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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모스는 없다: 201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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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 만 우
댓글 0건 조회 234회 작성일 13-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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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모스는  없다

                                                                                                                                        

겨울이 끝자락에 매달리면 늦을세라 눈 놀이에 정신을 빼앗긴 추억들을 떠 올리면서  맘모스 레이크로 달려가곤했다. 숲과 호수 그리고 깎은 듯한 바위가 어우러 자연의 극치로 치닫는 풍경이 접어들고,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면 곧 백의 천사로 변신하는 맘모스 레이크(Mammoth Lake), 맘모스는 보이지 않는데 이름만 맘모스 레이크이다.

 

금년에도 스키타러 다시 찾아 나섰다. 시에라네바다 산등성을 따라 이어지는 고속도를 달리면 도시 한 모퉁이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벌써 사르르 녹기 시작한다. 5시간 만에 도착한 눈 덮인 산속마을, 시원한 내음이 코를 찌르면 딴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나를 쥐고 흔든 문명이라는 것, 이곳에서는 쪽도 못 쓰고 한 귀퉁이에서 귀염둥이 역할만 할 뿐이다. 우거진 세코이야 소나무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Phytoncide)향기가 몸과 마음을 씻어내어 기분이 상쾌하다. 주변 호수는 아직 겨울잠에 빠져 있고, 앳된 잡목들은 눈 속에서 봄채비 꿈 속이다. 상가 지붕 위 하얀 눈은 조금씩 녹아 내려 떠날 채비하는데 숲 속에 자리 잡은 별장들은 눈을 붙들고 아직도 크리스마스인 양 그 기분에 젖어 있다.

 

하얀 산등성이에는 길게 줄을 선 스키 리프트는 빙글빙글 돌며 어서 오라고 찾는이의 발길을 재촉한다.  규모가 미국에서 제일 큰 코로라도 베일 스키장(리프트 33개) 다음인 맘모스 스키장(28개), 30년 전 하루에 다 타보려 욕심을 부렸으나 이루지 못하고 그 크기에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북미에서는 캐나다의 위슬러 브랙컴 (39개) 스키장 선두로 세 번째이다. 서둘러 리프트에 몸을 싣고 능선으로 향하면 차디찬 바람이 매섭게 얼굴을 스친다. 그래도 점점 넓혀지는 경관에 압도되어 아랑 곳 없다. 가지마다 소복히 쌓인 눈을 안고 서있는 세코이야 소나무는 서로에 의지하며 긴 겨울을 견디어 내고 있다. 봄이 빨리 오기만 기다리는 모습이 매우 안쓰러워 보였지만, 그래도 그 눈이 녹으면 목을 마음껏 축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서 인지 포근함도 느껴졌다. 모진 바람에는 굽힐 줄 아는 겸손과 몰아치는 눈보라에는 참고 견디는 미덕이 폭죽처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서 보면 시에라 네바다 산들이 하얀 눈을 덮고 찾아오는 봄과는 아랑곳없이 자태를 뽐낸다. 사진작가 안셀 애덤스가 극찬한 미나레트 산 봉우리들과 베너 픽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작년에 등정을 시도하다 포기한 아쉬움 때문인가. 동쪽에는 늘 외로운 화이트 산, 눈물이 눈이 되어 빤히 쳐다보며 찾아주기 고대한다. 먼 발치에 모노 레이크와 레이크 크로울리는 아직 하얀 이블속, 봄을 채근하며 기다린다. 매서운 찬 바람이 귓전을 때려도 시름을 덜어주는 반가운 고향에 온 듯 포근한 느낌을 준다. ‘바다는 타향, 산은 고향’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바다는 우리를 침몰시킬 것 같지만, 산은 한발을 높이 디디면 디딜수록 더 많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어,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높고 숭고한 곳으로 이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말없이 수천 년 아니 수만 년을 그 자리를 지키면서 찾는 이를 반기며 떠나는 이에게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

 

이곳 맘모스 산은 가장 늦게까지 흰 눈을 움켜쥐고 있어 일부는 독립기념일까지 스키어에게 놀이터가 되어준다. 스키에 몸을 얹고 벼랑 길 눈 위를 미끄러 내리면 무중력 무념에서 오는 희열이 온몸과 마음으로 스며든다. 이것이 카타르시스요, 명상이며, 천상이 아닌가 싶다. 눈이 봄바람에 밀려나고 부산했던 놀이꾼이 모두 떠나면 이곳은 다시 다운힐 바이커들로 북적거린다. 그리고 서너 달을 그럭저럭 견디면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 눈 놀이터는 쉴 날 없이 분주하다. 짧은 해가 4시를 알리니 모든 스키어는 하나 둘 성냥갑 같은 숙소로 사라진다.

 

모든 기다림이 있는 곳. 벽난로는 이글거리며 차가운 몸을, 포도주잔은 입술을, 준비한 음식은 입을, 귀는 연륜을 쌓아온 삶의 뒷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다져온 솜씨와 정성으로 준비한 음식을 펼치면 요리 경연대회를 방불케 한다. 언제나 다정한 김밥, 차가운 몸을 풀어주는 육개장, 설날 기분을 주는 떡국, 입맛을 돋구는 북어, 고등어, 꽁치조림, 소주 한잔이면 더욱 좋은 돼지불고기, 치즈 그맛 파스타, 얄밉스러운 나또 모밀국수, 그때 그 시절의 호떡 그리고 군고구마 등등, 금강산은 식후경이고 스키여행은 뒤풀이가 단연 하이라이트다. 격 없이 오손 도손 둘러앉아 껄걸 웃으며 먹는 즐거움, 이것이 진짜 삶이지 그 무엇이 따로 있으랴. 몸은 세월의 파도를 타고 먼 곳에 와 있지만 겨울 산속에서 펼쳐지는 마음은 시간을 묶어둔 양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냥 이대로가 참 좋다.

 

나는 이곳이 왜 맘모스 레이크란 이름이 붙여졌는지 늘 궁금했다. 아주 먼 옛날 그가 이곳의 주인이었을지도 모른다면, 코끼리 과에 속하는 긴 털을 가진 이 거대한 동물이 우리에게 자리를 내준 연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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