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숲 3, 시간의 동결㉜: 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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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숲 3, 시간의 동결 ㉜
울울창창한 숲이 허락한 외줄기 길을 따라 걷습니다. 어슴푸레한 아침녘을 지나고 한참이 흘렀었으나, 산숲은 여태껏 고즈넉하기만 합니다.
고요하고 아늑한 숲에 온몸을 내맡기고 무상무념無想無念, 오로지 걷기에만 몰두합니다. 하찮은 생각들에 얽매여 떨쳐내기 어려웠던 속세俗世가 아닌, 선계仙界에 올라선 듯싶습니다. 마음은 지극히 평온해집니다. 고마움과 기쁨을 함께 누립니다.
● 한줄기 黎明 3
――― Muir Woods National Monument, Feb./16/2015 10:41 AM
야트막하게 굽어진 능선 따라 오르내리기 몇 번, 다시 오름세 꺾음 길로 들어서자, 해님이 환하게 밝음을 펼쳐줍니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바위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여린 잎새들, 파릇파릇 윤기 띤 올곧은 잎세, 딱딱함에 부드러움을 얹혀준 물기 머금은 이끼……모두가 햇살이 베풂으로써 자리하고 있습니다. 삶의 원천源泉입니다.
가까이 다가서자, 왼쪽으로 꺾긴 저 너머, 어둠이 자리한 그곳에는 무엇이 있기에 아침햇살도 미치지 못하는가? 의아심이 부쩍 들게 하고, 이는 불현듯 한 시구詩句를 어렴풋이 불러옵니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김동환(巴人 金東煥,1901∼?)의 〈산 너머 남촌에는〉2聯 첫 구절
그곳은 현세現世가 아닌, 삶아있음이 끝난 후의 저편, 영육靈肉이 모두 본래의 곳, 흙으로 귀의歸依하는 곳이기에, ‘빛깔 고운 하늘’이 아닌, 희뿌연 어둠이 무겁게 내려 앉아 군림君臨하나 봅니다.
아마도,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길목도 이와 같으리라는 생각이, 산숲에 머무는 내내 맴돌았습니다. (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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