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길 斷想 Ⅴ: 2013-07-30 > 문예 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문예 게시판

자전거 길 斷想 Ⅴ: 2013-07-30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albert
댓글 0건 조회 525회 작성일 13-07-30 00:00

본문



자전거 길 斷想 Ⅴ


   저녁녘의 자전거 길, 햇살이 길게 늘어지고 따가움도 훨씬 가셔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소서와 대서가 훌쩍 지나갔고 곧이어 입추가 다가옵니다.

   뉘인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작금昨今의 1초, 1분, 1시간은 꼬맹이 때의 하루, 30일, 1년으로 대치代置된 느낌입니다. 하룻밤 자고나면 키가 쑥쑥 자라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던, 마냥 더디던 세월이 쏜살같이 다가왔다가 훌쩍 사라집니다.

   세로로 길게 늘어선 달력에는 이달치 7월과 이미 흘러간 6월 그리고 다가올 8월의 아흔 두 날들로 메우고 있습니다. 같은 숫자의 이름표를 달고 있으나,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나날입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 일컫는 ‘과거와 미래가 삶과 죽음이 한 몸으로 붙어있는 시간의 죽음’을 되뇌게 합니다.


   자전거 길은 중간 지점에 뚜껑 없는 하수도를 옆에 끼고 1 Km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집니다. 깊이와 너비가 각각 5m쯤 되는 널찍한 통로는 온통 시멘트 범벅이고, 《No Dumping/ Drains To Ocean》표지판을 매단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아름 크기의 하수구 네 개와 한 뼘쯤의 작은 구멍이 다섯 발자국 간격으로 늘어서서, 사람들이 쓰고 내버리는 물을 토해냅니다.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빗물에 쓸려 내려가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쓰레기가 뒤섞여 지저분합니다.


   이 음습陰濕한 곳에서, 생명의 경외敬畏를 봅니다. 이름 모를 들풀 한 송이가 하얗고 기다란 플라스틱 대롱 바닥에 뿌리를 펼치고 우뚝 서있습니다.

   바람결이 잠시 정신머리를 놓아 엉뚱하게 점지해준 곳에서 아무런 불평불만하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터전을 지켜왔습니다. 물이 흘러내려오다가 떨어트린 한 줌의 퇴적堆積을 옥토沃土 삼고, 아침저녁으로 뜨고 지는 짧은 햇살을 온몸으로 정성껏 받아들였습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주어진 열악劣惡에서 움을 돋아내고 자양분을 길어 올려 줄기와 잎사귀를 키워냈습니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일구어내었기에 작고 하찮은 들풀이 아닙니다. 거듭 태어났습니다. 진초록의 아름다음을 뿜습니다. 의연毅然합니다.

   결연決然한 들풀의 존명存命, ‘거기 있음’은 위대합니다. 부디 꽃피우고 열매 맺어 대이음의, 삶의 결실을 맺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늘 다니던 같은 길이건만, 예전에는 하늘과 앞만 내다보고 거닐었기에, 마음에 없음, 무심無心이 들풀을 못 보고 지나치게 했습니다.

   “사진은 눈으로 지각知覺하고 머리와 마음으로 의식한다.”는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을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본다는 것에서 눈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느낌을 일구고, 그리고 보임을 넘어 보이지 않음에서도 뜻을 찾아야 된다는 이야깁니다.

   눈을 열어준 들풀에 고마운 마음을 고이 간직하렵니다. (2013/07/29)



Determined Life (11)

                                      ―――철조망 너머 (Ⅳ)


_MG_8341-N-re800.jp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Copyright © 한미 산악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