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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길 斷想 (Ⅲ): 201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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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jcyoo
댓글 0건 조회 227회 작성일 13-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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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길 斷想 ()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래 한해살이 넝쿨들이 연초록빛을 눈부시게 내뿜습니다. 살랑대는 하늬바람이 뺨살을 간질이고 봄내음이 콧방울에 감돕니다. 근 달포 만에 다시 찾아온 나그네에게 들녘은 절기節氣가 바뀌었음을 알려줍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바뀜과 태어나 병들고 늙고 죽는 목숨붙이의 한평생 삶은 같다고, 삼라만상森羅萬象에선 전혀 다르지 않다고 다시금 중얼거립니다.


   고국서 이십오일 머물며, 여든넷의 자형과 여든의 누님 두 분만이 외롭게, 더구나 투병하시는 모습을 뵙고 온 마음은 무척 안쓰럽습니다. 없던 호수를 만들어 신도시를 개발했을 때 옮겨와 여태껏 살아온 널찍한 아파트는 횅댕그렁하기만 합니다.

   자형의 반세기 가까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주를 몹시 즐겨 마셔온 후유증이 급격한 기억력 쇠퇴를 불렀고, 뒷바라지하는 누님에게 심혈관 수술을 받게 했습니다. 수술은 잘되어 예전처럼 늘 함께 지내십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는 해로偕老, 부부 인연因緣은 사람 한평생 가장 숭고하기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밤 열한시, 졸린 듯싶어 누우면 언제 졸렸는가 싶게 머릿속은 또렷해지고, 일어나 앉으면 깨어 있는 듯싶으나 꿈속인지 아닌지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눕고 앉고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이도 제풀에 지치면 고개가 아래로 떨어져 서너 시간 토막잠에 빠집니다.

   낮에 두어 시간 보태서 하루 대여섯 잠자기를 계속해 겹겹이 쌓인 피곤을 안고 버팁니다. 산품에 안겨 산마루에 오르고 싶은 갈망渴望은 지난 해 가을부터 연이은 이런 일 저런 일로 여태껏 미뤄져, 언제 이뤄질지 아득히 멀기만 합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하룻밤을 지새우고 나서 견뎌냈음을 비교하면, 새삼 몸과 땅은 둘이 아니고 하나身土不二임을 수긍하게 합니다. 지난번에는 돌아와 일주일 만에 회복되었으니, 5년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의 몸은 그만큼 더 쇠퇴衰退되었다는 바로미터barometer입니다.


   곧 여름을 맞이할 늦은 봄철, 해님이 길어졌고 비껴 내리는 석양도 날카롭습니다. 두 갈래로 꺾어지는 모퉁이 길에 내버려둔 듯싶은 낡은 건물이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촘촘한 철조망에는 자전거 바퀴 하나가 달랑 매달려 있습니다. 옆으로 비춰지는 측면광의 햇살이 바퀴뼈대에 꽂힙니다. 검은색 고무 원통에 하얀 뼈대의 앙상블ensemble은 저절로 시선을 그곳으로 당겨 모읍니다.

   두 팔을 구부려 만드는 하트heart♡가 폐허(廢墟)에 한 송이 꽃으로 홀연히 피어났습니다. 쓰임새가 없어져 내버려진 잔해가 아닙니다. 사랑의 전령傳令, 조각彫刻 예술로 승화昇華되어, 바퀴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던 옛날로 환생還生하여 ‘자리하는’ 존재存在로 다시 태어났습니다.(201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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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還 生

                                          ―――철조망 너머 (Ⅱ)


“한 장의 사진은 작품 이전에, 예술 이전에 시간에 포박된 존재의 표현이다…사진은 과거, 현재, 미래와 동축으로 연결된 시간의 존재들을 위한 표현이다.” ――― 진동선,『사진철학의 풍경들』 문예중앙, 2011, 8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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