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 시간의 동결㉞: 201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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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 시간의 동결㉞
금년 봄에 고국에 나갔을 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한 장의 사진’을 얻었습니다. 조카들이 누님 댁의 사진첩 20 여 권을 정리하다가 제게 건네준 아주 쪼끄마한 사진입니다. 사진 속의 꼬맹이는 바로 저이고, 저는 선친先親 앞에서 서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흑백사진의 검정과 하양색을 누르스레하게 바래게 했습니다. 사진의 크기는, 세로 길이 5.2㎝로 대충 엄지손가락만하고, 가로는 더 좁아 4.1㎝입니다. 예전에 이력서 서식書式 왼쪽에 붙이던 크기인 듯싶습니다.
● 접사closeup로 담아, 가로 900 pixel로 줄였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세월의 수레바퀴를 되돌립니다. 귀퉁이가 아래위로 접혔던 흔적이 남아있고 색깔이 바래 볼품없는 작은 사진 한 장이, 칠순의 초노初老와 열두서너 살의 꼬맹이 사이의 ‘심연深淵’을 헤집습니다. 60 여년의 시공時空을 뛰어넘음입니다.
선친은 넥타이는 매지 않으셨으나 양복을 입으셨고, 꼿꼿이 서심을 흐트러지지 않으시려고 뒷짐을 지셨고, 꼬맹이도 선친 따라 두 팔을 뒤로 돌리고 선친 가슴에 기대어 비스듬히 서있고, 선친은 이런 꼬맹이를 굽어보고 계십니다.
형님과 누님이 서울서 직장과 학교에 다닐 때, 5남2여의 막내는 인천 학익동에서 부모님 슬하에서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사진이 찍힌 연도는 확실하지 않으나, 국민학교를 1958년에 졸업했고, 그 2~3년 전인 1955~1956년인 듯싶습니다. 장소는 선친이 근무하던 회사의 운동장으로 기억됩니다. 선친은 방적紡績회사에서 경리를 담당하셨고, 운동회가 열린 날 꼬맹이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사진은 1-4 후퇴 때 내려와 대구와 부산을 거치며 “서울내기 다마내기” 놀림에 시달린 기억도 일깨워줍니다.
10여 년 전, 가을에 고국에 나가서 전철을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학익동에 갔습니다. 국민학교는 그대로 있었으나, 방적회사가 있던 드넓은 자리는 고층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고, 맞은편에 위치해 살았던 사택社宅이 있던 곳은 고만고만한 2-3층의 연립주택이 들어서있었습니다.
누님 댁에서 찾은 또 다른 사진 한 장으로 부모님을 다시 뵈었습니다. 누님이 연희동에서 사실 때, 앞뜰 정원에서 부모님이 함께 찍으신, ‘한 장의 사진’이 40여 년 시간을 동결凍結했습니다. ‘존재存在증명 부재不在증명’입니다.
어머님은 만 여든을 사시고 가셨고, 어머님이 가신 지 3년 뒤에 아버님도 같은 여든에 가셨습니다. 금년은 서른셋과 서른 주기周忌입니다. (201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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