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20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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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입니다.
시인 정지용(1902 ~ 1950)은 우리나라 현대시의 아버지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입니다. 정지용은 이상의 시를 「가톨릭 청년」에 소개했고,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을 「문장」지를 통해 추천했으며 해방 후 윤동주의 저항시를 경향신문에 소개하고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우리 시문학사의 원조 주류입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 정지용은 월북한 빨갱이 시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그의 시는 물론 이름마저도 철저히 금지되었습니다. 1988년 해금과 더불어 정지용이 우리 곁으로 되돌아온 이후 그의 시가 교과서에 실리며 노래로 만들어졌고, 그에 관한 논문과 평론이 쏟아져 나오면서 정지용의 명예도 회복되었습니다.
정지용은 우리 현대시에 최초로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찬사를 받음과 동시에 일부 평론가들에게 그의 현실이 배제된 기교주의의 극치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190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정지용은 1926년「학조」라는 잡지에 등단했습니다. 그는 1929년 일본에서 귀국한 후 휘문고 교사와 이화여대 교수를 지내며 다양한 문단활동을 했고, 1950년 전쟁 중에 실종될 때까지 두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산문집을 남겼습니다. 길지 않은 창작 기간임에도 정지용은 1930년대에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정지용은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낸 후 휘문고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갔고 그 이후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1929년부터 16년 동안 휘문고에 교사로 재직했습니다.
그에게 대표적인 친일파이던 휘문고의 설립자 민영휘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그 때문에 정지용은 친일시인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의 1927년 작품「향수」에서 어머니를 부인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것도 민영휘의 영향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휘문고 교사 시절인 1930년대가 시인으로서 정지용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절이지만, 여전히 그의 시 중에는「향수」가 가장 크고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대중의 관심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그 시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향수」가 그토록 큰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정서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크게 자극했기 때문일 겁니다.「향수」에는 시적 기교뿐 아니라 고향 냄새가 물씬 풍기는 토속어들이 옹기종기 박혀 있습니다.
1989년에는「향수」가 노래로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전해까지 접근조차 금지되었던 정지용의 시가 대중가요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노래가 수록된 이동원의 앨범은 130만장이 팔리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향수」를 이동원과 듀엣으로 부른 서울대 박인수 교수는 대중가수와 듀엣을 불러 음반을 냈다는 이유로 국립오페라단에서 제명당했습니다. 실제로 음반이 크게 성공했지만 박 교수는 단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플래시도 도밍고로 불리던 박 교수는 제명에 그치지 않고 동료 성악가 사이에서 맹비난을 받으며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음악가들에게 클래식은 대중음악과 다르다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이는 종교와도 같았습니다. 차기 국립오페라단장으로 거론되던 우리나라 대표 성악가가 그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을 했기 때문에 파문은 더욱 컸고, 국립오페라단 해체론까지 불거졌을 정도입니다.
박 교수의 희생 덕분인지 지금은 그 당시와 많이 달라져 그의 후배 성악가들은 여러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저는 박인수, 이동원의 노래 「향수」를 미국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박 교수가 그런 시련을 당하신 것도 모르고 역시 한국의 도밍고 답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향수」는 우리 대중 가요사에 보석과도 같은 노래입니다. 혹시 이 노래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기회에 적극 추천합니다.
향수(鄕愁)」 전문, 『조선지광』 통권 65호(1927. 3.)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湖 水1
얼골하나야
손바닥둘로
폭가리지만
보고싶은마음
호수만하니
눈감을밖에
해바라기씨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롱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지다.
우리가 눈감고 한밤 자고 나면
이실이 나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시약시 인데
사흘이 자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로 왔다가
소리를 깩! 지르고 간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고리 고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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