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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란 내 호칭: 201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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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 만 우
댓글 0건 조회 491회 작성일 13-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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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란 내 호칭

                                                                                                                                                         

                     

언제부터인지 나는 ‘어이’가 됐다. 짐에서 운동을 마치고 바삐 일터로 향하려면 휴게실에서 어르신들(그분들은 나를 정년퇴직한 동료로 봄)이 떡, 과일 등을 펼쳐 놓고 나를 부르는 호칭이다. 그러면 늘 “감사합니다. 다음에”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한국은 상대를 부르는 호칭이 제일 많은 나라라고 한다. 같은 사람을 두고 형님, 선배님, 선생님, 누구 아버지, 사장님, 작가님, 교수님 등등, 때에 따라서 호칭이 달라진다. 미국에서 Mr.성, Ms.성 또는 이름 등이 보통 호칭인 것과 비교가 된다.  누군가를 대면하면 상대의 나이, 출생지, 직업, 학교 등 정보를 가능한 한 빠르게 파악하여 적합한 호칭을 골라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결례를 범한다.   어쩌다 호칭에 실수라도 하면 관계가 서먹서먹해 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배울 때 2인칭, 3인칭이 제일 어렵다고들 한다. 그들이 숙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문화와 함께 익숙해져야 가능하므로 생활 속에 잠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본인이 지냈던 높은 직위나 덕망과 존경을 받는 호칭으로 불러주기를 바란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말이 있듯이 비록 그 직책에서 물러났을지라도, 국회의원을 지냈으면 영원히 국회의원으로 불러주기를 바라고, 호칭을 부르는 사람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례를 범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사장님 하고 부르면 모두 뒤돌아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선시에 ‘불수자성 수연성 不守自性隨緣成’이란 문구가 있다. 모든 것에는 특별히 정해진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인연에 따라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호칭으로 예를 들면 누구도 고정된 호칭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호칭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가령 군에서 장군이면 집에 오면 아버지이고 남편이 되는 것이다. 택시를 타면 승객이 되어야 하고 가게에 들어서면 고객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선호하는 호칭에 집착하는 데 있다. 집에서, 택시 타면서, 가게에서 장군인 줄 착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거나 불러주기 바란다면 이는 주위를 분명 불편하게 만든다. 이러한 태도는 실답지 못함은 물론, 마침내는 인간관계를 오히려 악화시킨다. 이는 성직자나 전문직 등 직업, 나이, 성별 여하를 막론하고 적용된다. 다양하고 빠르게 변하는 열린 시대에, 더구나 1.5세로 살아가는 세대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나이가 위인분들에게 형님이라고 불으려면 어색하다. 조직폭력용어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러나 나를 형님이라고 부러 주면 정이 간다. 아이러니다. 그래서 어느 성인은 이름에 집착하여 여여하지 못한 무지를 깨우처 주기 하여  '이름은 다만 이름일 따름이다‘라고 역설한 것 같다. 호칭 즉 명목에 연연하여 내실 성찰을 소홀히 하지는 않은가 하고 자신에게 종종 질문해 본다. 내게도 여러 호칭이 있다. 그중 누구누구 아빠, 남편이란 호칭과 함께 새로 부여받은 ‘어이’라는 호칭이 정겹다. 군 더덕이가 없는 호칭 ‘어이’가 나는 좋다.

                                                    

 

 글쓴이- 이 만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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