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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Unfinished Job: 201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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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 만 우
댓글 0건 조회 179회 작성일 16-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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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피니쉬드 잡- 산 고고니오 등정 길에서 / 이만우 (12-18-2016)


여타 여행과 같이 예상에서 빗나가는 경우는 산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리창을 두드리며 내리던 비는 내 가슴도 함께 두드린다. 이 비는 높은 산을 하얗게 덮고 있을 것이고, 열성인 누군가 길을 터놓으리라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우습게도  꿈 속에서 눈을 맞으며 예비 산행을  경험한다. 이튿날 이에 준해서 배낭을 채우니 제법 묵직하다.


어두컴컴한 이른 아침 주차장에 도착하니 날씨가 예상 보다 쌀쌀하나 눈은 적어 안심이다. 일 년 전 이곳은 눈이 깊어 주차장조차 제설작업을 포기할 정도였다. 당연히 일 마일도 못 가고 포기한 적이 있다. 덕분에 빅 베어 일대를 여유롭게 낮은 곳에서도 얼음 숲을 걸어보는 행운을 얻었다.


하늘을 뚫고 솟아있는 정상 (San Gorgonio 11,490 ft)부근에 눈 상태에 의구심을 품으면서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빼내어 무게를 줄였다. 헤드램프에 비진 길 상태는 비교적 좋다. 어제 많은 이들이 다녀간 자국이다. 최소한 하이캠프(5 마일 지점)까지는 그랬다. 의외로 걷는 이가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는 일월 멕시코 최고봉 오리사바 봉(Orizaba, 17,011 ft) 등정 목적으로 훈련 차 온,  티화나에서 한밤에 출발했다는 젊은 남녀가 초행이라면서 먼발치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바로 밑 마을에 산다는 이십 대 후반 네 명 나를 앞질렀다. 그리고 하이캠프에서 야영을 하고 등정에 나서려는데 아무도 오른 이가 없어 하산한다는 이십 대 초반 두 명 뿐이었다. 아무도 오르지 않았다는 말에 신경이 쓰인다.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앞지른 네 명이 눈이 수북이 쌓인 경사면을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고 있었다. 말대로 아무도 오른 흔적이 없다. 더구나 트레일이 눈에 완전히 감추어진 상태이다. 자기들은 초행인데 와 본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양손을 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더니 웃으며 앞서달라고 부탁한다. 무용의 기분으로 능선을 향하여 직방으로 처 오라 갔다. 한참 후 돌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돌아선 것이 문명했다. 따라오던 멕시코 남녀는 일찌감치 포기한 것 같았다. 복장과 장비 상태를 보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선에 올라서니 산 하신토가 먼저 나타난다. 구불구불 내발자국이 줄지어 있다. 아마도 다음 사람이 내 발자국을 따라오리라. 비교적 바르게 선택하여 오른 감이 든다. 서산대사의 ‘답설’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 함부로 걷지 말라 / 오늘 걷는 발자국은 / 뒤 오는 이에 이정표가 될지니”.


눈길을 살필 때마다 늘 떠오르는 시구이다.


일 마일 가량은 눈이 제법 깊다. 다행히 눈 표면에 어럽프시나마 나타난 선이 길인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소나무에는 온통 옥색 얼음 꽃이 주렁주렁,   “할 수만 있다면 /  할 수만 있다면 /  이 모두 따다가 / 그대에게 주련만 / 나 연약하여/ 마음만....” 라고 읊조려 본다.

그러나 날씨가 더워지면 언제 떨어저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로 변할지 모른다. 헬멧을 가지고 왔어야 했다. 높아질수록 송이가 더 커지면서 해볕에 강하게 반짝인다. 글로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남자라면 야 ! 여자라면 어머 ! 이외는 다른 표현이 있을까?  말과 글의 옹졸함을 실감 한다. 이  경이로움에 누가 답을 가지고 있을까.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아 경이롭다 찬탄하면서 찾아오니 아이로니이다. 나 때문에 퇴색되지는 아니한지. 해가 서쪽으로 기우니 저 멀리 태평양 물 위로 반사되는 모습이 저녁노을을 방불케 한다.


정상을  이 마일 남겨진 깔딱 산 등 허리, 예사롭지 않게 살짝 녹은 듯한 얼음 햇살에 반짝이 펼쳐 있다. 크램폰과 아이잭이 작동하겠지 하면서도 설마 빙벽은 아닐까 하는데 무게를 더 둔다. 일 열로 툭 튀어 나온 부분이 트레일 임을 암시한다. 좌우 앞뒤가 온통 수북한 눈 설경이 수려하여 잠시 빙벽의 우려가 사라진다. 가장 두려움 앞에서도 제어가 되는 또 다른 수단이 있구나 하는 생각은 고산에서 늘 느끼는 감정이다.



빙벽을 조심스레 딛기 시작했다. 아이잭이 먹히질 않는다. 크램폰도 박히질 않는다. 미끄러졌다. 다행히 가까이 나무가 있어 제어할 수 있었다.  만일 제어에 실패해서 수백피드 아래로 미끄러 떨어졌다면 홀로인 산중에서 어떤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엄홍길, 라인 홀트등 유명 산악인들의  사고 이야기도 언뜻 스친다. 일 마일반 만 가면 정상인데 하면서 다시 시도 하나 만만치 않다. 무게를 생각해서 가벼운, 오래돼서 날이 무딘 크램폰과 아이잭을 가지고 온 것이 실수였다. 손끝이 시리어 장갑을 갈아끼우러는 차 그만 놓치고 말았다. 얼른 아이잭으로 잡았다. 장갑도 끈으로 팔에 연결 시켜놓아야 했었다. 고산 등반 시는 늘 그리 했는데, 왠지 오늘은 실수 만진창이다. 그간 산 고고니오 겨울 산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 했던 것 같다. 생명과 연결되는 사항인데도.  늘 정상에 서곤 했는데 오늘은 모두가 엇박자니 의구심이 난다. 그래도 한발 한발 전진, 그러나 곧 시간이 지체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이미 두시 반, 정상에 있어야 할 시간이다.

네 시 반경에는 하이캠프에 있어야한다. 그로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만일 계속 오르면 정상에 도착 시간이 네 시, 하산에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아쉽지만 돌아섰다. 마음먹기보다는 산 고고니오 정영이, 가족이, 나를 지켜보는 이들이 쫒아낸 것이다. 하산 길은 위험하고 시간도 더 걸린다. 굼벵이가 웃을 정도로 천천이 빙벽 구간을 나왔다. 안도의 숨을 내 쉰다.


내가 만든 자국을 따라 걷는 하산길, 비록 눈은 깊어도 편안하다. 하이캠프로 내려가던 길 중간쯤에 많은 이들이 왔다 돌아간 흔적이 보인다. 내 발자국 따라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오늘 밥값은 했구먼 하는 혼잣말을 한다. 지난 주, 산 하신토 밤 길에 누군가 만들어준 눈길이 고마워, 언젠가 나도 꼭 보답하리라 다짐했는데. 이렇게 빨리 차례가 올지 몰랐다. 산 정영이 알아 들으시고 임무를 부여한 것 같았다.


하이캠프를 지나니 해는 저녁노을 남기며 바다로 감긴다. 낯에 본 태평양에 빛나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나무 가지 사이로 바다까지 이어지는 도시의 불빛이 점점 진하게 밝아지기 시작한다.  별들도 하나 둘 나타나더니 하늘을 채우며 반짝인다. 달님은 어디서 궁시렁거리는지 보이지 않는다. 호젓한 산길을 걷는 기분은 본향으로 되돌아오는 것 같은 평온함을 안겨준다. 묵직한 침묵 속에서 온종일 벗이 되어준 소나무 눈길 얼음 꽃들아 고맙다. 다시 보자.


칠흑 같은 밤, 하늘 총총 별보다, 정신없이 반짝이는 도시불 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추운 주차장에서 홀로 기다리는 자동차 번호판이 내 머리등 빛에 반사되어 맑게 웃는다. 오늘 어느 빛보다 환하게 나를 반긴다. 지금까지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많은 선물을 싣고 갈 기대 하면서. 뒤죽박죽 얽힌 세상에서는 답이 없어 잠시 떠나 산을 찾았는데 산을 찾으면 찾을수록 산도 점점 몰라가는 멍청이가 되서 돌아온다. 그래도 또 찾는 이유는 무엇 인가?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어서 인가?   비록 언피니쉬 잡으로 하루를 마감 했어도,  삶이란 미완성인 체로 남겨지는  여정이라기에, 온 몸이 스멀거리고 어께가 굳어 있어도 기분이 상쾌하고 가슴이 뿌듯하다. 새큰 거리는 다리에게 상을 주고 싶다. 나를 둘러싸인 시간 상 공간 상 중중 겹겹 다른 세상이 있어 경험하는 그 맛, 참 맛있다.


또 어떤 산이 나를 두근거리게 만들까. 누군가 부른다. 위트니 (Mt. Whitney 14,495 ft) 인가. 나의 모습은 산에 있어야 더 어울린다고,...




To my Friends

I extend my Best Wishes for Joyous Holiday Season and Successful Healthy New Year.


Thanks for vie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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