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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이 보인다: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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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 만 우
댓글 0건 조회 480회 작성일 14-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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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이 보인다

 

자칭 산쟁이라 이름 지으며 엘에이 근교 산들을 여러 해 들락거렸다. 땀을 훔치고 숨을 고르면서 산봉우리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눈은 산페드로 쪽으로 향하여 카타리나 섬을 찾고 있다. 쾌청한 날이면 은빛 파도 위에 출렁이며 떠 있고, 낮은 안개구름이 드리어져 있는 날이면 하늘에 두둥실 떠 있기도 한다. 이 섬은 내 신혼여행지이기도 하지만 그곳을 향해 시선을 계속 이으면 내 고향이 보일 듯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편안히 앉아 잠시 그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서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한 고향 산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마음은 어느덧 고향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어린 시절 추억을 불러낸다.

 

 내 고향 집 앞에는 안산이라 불리는 산과 그 뒤 좀 떨어진 곳에 조금 높은 백석산이란 산이 있다. 서쪽에 넓게 펼쳐진 바다에 아름다운 크고 작은 섬들을 안고 있는 이 두 산은 농사일로 고된 삶을 사는 마을 사람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곳이다.  대여섯 살 때쯤으로 기억한다. 안산에 한번 가보고 싶어서 엄마에게 같이 가자고 졸랐더니 “호랑이가 있어 안 된다”며 거절했다. 나는 섬뜩했다. 호랑이는 좀 무섭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투정부리면 엄마는 늘 ‘그러면 호랑이가 물어간다.’라고 말하곤 했었다.  

  

 어느 날 정말 궁금해서 엄마 말을 무시하고 혼자 나섰다. 지금 보면 작은 언덕이지만 그 당시에는 나에게는 큰 나무와 커다란 바위가 있는 높은 산이었다. 호기심으로 한편으로는 마음을 조아리며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혹시 호랑이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가슴이 조금 콩닥 거렸다. 그러나 처음 듣는 새 소리, 바람 소리, 이름 모를 꽃망울들, 눈에 보이는 모두가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다.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니  시야가 점점 넓어지면서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졌다. 저 멀리  바다위  햇살로 하앟게 반짝이는 잔잔한 물결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이젠 엄마가 말했던 호랑이는 보이지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다.  드디어 정상에 이르렀다. 서쪽에는 달력에서나 보던 망망 바다에 울창하게 숲이 우겨진 섬들이 떠 있고, 오른편 멀리 나무 사이에는 집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보였다. 남쪽에는 또 하나의 호기심인 백석산(하얀 바위가 정상에 있어.)이 생각보다 더 높게 우뚝 서 있었다. 꼭 올라가 보고 싶은 산이라서 그런지 더욱 웅장하게 보였다. 

   

 오후 4시경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점심도 안 먹었지만 배고픈 줄도 몰랐다. 가슴에는 새로운 기억만 가득 안고 싱글벙글하며 걸었는데 해 질 무렵에서야 집에 도착했다. 야단맞을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었으나 그것쯤은 각오하고 있다. 상관이 없다. 이젠, 안산에 궁금증이 풀렸고 호랑이가 있는 무서운 산도 아니라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날 밤 나는 낮에 격었던 새로운 경험이 아른거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백석산에 처음 오른 것은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소풍 가는 날이었다. 엄마가 싸준 달걀말이 도시락을 메고 내가 맨 앞에, 선생님은 맨 뒤에 서서 정상을 향하여 일렬로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대부분 아이들은 옆에 두고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보이는 것마다 신기해 마냥 즐겁기만 하다.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줄을 이탈하여 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저 싱글벙글 좋아했고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딱지치기 땅따먹기 자치기 하며 놀던 같은 마을  진우, 승재는 어떻게 지낼까?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 해주셨던 예쁜 허영애 선생님(아마 그 당시 22세쯤 되었고 큰형님과 혼사 이야기도 있었음), 지금은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을, 그분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새삼 소식이 궁금하다.  정상이 가까워지니 가슴이 설렌다. 하얀 바위 모습은 어떻게 생겼으며 그곳에서는 어디가 보일까 더욱 궁금해진다. 아마도 큰형님이 학교 다니는 서울이 보일 것 같았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사방이 확 뚫려 안산에서 보는 것보다 더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기대했던 서울은 안 보였고, 고모 이모가 사시는 인천만 어렴풋이 보였다. 하얀 정상 바위를 두 팔로 안아보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위는 위험하니 오르지 말라”는 선생님의 주의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매우 실망했어도 나는 꾹 참으며 언젠가는 꼭 한번 올라보리라는 기대감에 즐겁기만 했다. 

 

 

 나는 한때 이 산이 애국가에 나오는 백두산인 줄 알았다. 산 정상에 커다란 바위가 있어  이미지가 비슷하거니와 어린 나로서는 하도 높아 보여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내 가슴에는 늘 백두산으로 남아있다.  “서해 물과 백석산이 마르고 닳도록...”라고 마음속으로 힘차게 불러본다. 지금도 엘에이 근교 산봉우리는 나에게는 언제나 안산이고 백석산이다. 이들을 오를 때 마다 편곡된 고향가는 계속 불릴 것이다.  “서해 물과 백석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고향 만세...” 그리고  이어서 "태평양과 볼디산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 엘에이 만세..." 라고 크게 외쳐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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