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도: 2017-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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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
이 만 우
여름의 풍성한 기운 속에 가을의 쌀쌀한 손길이 불쑥불쑥 내민다. 두 계절 사이로 이른 아침 자전거 길을 찾아 나선다. 고속도로는 마치 나만을 위한 듯 넓게 펼쳐놓고 어서 달려보란다. 속도계 눈치를 보며 가스 페달을 밟는다. 그러나, 어느새 속도 제한 사인이 불쑥 나타나 나를 당긴다. 그러면 늦추어진 속도에 평온해지면서 마음은 먼동 트는 동녘으로 향한다. 느낌이 없는 달림, 이 편안한 속도가 나의 진정 삶의 속도이다. 타인의 속도에 신경 쓰는 탓에 진정 자신의 속도는 알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삶의 과속을 알리는 사인 판이 가슴 어딘가 있을 진데 제대로 작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해는 구름 사이로 얼굴을 삐쭉, 쇠마는 나를 시얼/롱 비치로 향하는 아주사 출발 지점에 내려놓는다. '산 가브리엘 강 트레일'이라 불리는 이 자전거 길은 37마일, 고도 819ft에서 시작하여 시얼/롱비치 13ft 고도에서 맺는다. 하향 길은 숨이 콧바람이지만 상향 길은 헉하는 가슴 바람이다. 왕복 할 시 에너지 분배에 신경을 써야하고 배에 비축한 에너지를 정리할 기회이기도하다.
강물이 바위와 부딪히며 치솟는 강가 입구에서 산타페 댐 (Baldwin Park)까지 6마일은 사막지대다. 아주사 계곡을 들락일 때 이곳은 불모지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니 선인장 꽃이 즐비하고 산책로가 있는 야생공원이다. 언젠가는 천천히 산책해 보리라. 식수 저수지 등 치수 시설에 마음 주다 보니 어느덧 커다란 산타페 댐에 도착했다. 300ft 이상 둑을 쌓아 올려 만든 댐, 1938년대 홍수 후 1949년에 완공되었다. 설마가 아닌 궁극으로 대비하는 자세가 믿음직 스럽다. 둑 위로 산책로, 자전거 순환도로가 잘 정돈 되어 있다. 남쪽 광활한 지역에 펼쳐진 도시를 내려다보며 걷고 달리면 막혔던 가슴이 펑 뚫리는 기분이다. 죽기 전에 걷고 달려봐야 하는 길 목록에 넣고 싶다.
댐을 내려오면 다시 산 가브리엘 강가로 길이 연결된다. 말이 강이지 물 없는 바닥에는 마른 잡초들만 무성하다. 초입에 산 가브리엘 자전거 길이라는 사인과 함께 정자 같은 휴식처(Shalan Res. Stop)가 있다. 이곳에서 왕복 60마일 여정이 시작되니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준비사항을 재점검 한다. 찬물과 커피 스낵을 파는 가브리엘 아저씨, 인상과 마음 씀씀이가 일치한다. 구수하고 넉넉하다. 얼음을 무료로 제공하고 펌프 등 자전거 수리 공구를 펼쳐놓고 필요한 이들에게 편의를 준다.
마른 강가 길을 따라 605Fwy 교차로 밑을 통과하고 작고 큰 공원을 지나 60Fwy까지는 조금 내리막 길이어서 편안하다. 하지만, 근육 단련에는 도움 되지 않는 불균형 편안함이다. 다음 피코 리베라, 위티어 시 지역에 들자 주위가 산만하다. 정신이 범벅인 예술인들이 자전거 길 위에 뽐낸 솜씨를 지운 흔적들이 자주 눈에 띤다. 길가에는 쓰레기가 여기저기 즐비하다. 쓰레기장과 자매결연 맺었나 보다. 공사판에 버려진 판자들을 다 모아 만든 양계장, 남미 어느 나라로 다시 온 기분이다. 그래도 그 속에서 알을 낳고 꼬꼬댁하며 닭이 우는 소리는 정겹다. 불법인지 합법인지 마구간도 보인다. 누가 아는가 갠터기 더비 우승자가 이곳에서 탄생할는지. 간혹 물줄기가 보이는 곳과 나무 그늘이 있는 곳이라면 여지없이 텐트가 쳐 있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일단 홈리스 혹은 호프리스 라 말해두자. 세련된 고가부터 엉성한 것, 튼튼하고 잘 정돈 된 것, 빈 텐트처럼 느껴지는 것들도 있다. 여타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빈부차와 부지런한 자와 게으른 자가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텐트는 내가 산쟁이라서 그런지 그냥 넘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쓰레기는 참을 수 없다. '가능한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치우리라‘라는 목표를 세운지라 한발 다가서지만 이곳에 쓰레기는 개인으로서는 해결에 엄두가 나질 않는다. 도대체 시나 강 관리인들은 무엇하고 있는지, 당장 그들에게 달려가 책상을 주먹으로 치며 내 세금 내놓으라며 큰소리치고 싶다. 하지만 오늘이 일요일이지 하며 꼬리를 내린다.
그런 사이에 다우니 윌더니스 공원을 지나니 바닥에 낙서 흔적이 줄어들고 쓰레기도 텐트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14마일만 달리면 종점이다. 바다에서 오는 맞바람이 구겨진 기분을 상쾌하게 씻어낸다. 골프장도 지나고 작은 공원도 스친다. 엘도라도 공원 너머 405Fwy 도 보인다. 종점이 다가왔음을 말한다. 물로 가득한 강 옆에 말끔히 정돈된 길이 편안함을 더 해 준다. 롱비치 앞바다가 은빛으로 반짝인다. 갈매기가 칼날 춤을 추며 먹이를 찾는 모습도 모인다. 드디어 종점인 37마일 지점, 리버 엔드 까페 (River's End Cafe)에 도착했다. 달려오는 동안 몸과 마음의 속도가 어떠했는지 어렴풋이 계산해본다. 마음 속도가 몸 속도보다 더 빨랐음이 답이다. 평온을 잃었다는 증거이다.
이미 해는 머리위에서 화염을 뿜어내고 있다. 이어 비치가로 6.5마일 달려야 오늘 목표인 롱비치이다. 돌아 갈 길이 멀어 롱비치는 힐긋 쳐다만 보고 다음에 하며 아쉽게도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은 약간 오르막길이다. 그러나 기아를 저속으로 하면 극복이 된다. 그 대신 발 회전이 분주하다. 속도가 나질 않아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괴로운 것은 엉덩이 사이가 아파서 안장에 앉을 수가 없다. 엉덩이 반쪽씩 번갈아 안정에 기대면 페달을 돌리나 회전이 느려저, 차라리 내려서 자전거를 모시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하향길 보다 갑절은 머나 먼, 그래도 끝은 있는 법이다. 느릿느릿 쉬엄쉬엄 드디어 댐 밑 휴게소에 도착했다. 왠지 모두 나에게로 시선이 꽂힌다. 더위를 뚫고 온 부러움인가 아니면 격려의 눈초리인가. 관심 없이 덥석 의자에 누어 버렸다. 이젠 마음 속도와 몸 속도가 바닥이다. 머리 복장 자전거 모두 흰색인 분이 나를 툭 치며 네 자전거에 바람이 없는 것을 아느냐고 묻는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올라왔느냐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사실 너무 힘들었다. 별생각이 다 들었다. 전화해서 픽업 오라 할까, 어제 몇 시간 잤더라, 무엇을 먹었지 등. 결론은 세월 탓으로 돌리고 입을 악물고 페달을 밟았다. 물론 세월 탓도 있지만, 자전거 상태도 분명 상당 부분 일조했다고 본다. 덕분에 운동 한번 빡세게 했다. 육체의 고통은 종종 영혼을 맑게 해준다더니 정말 기분이 상쾌하다. 오체투지 하는 이들의 심경을 떠올려본다.
벌떡 일어나 다시 댐 둑을 향해 페달을 힘껏 밟았다. 둑에 섰다. 석양과 어울려 펼쳐진 탁 트인 시야, 시원한 바람이 피로를 덜어 준다. 공원에는 놀이를 마친 이들이 집으로 향하는 행복한 차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제 나를 기다리는 자동차까지는 6마일 남았다. 아침에 보았던 선인장 꽃이 왠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속도를 유지해야 자연으로 향하는 문도 열리나 보다. 마라톤에선 마지막 1 마일이 지옥이다. 자전거 주행은 특히 오늘은 마지막 5 마일이 그렇다. 지금 바라는 것은 민족 화합도 아니고 장수도 아니고 인류 평화는 더욱 아니다. 오직 시원한 물과 아이스크림뿐이다. 삶이란 생존의 한 모퉁이에서는 이런 모습이다.
프레임에 의지하여 둥근 두 바퀴가 평형을 유지하며 달리는 자전거, 페달에 수고하는 자가 있어야 목적지로 향하여 나간다. 두 바퀴는 둥근 것은 속도만을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야만 두 축과 프레임이 조화롭게 기능하기 때문이다. 삶도 그러하리라. 선과 악, 거짓과 진실, 정하고 부정한 것, 슬픔과 기픔, 속과 밖의 양변에서 하나만 취할 수는 없다. 관계에 의지하여 평형을 유지하려면 다듬어 져야한다. 그래야만 관계와 조화를 이루어 더 나은 삶을 향하여 질주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는 고통이 수반되는 삶의 페달을 밟아야하는 수고와 인내가 필수이다. 그러면 큰 기픔이 이를 극복하는 동안 사이에 끼어 찾아온다. 인생 페달을 힘껏 밟아 달려보자. 너와 내가 함께 어울리는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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