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동결凍結 (ⅩⅣ): 2014-11-12
페이지 정보

본문
시간의 동결凍結 (ⅩⅣ)
이제, 금년 한해는 달포 남짓 남겨 놓고 있습니다. 일 년 열두 달에서 열 달하고 보름쯤 과거로 보냈다는 이야깁니다. 무엇 하나 마무리하지 못하고 가는 세월만 축내었습니다.
지난 시월 중순부터, 산행 길에 들어서면 도토리가 지천으로 널브러져 맞습니다. 한해의 결실, 튼실한 도토리를 투박한 등산화로 지르밟고 오르내리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리고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 예전에 어디선가 읽고 기억하고 싶었던 시구詩句 ‘청빈한 나무’를 떠올립니다. 찾아서 시詩 전문을 옮깁니다.
11월의 나무처럼
이 해인(시인⦁1945―)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는 조금 쓸쓸한 가을이에요.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 놓는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 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11월 첫 일요 산행은 모처럼 전날과 전전날 내린 눈이 MT. Baldy와 인근의 산들에 온통 애애皚皚한 백설白雪의 향연을 베풀었습니다.
길섶의 수풀과 나목裸木에는 상고대가 허옇게 피었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라 펼쳐진 나뭇가지는 수북이 쌓인 눈꽃을 힘겹게 안고 있습니다.
산자락을 휘감아 오른 초겨울 바람이 눈꽃을 흩뿌릴 때마다 상서로움을 주는 서설瑞雪임을 깨우쳐줍니다. 하산 길 햇살은 먹구름을 쫓아내고 하얀 뭉게구름을 불러옵니다. 하늘에 짙디짙은 푸름을 되찾아주었습니다.
지난주에 입동立冬을 보냈습니다. 천지만물이 양에서 음으로 바뀐다는 겨울철에 접어드는 시점입니다. 오래지 않아 나무들은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휑뎅그렁한 나뭇가지로 매서운 추위를 이겨냅니다. 개구리, 뱀, 곰 등은 기나긴 겨울잠冬眠에 들어가 새 봄의 햇살이 깨어 줄 때까지 자연에 순응해 목숨을 보전합니다.
11월은 짧은 가을 보내고 기나긴 겨울로 들어서는 징검다리에 놓여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한평생 생로병사에서 마지막으로 디딤돌 징검다리는 언제 어떻게 다가올까, 가을-겨울철의 산자락과 잎 떨어뜨린 나목裸木에 묻고 싶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금문교를 건너가기 직전에〈The Presidio〉가 드넓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전 미 육군의 요새要塞였던 터에 공원을 꾸몄고, 이곳에 영국의 조각가 Andy Goldsworthy가 그의 설치 작품 《Spire》《Wood Line》《Tree Fall》등 석 점을 2008년에 시작해 2013년 끝냈습니다.
《Wood Line》은 울울창창한 노송나무 숲에 Eucalyptus 나무를 맞대어 눕혀 놓았습니다. 굽이굽이 돌아내려가는 길, 여기에 드리운 작가의 의도는 언뜻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듯싶은데, 무딘 필설筆舌로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해저물녘 햇살이 등성이에 깃들여져 여운餘韻을 드리웁니다. 때마침, 한 여인이 불쑥 나타나, 저 아래 피안彼岸으로 하염없이 굽어진 길이 이끄는 대로 걸어 내려갑니다. 세속世俗에 초연하여, 홀로 숲을 향유享有하는 여인이 부럽습니다.
사진 틀frame안으로 들어와 주어 무척 고맙습니다. 정면이 아닌 뒷모습이기에 심리적인 눈, 마음의 눈을 일깨워주어 더욱 그렇습니다. 뒷모습의 여인은 연세가 지긋한 수녀와 비구니의 심상心想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아지경無我之境, 그 한순간을 묶어서 담고 싶었습니다. (2014/11/12)
● Eucalyptus Walk
―――S.F. The Presidio 숲속에서
- 이전글첫 눈: 2014-11-24 14.11.24
- 다음글낙엽 속 그리움: 2014-10-11 14.10.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