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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그리고 류큐 처분: 201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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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초모랑마
댓글 0건 조회 417회 작성일 16-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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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오키나와의 가슴 아픈 역사

 

"류큐 처분"이라는 용어가 한국인에게는 생소하게 들리는 단어 것이다.(오키나와 사람들에게 류큐처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한국 사람이 스스로 한일합방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과 같지만, 통상적인 표현을 위해 류큐처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류큐는 현재 일본의 오키나와현을 이야기하는 100 전의 지명이 뜻하는 오키나와 "유구국"이라 불리며 조선의 홍길동전에도 등장하며 지상낙원으로 묘사되어 있는 오키나와를 말한다.


오키나와는 13세기 무렵 갑자기 한중일 삼국의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완벽한 부족 단위의 원시 문명으로 대륙의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완벽한 원시 사회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던 개의 큰섬과 여러 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된 완벽한 독립 문명에 속한다.


이러한 해양 문명의 원시 상태 보존은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대만과 필리핀, 인도네시아도 그러하였다.  대만의 경우는 인구 90% 차지하는 고산족은 청일 전쟁 이후 일본에 할양되어 강제 점령 당하기 전까지는 중앙의 산속에서 거주하는 원주 부족민과 대륙과 해양 중계무역의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한 개의 해안 시설에 거주하는 외부인들의 거주지로 구분되어 오랜 기간 서로 일체 간섭하지 않고 자주적인 관계를 유지 해왔다.


대만의 외부인 거주지를 장악한 세력은 명나라와 청나라, 그리고 포르투갈, 스페인 다양한 외부 세력이 거쳐 갔던 지역이고, 청나라에게는 대만의 존재는 가치 없는 미미한 존재였기에 일본에 패전의 대가로 주어도 본토와는 관계없는 지역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청일전쟁의 주고받는 물건으로 취급돼 대만은 원주민인 고산족의 의견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본에 70 가까이 강제 점령 당하게 되었다.( "시디그발레" 라는 대만판 브레이브하트 같은 영화를 최근에 보고 대만에 대한 인식이 바뀌였다. 대단한 항일영화였다.)


대만과는 다르게 류쿠는 완벽한 자주권을 가진 문명권 국가로 13세기 중반부터 명과 일본 규슈 지역의 여러 () 들과 한반도의 조선 국가와도 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통해 중앙 집권 왕조 국가를 6 가까이 이루어낸 동북아 역사의 당당한 주체적인 독립국이었다


명나라와는 조공 책봉 관계를 통해 명나라의 제후국으로 인정받고, 류쿠 왕조는 그렇게 유지되어 오다가 명청 교체기의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일본의 규슈 지역의 사츠마 번으로부터 공격을 당했다.
3 명의 사츠마 번의 무사들은 류큐를 침략해 류큐 왕을 인질로 잡아가고 해마다 많은 양의 조공과 공물을 바치지 않으면 왕을 죽인다는 협박을 일삼았다.( 인질극은 3백년 가까이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역사상 가장 오랜 인질극이지 않나 싶다.)


명청 교체기가 끝나고 청나라 또한 류큐에 명의 제후국을 계승 요구하며 똑같은 조공과 공물을 받칠 것을 강요했다그렇게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 말까지 3 년간 류큐 왕국은 청과 일본의 사쓰마 번에 조공과 공물을 양쪽 모두에게 보내는 정책으로 왕조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이러한 관계가 3 년간 지속되어 오다가 1868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한 변화가 생겨났다.
메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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