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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저물녘 바닷가: 201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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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lbert
댓글 0건 조회 509회 작성일 15-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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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저물녘 바닷가

  

   금년 정월 사흗날, 바다의 신께 기원祈願드렸습니다. 새해에는 여태껏 이루지 못한, 마음비우기에 더욱 담금질하겠으니, 이끌어 주십사 빌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줄어들기커녕 늘어나는 노욕老慾을 조금씩이나마 떨쳐내고, 가슴 켜에 삭히지 못한 애달픔과 지우지 못한 앙금鴦衾을 털어내어, 남겨진 삶을 겸허히 맞이하겠다고 되풀이했습니다.

  

   하지만, 황당무계하게도, 다짐한 마음과는 동떨어진, 2년 전 고국에서 마주한 오이도烏耳島가 뇌리에 펼쳐집니다. 벌렁거리는 살아있는 갯벌이 끝없이 이어져야 할 저 너머를 가로막고 우뚝우뚝 서있는 시멘트덩어리들, 송도 신도시가 바다를 삼키고 있습니다.

    한번 꺼내어진 기억은, 꼬투리가 불거져, 25년 전으로 되돌립니다. 뉴욕서 처음 찾아온 나그네에게, 태평양 바다는 “여기서 일직선으로 쭉 나가면, 네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이 널 기다리고 있다.”고 일깨웠습니다. 이때의 느낌은 S.F. 등지의 서부 해변을 찾을 때마다 반복됩니다.


● 바다 거울, 시간의 凍結 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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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F. Ocean Beach, Jan./03/2015 04:50 PM

  

   이랑 진 모래에 썰물이 고여, 넓디넓은 해변 곳곳의 모래무지에 거울mirror을 펼쳐놓습니다. 태곳적부터 이어온, 밀물의 일렁임만으로 빚었습니다. 오로지 바다가 빚은 천연의 거울이기에, 갈매기가 지친 나래를 잠시 접는 쉼터이기도 합니다.

    해 저물녘 둥근 해가 저 너머로 슬어지려 내려와, 혼신渾身의 불꽃을 작렬炸裂 시킵니다. 불꽃은 어둠에 묻혔던, 혈기방장血氣方壯한 젊은이들이 달리기로 남긴 무지막한 발자국도 들춰 내보입니다.

    어슴푸레한 바다 거울에 비친 자화상自畵像은 낯섭니다. 무척 추접스럽게 보이는 얼굴은, 몇 년 더 풍상風霜을 겪은 모습을 앞당겨 보여주는 듯싶습니다. 늘그막 노인 얼굴人相은 그가 한평생 살아온 삶의 바로미터barometer입니다. 남을 배려配慮해온 사람만이 인후仁厚한 얼굴을 지니게 된다고 합니다.


밀물이여 너는 뉘대신 내게 왔는가’

 

   어느 시인의 시구詩句 한 구절이 바닷바람에 실려 옵니다. 고개 드니, 밀물이 이는 저쪽에, 보다 가깝게 피안彼岸으로 한발 더 다가서 있는 한분이 보입니다.

    홀로 우뚝 서있습니다. 뒷모습의 그는 분명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처럼, 그가 서있던 곳에서, 바다에 온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적묵寂黙의 그가 우러러보입니다. 이 순간을 담고 싶었습니다. (201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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