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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밀레, 고흐: 201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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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초모랑마
댓글 0건 조회 229회 작성일 16-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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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퍼온글입니다.


감자의 원산지는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페루와 볼리비아 지역이고 수천년간 그들의 주식이었습니다. 감자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신항로 개척 이후 16세기에 유럽에 들어왔는데 초기에는 식용이 아니라 꽃을 보기위한 관상용이었습니다. 유럽에 상륙한 이후 감자는 성경에서 소개되지 않았고, 시체처럼 땅에 묻어야 자라는 이유로 악마의 작물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북유럽과 유럽내륙은 지형상 농지가 부족한데다 기후마저 열악해 애당초 농업보다 목축업이 성했습니다. 이런 탓에 주식인 밀과 보리를 남유럽에서 수입했지만 대부분 상류층의 식탁에 올랐고, 서민은 목축으로 얻은 우유와 육류에 호밀을 곁들여 연명했습니다. 그러다 18세기에 이르자 유럽에서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이때 놀랍게도 감자 덕분에 유럽의 식량난이 일거에 해결됐습니다. 기후와 땅이 좋지 않은 북유럽과 내륙은 농작물을 키우기 쉽지 않았는데, 감자만은 기특하게 쑥쑥 잘 자랐습니다.


감자는 북유럽과 유럽내륙 심지어 러시아의 황무지에 이르기까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랐고, 18세기 유럽 식탁의 주식 자리를 순식간에 꿰찼습니다. 감자에는 탄수화물과 비타민B 그리고 비타민C가 풍부합니다. 유럽 서민의 주식인 육류와 우유와 호밀에는 단백질, 지방, 비타민A는 풍부하지만, 탄수화물과 비타민B와 C는 부족합니다. 그런 이유로 육류나 우유를 감자와 곁들여 먹으면 3대 영양소와 필수 미네랄까지 거의 완벽하게 해결됩니다. 괴혈병 등으로 시달리던 유럽인들은 다시 건강을 찾았고, 인구는 더욱 늘었고, 도시와 마을은 활기를 띠었습니다. 감자는 신이 유럽대륙에 내린 축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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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


19세기 프랑스의 바르비종파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작품 《만종》은 《이삭줍기》와 함께 밀레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해질 무렵의 빛의 효과를 이용해 시적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창조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하루 세 번 교회 종소리가 울리면 기도를 했던 당시의 풍습에 기대어 고단하고 소박한 농촌 풍경이 경건하게 표현된 작품입니다. 저녁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한 가난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인 채 삼종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캐다 만 감자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교회당이 정지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밀레는 이 작품에서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적인 부분까지 고려해서 표현했습니다. 교회 위로 갑자기 무엇인가에 놀라서 날아오르는 듯한 새들의 움직임에서 종소리의 울려 퍼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1850년대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한 화가였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하였다고 합니다. 이 1000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만종》입니다.


《만종》뿐만 아니라 밀레의 그림은 온통 일하는 농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의 그림이 잘 팔렸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그림을 구입하는 사람 대부분은 돈많은 부자인데 그들이 가난한 농민의 모습을 좋아했을 리 없지요. 좋아하기는커녕 농민들은 천하고 무지하며 불결하다고 생각해 가까이 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부자들이 원하는 그림은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힘든 일을 하는 농민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화려한 실크드레스를 입고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는 우아한 귀족 여인의 모습이었죠. 하지만 밀레는 결코 그런 여인들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밀레이기에 ‘농부의 화가’로 불렸던 것입니다.


이 시대 프랑스 농민들에게도 감자는 간식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주식이었습니다. 일 년 내내 고생하며 밀농사를 짓지만 대부분의 수확물은 땅 주인이 가져가고, 농민들에게 남는 몫은 턱없이 부족했지요. 진정한 농민들의 농사는 바로 ‘감자 캐기’였습니다. 귀족들을 위한 밀농사가 끝난 땅에 그들의 농사를 지은 셈이지요. 그런 일용할 양식인 감자를 수확하면서 그 은총에 대해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농민 부부의 진솔한 모습이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어떻게 보면 그림 속 남자는 기도하는 대신 아내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모자를 손가락 사이로 돌리는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마 밀레 자신이 어릴 적 기도를 할 때 취했던 행동을 그대로 그림 속에 묘사해서일 겁니다. 


《만종》은 아주 많은 구설수에 올랐던 그림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그림 속 농부 부부의 발치에 놓인 바구니는 수확한 작물을 담은 바구니가 아니라 원래 죽은 아이의 관으로 그려졌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만종》을 자신의 작품 속에 수없이 담았던 살바도르 달리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실제로 루브르 미술관에서 X선 검사를 통해 바구니가 초벌 그림에서는 어린아이의 관 모양이었나 검증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달리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큼 정확한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설화같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회자되어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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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1880년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브뤼셀 왕립 미술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1885년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을 완성한 후 스스로 이 그림을 자신의 첫 작품이라고 언급하면서 이전 그림들은 모두 '습작'이라고 했습니다. 그 그림은 마치 밀레의 그림 《만종》속의 부부가 집으로 돌아와 감자를 먹는 풍경처럼 보입니다. 천장에 매달린 호롱불이 농민 가족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환히 밝혀 줍니다. 식탁에는 비록 찐 감자와 차 한 잔밖에 없지만 그들의 표정은 평온해 보입니다. 막 쪄 낸 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감자의 구수한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따뜻한 차 한 잔이 이들의 낡고 비좁은 공간에 온기를 채웁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밀레가 세상을 떠난 후에 우연히 《만종》을 보고 밀레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1882년 3월, 나는 상시에라는 사람이 쓴《장 프랑수아 밀레의 삶과 예술》이라는 책을 읽고 너무나 큰 용기를 가지게 됐단다. 정말 너무 감동적이고 재미있어서 밤에 한숨도 자지 않고 램프를 켜고 계속 읽었지. … 난 귀부인보다 농민의 땀이 훨씬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 먼지투성이, 조각조각 기운 흔적투성이 푸른 치마를 입은 농민의 딸이 훨씬 더 아름다워. … 밀레의 그림은 언제나 다시 그려 보고 싶은 것이었어. 그 농촌 풍경과 농부들은 내 멍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거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수한 인간의 삶. 그것이야말로 언제나 그리고 싶은 소재이니까. 씨 뿌리는 사람, 추수하는 사람, 그리고 그들의 일상생활 들. … 해가 뜨면 일어나 밭을 갈고 해가 지면 자기의 보금자리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이런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고흐는 밀레의 예술뿐만 아니라 삶까지도 자신의 모범으로 삼고, 밀레를 따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고흐는 그를 닮고 싶었기에 밀레의 작품을 무더기로 모사했습니다. 고흐가 모사한 그림 속에 담긴 열정, 철학, 그리고 가난한 농민들을 사랑하는 시선을 닮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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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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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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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의 첫걸음》, 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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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의 첫걸음》,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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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뿌리기》, 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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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뿌리는 사람》, 고흐




마지막으로 감자를 다룬 자연주의 화가의 작품 하나를 소개합니다. 그 화가의 이름은 쥴 바스티엥 르파주(Jules, Bastien-Lepage, 1848~1884) 입니다. 누구보다 사물을 진실하게 옮긴 화가로 36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화가입니다. 그림의 이름은 《10월, 감자수확》으로 1879년 작품입니다. 


자루에 감자를 담는 여인의 기쁘고 뿌듯한 모습이 너무 생생한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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