하니 눈을 크게 뜨며 나의 산행기록을 캐기 시작한다. 그리 경험이 많은 이가 사고를 당한 연유를 묻는다. 나는 설명 대신 “산행은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울리는 것이며, 그러면 산은 기대 이상으로 보답 한다”는 말로 대신했더니 ‘진짜 산 사나이의 조언이란 명구’로 꼭 기억하겠다며 인증 삿을 청한다. 시간이 많이 늦어지고 있다 느긋한 덕에 전에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 듬뿍듬뿍 다가온다. 그간 마주치는 이를, 조잘거리며 흐르는 물, 시원한 공기를 느낌 없이 스쳐버렸다. 이 질주하는 모습은 내 일상과 다르지 않았다. 버겁게 보내는 하루하루를 되돌아본다.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이 남아 있을까하는 생각도 언뜻 지나가고, 만일 윤회가 있다면 나무나 돌 바람 혹은 시냇물이 되어 오고 싶다.
가시가 종아리를 스치는 숲을 헤치며 할프캠프에 도착했다. 하이크릭에서 밤을 지내고 하산중인 건장한 5명그룹을 만났다. 간밤에 정말 추었다며 꽁꽁 언 물병을 증거로 내게 건넨다. 늦은 내 산길이 걱정스러운지 2시 이전에는 반드시 하산하라고 당부한다. 경험자만이 할 수 있는 충고이다. 짐은 무거워도 간밤에 끌어안은 환희에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지그재그 산허리를 휘감으며 오르니 하이크릭 야영장에 이른다. 연중 물이 흐르는 계곡, 곰도 사슴도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일전에 이곳에서 야영한 적이 있다. 쪼그리고 앉아 라면을 끓이는데 곰이 뒤에서 같이 먹자며 기다리고 있었다. 인색하게도 쫓아 버렸다. 심상치 않아 남은 음식 모두를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그런데 잠시 후 커다란 곰은 나무로 올라 음식 머니가 매달린 가지를 흔들고 있지 않은가. 옆 텐트 청년이 총으로 멀리 보냈으나 그래도 의심스러워 음식 주머니를 내려 웅덩이에 넣고 큰 바위로 덮어 놓으니 안심되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보니 곰이 다 먹어 버렸다. 라면 수프까지도. 이튿날 새벽 등정하고 내려와 보니 곰이 다시 찾아와 텐트를 찢고 들어가 배낭을 샅샅이 뒤져 남은 스낵마저 모두 먹어치워 쫄쫄 굶은 적이 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이다.
모두 하산하는데 나 홀로 정상으로 향하고 있다. 우려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3시 훌쩍 넘어서 정상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긴 숨을 가다듬으며 확 트인 사방을 둘러보니 드높은 하늘 속에서 나는 그저 안개임을 실감한다. 하이크릭 야영장에서 인사를 나눈 제미슨이 덥석 옆에 앉는다. 온몸에 특공대처럼 온갖 장비를 갖추고 있다. 안전을 위해 아내 성화에 못 이겨 준비했다고 한다. 자기는 야영하고 다음 날 내려가지만 나의 늦은 하산에 걱정되는지 재촉하며 자리를 비운다. 고요하고 적막한 텅 빔 속에서 얽힌 마음은 이미 대지의 평온으로 녹아 버렸다. 능선을 넘어선 해는 제 시간표에 따라 바다를 향하여 기울기 시작한다. 4시가 조금 넘어 하산했다.
구불구불 느려진 내리막길을 하루 소임을 다해가는 식은 해가 서녘 하늘을 검붉게 물들이며 비추고 있다. 대야에 꼿꼿했던 마음도 이를 보면 착하고 순해진다. 하이크릭에 이르렀다. 제미슨 씨가 저녁 준비에 열중이다. 기다려 한술 뜨고 가라는 권유지만 고맙다는 말만 남기고 발을 이었다. 먼 발치에 도시 불빛이 점차로 밝아지기 시작한다. 도시는 하루를 세상 빛으로 마감한다. 해는 바다 속으로 서서히 잠기면서 어두움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달님은 어디서 구시렁거리는지 도무지 나타나지를 않고, 대신 별들이 할 말이 있는 양 반짝이며 하나둘 나타난다. 산이 하루를 접는 방식이다. 별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가득하지만 이를 전하려하나 내 감량으로는 어림도 없다.
고요한 산 중, 내 발길이 내는 소리와 숨소리만이 움직임을 알린다. 그 소리가 계곡에 반향을 일으켜 산속으로 퍼져 나가면서 정적을 깬다. 지내오면서 무수한 내 발자취가 세상에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 궁금하다. 어둠이 무겁게 산을 덮어버렸다. 그림자조차도 떠난 자리, 홀로 상상을 펼치며 발길을 이은 사이 할프크릭에 이르렀다. 여기저기서 헤드램프 불빛이 번쩍인다. 처음에는 야영 인인 줄 알았다. 불빛 두개의 동시 움직임이 이상하여 살피니 사슴들의 눈이 내 헤드램프에 반사되는 빛이었다. 왠지 다정스럽다. 큰 빛이 사라진 산야, 자연과 우주와 함께 어우르면서 모두는 결국 하나임을 들어낸다. 이 모두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분위기가 홀로인 나를 평화롭게 감싼다. 밤새도록 푹 묻혀있고 싶다. 어둠이 깊을수록 마음은 몸을 모두 던져 버리고 더 먼 우주를 향해 훨훨 나른다. 시간아 멈추어라. 영원히 젓고 싶구나.
평온에 취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안 야생보호 지역을 벗어나는 트레일 입구에서 1.0마일 지점 능선에 섰다. 커다란 배낭 멘 청년을 맞는다. 할프크릭 야영장을 향하는 길이란다. 무엇이 야밤에 홀로 산행을 하게 하는가. 궁금하지만 이젠 알 것만 같아 미소를 지워본다. 그 시절 나의 명 사찰 순회 탐방이 기억난다. 고뇌에 찬 삶에서 한 수 건질 양 이리저리 방황하다 답을 뒤로하고 훌쩍 떠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닌가.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다. 야밤에 홀로 산행하는 것이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오히려 평온함을 느낀다고 답한다. 두려움은 마음 상태이다. 침묵과 고요 속에서는 자유롭게 자연과 우주와 소통할 경계가 없는 풍만한 언어가 있다. 마음이 주저 없이 이들과 이야기 나누면 두려울 사이가 없다. 이러한 야간 산행의 또 다른 이점은 심신을 단련시켜 사는 동안 마주치는 벽을 뚫고 견디어 내는 힘이 길러진다.
능선 너머로 나를 맞이할 현실의 불빛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다시 그 자리다. 주차장에서 혼자 기다리는 자동차가 커다란 감옥 같은 세상에서 잠시 달아난 나를 마치 강제 구인하려는 듯 버티고 서 있다. 원하면 언제든지 이곳으로 안내한다는 다짐을 받고 호송차에 몸을 실었다. 진솔한 자연의 친구들과 하나가 되어 자연스럼게 어우른 오늘에 감사한다. 나는 자유를 만났다. 유레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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