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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약속 - Will to Peak ( Mt. Whitney)-2: 201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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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 만 우
댓글 0건 조회 621회 작성일 1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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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약속 - Will to Peak ( Mt. Whitney)-2

 

날이 밝기 시작한다. 희망찬  햇살이 에너지를 가득 싣고 동녁을 붉게 물드리고 있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두 팔 벌려 달려오는 에너지를 듬뿍 안아본다. 언제 어디서나 감동적이고 신비스러운 여명, 항시 머리를 맑게 해 주고 몸에 힘을 실어 준다. 가파른 눈 발자국을 따라 힘을 모아 한발 한발 옮기니 드디어 능선에 올라섰다. 랭리, 화이트 마운튼이 목전에서 손을 흔든다. 이제 북쪽 눈 덮인 칼날 같은 능선 2마일만 통과하면 정상이다. 그러나 심신이 피곤한 상태에서 산소 농도기 비교적 낮은 13,500ft 고도에서 15,000ft까지 오르는 것은 아마도 보통 산에서 4마일 이상의 거리로 느껴질 것이다. 수차례 이곳을 지날 때마다 거리표시가 잘못됐다고 불평하곤 했다. 고산에서는 실제 거리는 큰 의미가 없다. 몸과 마음의 상태, 날씨, 주위환경을 고려한 마음의 거리로 다시 환산해야 한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겸손히 받아들이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길이 최상이다, 이것을 가르치려는 것이 산신의 바램고,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숨을 고르며 마치 늙은 황소가 삐걱거리는 마차를 끌듯이 뒤뚱이며 한발 한발 옮긴다. 정상이 지척인데도 좀처럼 다가오지를 않는다. 그렇지만 견디어내면 끝은 있는 법, 드디어 정상에 이르렀다. 미 대륙 최고봉, 정상은 언제나 감당키 어려운 벅찬 느낌을 안겨준다. 아랫마을 세상것들은 너무 작아 무시하고 눈길이 지나간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 끝으로 생각의 날개는 활짝 펴고 눈은 아득한 그곳으로 초점을 맞추어 다른 세계로 이어간다. 하늘처럼 맑은 영혼과 태양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영원히 안주하고 싶지만, 기우는 햇살이 눈짓을 준다 이제는 내려가라고.


고산에서는 올라가기와 내려가기가 다르지 않다. 모든 사고는 하산 시 발생한다. 에너지가 소진되어 몸을 가누기가 수월치 않고, 자기도 느끼지 못하는 고산증이 판단을 흩트려 뜰 인다. 터덜터덜 무사히 캠프장에 도착했다. 먼저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었다. 따듯한 물 한 모금이 그립다. 그런데 어디에 짐을 놓고 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기력이 소진한 상태에서 발목 이상으로 푹푹 빠지는 눈을 밟고 이리저리 찾아다녀야 하니 실망스러웠다. 삼사십 분가량 헤매다 예상치 않은 곳에서 찾아냈다. 지쳐 있어 그러한지 기억에 혼돈이 온 것 같다. 어제저녁 먹다 남아 미처 버리지 못한 누룽지가 먼저 눈에 띈다. 물을 더 붇고 따끈한 숭늉을 만들어 마셨다. 시원하고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다.


피곤하기도 해서 하산하려던 마음을 바꾸어 잠자리를 폈다. 그리고 내일 이른 아침 신선한 공기 속에서 일출을 보면서 하산하는 것이 멋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멀쩡한 하늘에 먹구름이 일더니  강한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레인저 말대로 눈이 내릴 것 같았다. 텐트도 없이 지내는 밤, 강풍 속에 눈보라를 맞는다는 생각에 서둘러 다시 짐을 챙겼다. 아직 눈길이니 주차장까지는 5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래도 안전을 위하여 피곤해도 내려가야한다. 산행에서 가벼워진 배낭으로 내려갈 때가  묵직한  짐을 지고 올라올 때보다도 훨씬 멀고 힘들게 느껴진다. 마음의 거리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마음 따로 몸 따로 눈길을, 바위를 밟으며 주차장에 도착했다. 맛있는 저녁을 상상하며 롱 파인으로 향하려 했으나 피곤해서 안전운전에 자신이 없었다.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마을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식당과 상점이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모텔에서 시원하게 더운 목욕이나 하고 잠이나 푹 자리라. 그런데 침대에 몸을 잠시 눕히자마자 곧 잠이 들고 말았다.


밤새 푹 자고 나니, 참신한 아침 햇살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눈 산이 내려보낸 시원한 공기가 머리를 말끔하게,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준다. 그러면서 본래 순순한 나 자신의 존재인 프르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막 떠오르는 태양의 힘찬 에너지가 몸 속속히 스며든다. 맞은편에 나란히 서 있는 랭리, 코코란, 르곤데, 말로리, 어바인, 맥아디, 뮤어, 위트니, 러셀, 깔리온, 투나보라 산봉우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환하게 웃으며 묵직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롱 파인 산군의 주인인 이들, 언제나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나한테서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래 곧 다시 오마.


산행이란 등정보다 등로란 말이 있다. 즉 산행은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상황을 즐기며 견디는 일이라는 뜻이다. 미끄러지고 넘어져도 낭떠러지로 구르지만 않으면 된다.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죽지만 않으면 된다. 돌아가서 치료하고 회복하면 그만이다. 골이 깊을수록 눈이 많이 쌓이듯 과정에서 이겨낸 역경이 많을수록 자기도 모르게 몸에 차곡차곡 쌓여 더 큰 어려움을 극복하고 위험한 고비를  넘길 수 있다. 외롭고 고독하게 사투를 벌이는 상황은 정신세계를 훌쩍 넘는 경험도 하게 한다. 고산 등반가들은 죽음의 문턱까지 수없이 등락했다고 실토한다. 이처럼 산행은 이론보다도 어려운 환경을 부딪치며 배우는 것이다. 그러면 언어로서 전할 수 없는 산행의 진수는 이에 저절로 따라온다.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고 한다. 어려움을 준비하는 자세일 것이다. 티베트 고산 만년설에서만 피는 설연화는 척박한 돌 틈에서 싹이 터 눈을 뚫고 피어난다. 고난을 받아드리며 즐기는 식물이다. 삶에서 준비하고 견디고 즐기는 것, 대자연 앞에서 겸허함을 차곡차곡 산행에서 배우련다. 산행은 우여곡절인 삶, 곧 인생이니까.            (3/28,29,30/2015  Mt. Whitney 산행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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