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에 비친 추억: 2013-12-24
페이지 정보

본문
카드에 비친 추억
연말이면 크리스마스카드가 우체통을 메우더니 이제는 이메일에 수북이 쌓인다. 늘 같은 그림, 같은 내용이지만 오늘은 하얀 언덕에 작은 교회가 있는 카드에 유난히 눈길이 간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내 고향 옆집에는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홀로 지내는 친척 아줌마가 살았다. 주위에서는 그분을 ‘권사님’ 또는 ‘전도사님’이라고 불렸고 내가 4, 5세부터 나를 예배당에 데리고 다녔다. 40대 초반으로 기억되는 매우 조용한 분이다. 언젠가 아줌마 손을 잡고 예배당으로 향하는 중 눈길에서 내가 추운 기색을 하니 손을 비벼 얼굴을 감싸 주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함께 걷노라면 나에게 늘 말을 건넸다. 아마도 내가 유일한 대화 상대였고 내 재롱이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 같다.
나는 예배당에서 나이가 제일 어렸다. 그래서 모두에게 관심의 대상이었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물은 나의 독차지이다. 한 보따리 장난감과 그 당시 흔치 않은 과자는 보름 동안 먹을 정도의 큰 수입이다. 주일이면 나와 꼭 교회에 동행한 아줌마는 내가 세상에 눈뜨기 시작할 때쯤,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나눌 기회도 주지 않고 일찍 하나님 곁으로 떠나셨다. 젊은 시절에는 믿음 하나로, 그 후로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계셨다.
주위 여러 마을에는 그 예배당이 유일하다. 목사님도 없다. 초가집 형태의 건물 안에는 오래된 풍금과 방석만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건물을 지으신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아드님이 장로의 직책으로 아버지를 받들어 예배당을 지키고 있었다. 농부의 아들로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고된 일을 하면서도 새벽과 저녁에 어김없이 종을 울리고 단상 앞에 한참 동안 엎드려 계셨다. 매일 하나님께 무엇을 그리 고했는지 궁금하다. 그림에서 거친 손을 헌 성경에 얹고 빵 한쪽 앞에서 기도하는 노인을, 언덕 위 초가집 예배당과 종각이 담긴 그림엽서를 보면 마치 장로님과 그 예배당을 보는 듯하다.
이곳 미국에 이주 후 20여 년 만에 고향집을 방문했을 시 아줌마 집과 예배당을 찾은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 얼이 담긴 고향 집은 그 당시 마을에서는 제법 커다란 집이라 생각했었는데 협소하기 짝이 없었고 더군다나 아무도 돌봄 없이 빈집으로 남아 여기저기 망가져 있는 모습이 초라하여 안쓰럽기까지 했다. 내가 쓰던 작은방에는 낡은 책상만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내 어린 추억들이 무너지는 듯 했다. 아줌마가 살던 옆집 안을 둘러보았다. 아주머니가 지냈던 방이 눈길을 끈다. 30년 전 조용하고 다소곳한 자태가 마치 살아서 나를 반기려 다가 오는 듯 했다.
언덕 너머 있는 예배당을 찾았다. 마침 크리스마스 전날이라 그곳에서의 기억들이 영상처럼 스친다. 건물은 낡고 비어 있었다. 당장 손을 보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고 종각은 쓰러지기 직전이다. 애처로워 손으로 기둥을 어루만져 본다. 어린 시절 듣던 울림이 은은하게 귓전에서 맴돈다. 이 예배당은 몇 년 전까지 나의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장로님의 아들이 관리한다는 소식만 접했다. 지금은 개발 붐을 타고 흔적조차 없을 것이다. 그 예배당은 주변 마을의 정신문화 유산이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반드시 보존되었어야 했으며 분명 나도 한 몫을 해야 했었다.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아줌마에 대한 아쉬움과 예배당에 대한 죄책감에 숨이 잠시 멈추어 지면서 손끝이 떨려옴을 느낀다.
이제, 나를 귀여워해 주던 이들은 이 세상에 없고 건물도 사라졌지만 아줌마와 장로님과 예배당의 추억은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카드에 실려 나를 훈훈하게 한다. 나도 살아오면서함께 했던 이 들과의 추억을 카드에 실어 그들에게 나의 이 훈훈함을 전해야지.
- 이전글시간의 凍結 (Ⅳ): 2013-12-27 13.12.27
- 다음글두 글자: 2013-12-14 13.12.1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