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하늘과 땅 사이...하신토로 향하며: 201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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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사이-산 하신토로 향히며 / 이만우 (12-11-2016)
시간이 내일을 숨기 듯, 묵직한 안개가 이른 아침 산 하신토(San Jacinto 10,808 ft)로 달리는 길을 가로막는다.
안개속에서 불쑥 나타난 맥도날드 노란 간판, 어서 오라 반긴다. 비가 올 것인가 눈이 내릴 것인가 저울질하던 중인데 프렌치 프라이 튀기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아침이나 해결하자며 디지털 메뉴판을 치켜본다. 문뜩 이름도 거창한 디럭스 브렉퍼스트가 눈에 띤다. 소시지, 베이컨, 머핀, 스크램블 에그, 팬케이크,....멋진 사진에 군침이 돈다. 이에 커피와 프렌치 프라이를 곁들이니 말 그대로 디럭스다. 누가 감히 정크 푸드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정도라면 산 하신토 삼부능선까지 오르는데 필요한 에너지로는 충분할 것 같았다.
잘게 부서진 물방울이 늘 게으름만 피우던 차 앞유리 와이퍼를 바쁘게 만든다. 부채꼴 모양으로 터진 유리창으로 구름 사이사이로 직선으로 내리쪼이는 빛이 마치 누군가에 축복을 내리는 행사장처럼 들어온다. 이어 구름 틈새가 점점 커지더니 두꺼운 구름층은 서서히 북쪽으로 밀리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눈도 비도 아닌 쾌청한 날씨가 예상된다. 갑자기 하늘이 기분좋은 모양이다. 늘 빙빙 돌아가던 풍차 발전탑 날개는 늦잠을 자는지 멈춘 모습이 엿보인다. 전에는 비효율이라는 눈총에 고장 난 체로 방치되었다가 청정 에너지 정책에 따라 수리하고 신설하여 팜 스프링 일대를 발전소로 만들어 놓았다.
에어리얼 트램웨이(Aerial Tramway)이라 불리는 케이블카를 타기 정유장으로 들어섰다. 대기실을 가득 메운 각지에서 온 이들, 처음인 듯 신기해 두리번거리며 줄을 서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플라스틱 눈 썰매를 들고 아빠 엄마 손을 잡고 서 있는 아이들, 아직 가격표가 달린 배낭에 헬멧을 쓰고 눈 놀이 기대감에 젖어 있다. 30여 년 전 우리 가족 모습도 그 속에서 보인다. 회전 케이블카로는 제일 크다고 자랑하는 에어 트램웨이는 전문 등산객이 걸으면 일곱 여덜 시간 필요한 롱 벨리(Long Valley 8,420 ft)까지를 단 15분만에 해결한다. 80명을 태우고 회전하면서 팝 스프링지역과 산 하신토 산 계곡 풍경을 파노라마로 출현시킨다. 탄성의 합창이 일체이 터진 다. 다발의 쇠줄을 지탱하는 철탑 기둥을 지날 때마다 중력 감소로 느끼는 쾌감에도 동시에 함성을 지른다. 문명의 이로움에 대한 힘인지 자연을 파괴하는 힘인지는 모르지만, 모두 감탄한다.
오래전는 겨울에 롱 밸리도 일찍 눈이 쌓여 애들의 놀이터로, 여름에는 늘 안장을 찬 조랑말이 손님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부산스러워 자연이 쫓아냈나? 다행히 조금 높이 있는 라운드 밸리(Round Valley 9,060ft) 지역은 늦도록 눈을 듬뿍 품고 소나무를 울창하게 길러낸다. 오늘도 소나무 숲 사이로 눈이 제법 보인다. 입산 허가 신청서에 목적지를 ‘정상’이라고 써넣었다. 관리인은 오후 두시에는 무조건 돌아 서라는 당부다. 나는 이미 3시경 정상, 6시 하산, 9시 집에 도착이라는 시간표를 짜놓고 있어, 건성으로 대답했다.
처음부터 얼음끼가 약간 서린 눈길이다. 눈이 내리면 길이 모두 잠기는데 고맙게도 누군가 첫 발을 디디면 다음을부르고 다음이 다음을 ...연속으로 이어져 눈길이 된다. 바른 길 인지 모른 채로 모두 이 길을 따라 나선다. 우리 삶의 길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다. 언젠가는 이에 보답 코저 처음 길을 만들어 보리라. 겨울이면 억세게 불어대는 바람도 오늘은 책장을 넘길 때 일으는 정도로 살랑인다. 라운드 밸리에 도착했다. 먼저 마실 물을 채우려 꼬마녁석 오줌처럼 졸졸 흐르는 수도 꼭지를 찾는다. 이미 꽁꽁 얼어 있었다. 이제부터 일 마일 가량은 제법 가파르다. 아침에 위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맥도날드 에너지가 실력을 발휘할 때다. 덕분에 쉽게 험버 팍(Humber Park)으로 넘어가는 웰멘 디바이드 새들(Wellmen Divide Saddle 9,720 ft)에 올랐다. 엘에이, 다운타운, 카타리나 등 활짝 열린 서쪽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등정에 나선 이가 몇몇 않된다. 아마도 어제 과한 년말 파티 피로에 늦잠들을 자는가 보다. 이제 2.3 마일만 가면 정상이다. 경사는 완만하나 눈과 얼음이 신경 쓰인다. 그러나 산 능선을 휘감을 때마다 옆에 펼쳐지는 경관에 앞도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다.
작은 집 하나가 보인다. 대피소다. 8명 정도 잘수 있는 공간이다. 일전에 이곳에서 밤을 지낸적이 있다. 눈이 깊숙하고 눈보라도 곁들인 밤이었다. 거금을 투자하여 산 신형 텐드를 시험할 겸 정상에서 잘 계획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날씨가 호통치는 바람에 도망치 듯 하산을 서두르다 텐트를 그만 두고 내려 왔다. 그 후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보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지금 혹시 하며 두리번 거려본다. 눈이 깊은 바위 사이를 비집고 오르니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표지판과 마주 섰다. 산야 사막 도시 바다가 목전이다. 파노라마 경치가 펼쳐진다. 오를 때마다 이름 값을 톡톡이 하는 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다가 목전이다. 엘에이 근교 산을 오를 때마다 먼저 찾게되는 두산 , 발음이 비슷한 정상이 대머리인 귀업운 발디산(Mt. Baldy 10,068 ft),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제일 높다고 위용을 자랑하는 산 고고니오(San Gorgonio 11,490 ft)도 눈 앞 이다. 표지판은 여전히 비스듬하게 돌무덤에 서 있다. 언제 어디서 보아도 정겹다. 인증 삿으로 몇 장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역시 정상은 정상이다.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더니 점점 강하게 분다. 어서 하산하라 제촉하여 발길을 돌렸다.
석양을 놓치지 않으려 서둘러 태평양을 향해 확 트인 웰멘 디바이드 새들에 도착했다. 그러나 해는 이미 숨어버렸고, 대신 저녁노을이 기다리고 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다시 인증 삿 찰칵. 저 아래 팜 스프링 시가 불빛이 눈에 띠기 시작한다. 중천에 떠 있는 달도 소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고 별들도 반짝이며 눈길을 밝힌다. 밤새도록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옮겼다. 한참 후 이상한 느낌이 들어 살피니 잘못 가고 있었다. 늘 다니는 길이니 안심은 되었지만 초행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장담키 어렵다.
정적이 가라앉은 호젓한 나만의 밤길, 하늘과 땅 사이 숲속에서, 사람과 사람의 인연 대신 자연만이 관계를 맺고 싶었는데 , 하는 수 없이 헤드램프에 도움을 요청했다. 작은 문명의 도움을 받아 하산했다. 안전하산을 알리는 증표로 입산 허가증 사본을 굳게 닫힌 관리사무소 문 옆에 비치된 함에 넣었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고요한 숲속에 밤, 밝고 둥근달이 중천에서 내려다보고 그 주위에는 백 댄서인양 별들이 제 능력껏 반짝인다. 질세라 팜 스프링 시의 등불도 노랗게 반짝이고 있다. 진한 산소가 가득한 싸늘한 공기가 가슴을 들락이며 피로를 풀어 준다. 영영 이곳에 머물렀으면, 그렇지 않으면 기억 속에서라도 늘 살아남아 종종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 긴 드라이브를 무릅쓰고 이곳으로 자주 찾는가 ? 욕망과 호기심이 부른 오늘이 그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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