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ways Something Else!: 2017-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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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ways Something Else! - 작은 등불 (4/29~5/1/2017 Mt. Whitney)
봄과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과 여름마저 함께 하는 곳, 위트니 산(14,495ft)에 다녀왔다. 신고만 하고 들어가는 기간에 매년 한두 차례 등락이었지만, 4월 말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이다. 트레일 입구(8.340ft)부터 크레스트 트레일(13,650ft) 만나는 지점까지 계곡을 따라 발길이 만든 직방 눈길이다. 이어 절벽 위에 늘어진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이어지는 크레스트 트레일에는 군데군데 쌓인 눈과 얼음이 한 걸음 한 걸음을 긴장시킨다. 마지막 정상으로 향하는 길도 눈으로 덮여 있어 직벽으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을 늘리고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산에서는 길이 없는 곳 없다고 한다. 찾고 만드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오늘도 누군가 밟은 자국이 보인다.
정상으로 향하는 트레일 캠프(11,750ft)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매년 연중행사처럼 이곳으로 오르는 길에 하산하는 지인들을 만나곤 했는데 올해는 무슨 연유인지 눈에 뜨이지를 않는다. 마음은 푸르른데 도중 지레 겁먹고 돌아선 것이 아니기를. 꿈을 잃어버리면 늙는다던데 설마. ‘길리만자로에 표범’이란 노래에서, 산 기슭기를 어슬렁거리는 하이네가 아니라 산정 높이 올라 굶어 죽은 표범이고 싶다고 했다. 높은 정신이야말로 진정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임을 암시하는 노래이다. 고산 등반가들은 늘 늘어놓는 말이다. 며칠 전에 발디 산에서 세상을 달리하고 자연의 일부가 된 한 선배의 정신이기도 하다.
늦게 트레일 캠프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3시 조금 지나 잠자리에서 나섰다. 아무도 없는 칠흑 같은 밤, 경사가 급해지니 숨이 거칠어진다. 한 발 한 발에 정성과 정성이 필요하다. 눈과 얼음 길에서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벗, 크램폰과 아이스엑스의 용감한 쇳소리가 나를 지키며 정적을 깬다. 함께 있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믿음직스러운 녀석들. 비록 저승이 저편에서 슬쩍 손짓해도, 곁에만 있어 주면 비록 혼자라도 두려움이 가신다. 꼭 필요한 짐만 챙겼는데 어깨를 짓누르고 마음도 항상 예상을 빗긴다. 비우려 고산을 찾는데 홀로인 산길에서는 늘 머리에서 맴돌던 삶의 자국들이 주춤거리다가 가슴속으로 뛰어든다. 장편 소설보다 더 긴 이야기가 살살 다래를 풀기 시작한다. 이에 간간이 미소를 짓고, 후회스러워 한숨을 짓기도 한다. 때로는 깊은 고뇌가 찾아와 눈물을 자아내기도 한다. 일상에서 마주한 일들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드렸는데 새삼스레이 그 가치가 소중했음을 하나씩 하나씩 들추어진다. 이 모든 이야기가 어두운 정적 속에서는 세상에서보다 오히려 더 크게 길게 깊게 다가온다. 삶에 어디 정답이 있으려 마는 그래도 선을 그어놓고 저울질한다. 그리고 드디어 정상에 서게 되면 시끄럽고 엉터리 같은 언어는 사라지고 알 수 없는 큰 감탄만이 사로잡는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집 앞산에 올랐을 때의 그 느낌으로.
두 시간쯤 지났을까 저 아래 불빛 두 개가 반짝인다. 그러면 그렇지, 마치 친한 친구를 만난 양 반갑다. 혹시 사라질세라 자주 확인한다. 사실 어두움 속에서 눈 벽을 치고 오른다는 것은 육체적 부담에 심리적 부담이 더 보태진다. 캠프장에 혼자라는 것을 알면 혹시 하며 마음이 쓰일 때가 있다. 바람은 뜻밖에 잠잠했고 눈 상태도 크램폰과 아이스엑스를 받아 줄 정도는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바람이 거세거나 눈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이를 핑계 삼아 하산 쪽으로 기운다. 잠을 적게 잤어도 컨디션이 좋다. 혼자라는 것 이외에는 하산해야 할 이유가 없다. 물론 동행이 있었으면 서로 의지는 되겠지만, 구실을 붙여 하산하자면 안전이 우려되어 따르게 마련이다. 내일도 모래도 위트니 산은 여기 있으니까 하며 그럴듯한 변명을 하면서.
불빛이 다가오기를 천천히 기다렸으나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보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어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새날을 알리는 여명이 하늘을 물들인다. 고산에서 여명과 일출, 일몰과 석양을 접하는 일도 산을 찾는 목적 중 하나이다. 해 돋이는 여명속에 희망의 메시지와 함께 일용의 에너지를 듬뿍 안겨주고 일몰을 하루 삶을 가즈런히 챙겨 놓고 수고 했다면서 내일을 약속하며 서서이 잠긴다. 드디어 두 청년이 불쑥 나타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미니에나 폴리스에서 온 불빛이었다. 초행이라며 와 본 적이 있느냐고 묻기에 두 주먹을 폈다 쥐었다 했더니 이런저런 질문이 쏟아진다. 그들은 나보다 더 늦게 캠프장에 도착했다. 새벽에 일어나, 막상 정상으로 향하려 하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언덕 위에서 반짝이 불빛이 보이더란다. 그는 무릎을 치며 ‘Always Something Else!’하며 용기를 내어 출발 했다고 한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Same to me, Always Something Else! 응수하며 손을 굳게 잡았다. 나의 작은 머리 등불이 누군가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었다니, 지친 몸과 마음이 확 씻기는 기분이다.
고산에 들어서면 산은 보이지 않고 예상을 넘는 고통과 고뇌가 수시로 변하며 뒤범벅이다. Always Something Else in the Mountain! 때로는 아름다움과 감탄이 다가 오기도 하지만 이는 잠시 뿐, 산을 나와야 진정 산이 보인다. 산에서는 줄곧 과정뿐이다. 정상의 맛도 역시 잠시뿐이다. 낡은 수레가 달그닥이며 짐을 실어 나르듯, 아래에서 위로 다시 아래로 눈위를 등락인 지친다리가 나를 다시 산 밑으로 내려 놓았다. 어둠 속에서도 정상은 안전하산을 확인이나 하듯 줄곧 굽어보고 있다. 일상 삶도 이와 같지 않은가. Always Something Else in life! 살아오면서 예측할 수 없는 희노애락에 섞여 살다가 나이가 지긋해지면, 산에서 내려와야 산이 보이듯, 삶이란 하며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은가. 계곡마다 쌓인 하얀 눈이 눈부시다. 앙상한 가지에 소복이 쌓인 눈이 곧 사라지듯 이 눈도 바윗덩어리만 남을 것이다. 근육질로 풍만했던 한 아버지의 노년의 등뻐처럼. 그래서 더 아름답다. 오늘도 큰 스승인 산을 찾고 한 수 건네받고 돌아선다. 위트니 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안전하게 돌려보내 주어서. 이를 알아 차린 듯 산은 손짓으로 답한다. 또 오라고. 다음에는 무엇을 일러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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