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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온 글, 봄의 길목: 2017-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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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lbert
댓글 0건 조회 233회 작성일 17-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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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길목


유 경환(劉 庚煥 詩人-언론인 1936~2007)


흙의 默念(묵념)을 위해 눈이 덮이고 추위가 머문다. 이젠 다음 순서로 겨울이 걷힐 차례다. 그런 기운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雨水(우수) 지난 지 한주일. 경칩도 열흘 뒤에 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흙속 목숨들이 움틀 시기다. 갈숲 뒤로 쏟아지는 놀에서 가슴 저려오는 울음기의 봄을 느낀다.


겨울들판은 흙의 죽음이 아니었다. 다만 魂(혼)의 묵념일 뿐이다. 묵념 끝에 흙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가. 흙의 영혼으로 되살아나는 들풀, 그 작은 실뿌리들이 푸른 언어(言語)로 흙을 살려내기에 봄을 예찬한다. 땅 밑 부드럽고 훈훈한 흙의 켜켜에서 지금 한창 가는 뿌리들이 고개 치켜들고 있음을 안다.


순수의 첫 햇살맞이를 무슨 색깔로 할까 가슴 두근거리며 地表(지표)에 바싹 떡잎을 치켜올리는 싹들. 싹들은 메마른 들판의 정서공백, 이를 메울 공간예술을 구상할 것이다. 씨줄 한 가닥 날줄 한 가닥 사이사이로 북을 옮겨 한치씩 베를 짜는 길쌈이듯, 자연은 너른 땅을 풀뿌리로 한 치씩 살려내니, 목적은 결코 수단을 고달프게 여기지 않는다.


사람이 진실로 삶을 배울만한 곳은 아직도 흙이다. 들판엔 보이지 않는 조형미술이 이미 가득하다. 그것을 봄기운으로 들을 수 있다. 요즘 한낮의 아지랑이 속에 서면 누구나 들을 수 있잖은가. 흙속의 풀싹이 저마다 제 모양을 갖춘 文字抽象(문자추상)으로 봄빛의 조명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곧 판화처럼 화려한 자연을 만날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황량한 자리에 목숨의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감지하면 새삼스레 無所有(무소유)가 자연의 으뜸가는 질서인 것을 깨닫게 된다. 아, 홀가분한 무소유.


때마침 큰 보름이었다. 조선백자의 둥근 멋과 너그러운 흰빛의 原型(원형)인 보름달의 조용한 높이를 보며 이제부터 곱게 스러지는 아름다움을 기다려본다. 척박한 땅은 없다. 오히려 척박한 것은 사람의 가슴이다.(문화일보 고정 칼럼 ‘숨결’ 1977/02/24)


     註 : 내일, 일요일에 춘분을 맞습니다. 이곳은 겨울이 끝나고 새 생명을 움틔우는 봄이 왔는가 싶으면 후다닥 계절의 바뀝니다. 지난 해 5월, 우연히 웹사이트(중앙일보 [J플러스] 언론 명문 열전)에서 읽은, 봄의 정취를 묘사한 칼럼을 초여름에 접어들고서 옮깁니다.


● 꽃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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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land, CA, Mar./17/2017 09:2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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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land, CA, Mar./17/2017 09:43 AM


     지난해 4월, 드높은 담장을 온통 푸르름의 너울로 물결치게 했던 담쟁이(졸문 〈봄의 傳令 3〉게재) 사방팔방으로 이어진 줄기만 보여줍니다. 땅의 정령精靈을 길어 올려 잎새를 피우기에는 아직은 이른가, 봅니다.

     메말라 시커멓게 그을린 줄기가 안쓰러워, 담장 앞의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가 일찍 꽃을 피웠습니다. 샛노란 세 송이 꽃, 꽃잎이 ‘봄이여, 어서 와서 즈려밟아 주시오! 외칩니다. 역광의 햇살이 꽃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2017/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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