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대가: 201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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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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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 우
"Is that you ?" 휘트니 산 등정허가를 받기 위해 운전면허증과 함께 신청서를 제출하니 산림관리사무소 직원이 컴퓨터 모니터를 내게 돌리며 화면에 나타난 내 이름을 가리키며 건넨 말이다.
몇 년 전 미주이민 100주년 행사 하나로 한인 각 단체에서는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중에 있었다. 재미산악연맹에서도 미주 50개 각 주 최고봉 등정 계획이 있어 나는 뉴멕시코주 최고봉인 휠러 픽(Wheeler Peak)을 등정키로 되어 있었다. 예술의 도시 타호(Taos)와 유명한 타호스키장(Taos Ski Valley)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팀을 구성하고 비행기 및 숙소도 예약을 완료했다. 마침 알버쿼끼 시에서 식당사업을 하는 친구가 있어 도움을 요청하니 쾌히 받아 주었고 차편을 제공하겠다는 제의도 해 왔다.
휠러 픽은 로키산맥 남쪽 끝자락에 자라 잡고 있다. 콜로라도 로키보다 산세가 낮아 산 주변에는 거대힌 호수들과 광활한 초원이 형성되어 있어 야생 산양 노루 사슴등이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당시 로키산맥 콜로라도 쪽에는 산불이 수천 에이커의 숲을 태우고 거의 진압되어가는 상태였다. 산림관리원이 편지를 태우다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인재이다. 휠러 픽은 그곳에서 수백 마일 떨어져 있어 산불과는 무관한 줄 우리는 생각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우리가 산에 도착하니 곳곳에 입산금지 사인이 붙어 있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뒤덮여 있고 바람도 심하게 몰아쳐 내일 날씨도 가름하기 어려웠다. 개인 등정이 아니고 컴뮤니티 행사 목적이 있으니 포기 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일단 숙소에 짐을 풀고 대책을 논의 했다. 돌아가자는 의견, 한인컴뮤니티의 중요한 행사라고 관리사무실에 행사의 중요성을 이야기를 하면 허가를 해 줄지도 모른다는 등 의견이 분부한데, 때마침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내일도 이렇게 계속 비가오면 돌아 갈 것이고 그치면 계획에로 등정하기로 하였다. 비가 그치면 입산시는 입산금지가 유효해도 하산시는 해제될 것이라는 그럴듯한 추측으로 의견이 일치했다.
다행이 새벽에 비는 멈췄고 공기가 비 온 후 아침공기는 매우 상쾌했다. 입산금지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등정을 시작했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경사가 가파른 난 코스룰 택했다. 하지만 말데로 가파른 야산길은 쉽지는 않았으나 아름다운 경치와 자유로이 뛰노는 야생동물에 정신이 팔려 힘든 줄을 몰랐다. 산양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파도물결처럼 출렁이며 이리저리 달리는 모습이 ‘늑대와의 춤’이란 영화에서 버팔로의 돌진을 연상케 했다. 또 하나의 특이한 것은 온 산에는 마아못(Mamot)이 갯벌 게처럼 제 구멍을 들락이며 뛰놀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마아못을 본것은 처음이다.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판(Wheeler Peak, 13,167 ft)이 보였다. 안도의 숨을 쉬긴 했으나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당일 엘에이로 돌아오기로 비행기 예약이 되어 있어 하산길을 재촉했다. 트레일 입구에 도달하니 소방차가 보이고 그 앞에 소방관이 서성이고 있었다. 도둑이 제 발이 저리다고 움칠했다. 샛길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피곤도 하고 아마도 산림관리인도 아니니 상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트레일로 가기로 했다. 소방차옆을 지나려는데 소방관이 다가와서 어디를 갔다오느냐고 묻기에 우리는 서슴없이 앞을 가르키며 호수에 잠깐 다녀왔다고 둘러댔다. 그는 입산금지라고 주의를 주고는 웃으며 "Have a nice day"하며 인사까지 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아 손을 잡으며 자축의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잠시 후 이것이 웬일인가. 경찰차 2대가 경적을 울리며 우리길을 가로 막는 것이었다. 친절하게 인사까지 한 소방관이 경찰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우리는 일렬로 서서 모든 소지품을 꺼내 펼쳐 놓고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운전면허증을 요구하더니, 입산금지 위반은 $10,000 벌금, 1년 이내 감옥 중 하나, 또는 둘다를 처벌 받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했다. 사실 그렇게 중벌의 위반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기록을 마친 경찰은 이제 가도 좋다는 말만 하고 떠나 버렸다.
집에 돌아오니 매일 우편물에 신경이 쓰인다. 한 달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도 벌금 통지서나 출두 서한은 보이지 않았다. 항간에는 한 번 정도는 봐 준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이기를 바랬다. 일 년이 지나도 오지 않아서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그 동안 마음 조아린 것을 생각하면 이미 벌을 충분히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더구나 재 위반 시는 처벌이 중과된다는 뜬 정보에, 그후 시에라 네바다 산들을 여러 번 들락 거리는 동안 산행 규칙에 각별하게 주의를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림관리소 직원이 불쑥 컴퓨터에 입력된 내 이름을 내보이는 것이었다. 정보관리 시스템으로 미국 어디서나 입산허가 신청 시 나타나는 것이었다. 혹시 입산허가를 거절하려나 하는 선입감에 잠시 가슴이 출렁거렸다. 그 후 기록이 삭제된 것을 확인했다. 그래도 산행규칙에는 여전히 신경이 써진다. 참다운 시민이 되어 가는과정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이를 위하여 너무 혹독한 대가를 치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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