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낙수落穗: 201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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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낙수落穗
고국에 3월 7일 도착해 3월 31일 떠나왔습니다. 25일 동안 호사豪奢한 입맛이 신토불이身土不二를 되뇌게 하고, 여태껏 남아있는 아쉬움을 반추反芻케 합니다.
해 물 탕 도착 한 날 저녁에 전철 금정 역 앞에 자리한 음식점에서 처음으로 고국 음식의 입맛을 일깨워준, 바다가 키워낸 먹을거리의 총체입니다. 커다란 탕기에 가득 찬 풍만豊滿은 익기 전 바라보기만 해도 군침을 흘리게 합니다.
첫술의 따끈한 국물이 목울대를 넘어가면서 열두 시간 장거리 비행과 열여섯 시간의 시차時差로 그리고 쌀쌀한 날씨에 주눅 들었던 몸을 안온安穩으로 이끕니다. 얼큰하고 개운하고 시원합니다. 그리고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혀만이 감지하는 미각의 오묘奧妙에, 게걸스럽게 다가가는 식탐食貪에 빠져듭니다.
배고픔이 가시자 식탁위에서 익혀지는 과정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꽃 위에 올려 진 탕기 안에는 아직 살아있어 꿈틀대는, 먹을거리로 전락한 바다 생명들의 마지막 몸부림이 있습니다. 특히 낙지의 죽음에서 헤어 나오려는 처절함을 구태여 보이도록 뚜껑을 유리로 만든 인간의 잔인함도 함께 내보입니다.
머물던 숙소와 가까운 이곳에는 여러 번 들렀으며, 떠나오는 날 점심도 이곳을 거쳐 공항으로 갔습니다. 이곳 외에도 오이도와 시내에 자리해서 매장이 크고 양도 푸짐한 방이동에서도 맛보았습니다.
추 어 탕 성동 세무서 앞에 자리한 조카의 치과 진료실에서 가까운 곳의 ○○추어탕 집에 어금니 세 개와 잇몸치료가 끝날 때까지 여러 번 들렀습니다. 5년 만에 다시 예전의 맛에 취합니다. ‘고국 땅에서 먹으니 당연히 더 맛있다’는 생각을 헤아려도, 확실히 이곳 LA 한인타운 한식당의 밋밋한 맛과는 하늘과 땅만큼 다릅니다. 변한 것은 계산대를 지키는 주인 아낙의 얼굴주름이 늘었고 값이 조금 오른 듯싶습니다.
뜨거울 때 먹어야 더 맛있는 튀김은 아삭아삭한 촉감觸感이, 한없이 늘어나는 입맛에 맞추기 위해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건져내 바로 통째로 튀겨내는 인간의 잔인성을 여기서도 떠오르게 합니다.
위의 이야기를 들은, 일산에서 만난 북아현동 소꿉친구(?)가 서울 인원에서는 제일 맛있고 진국이고 원조집이라고 역설하며, 일산에서 서오능으로 질러가는 뒷길에 자리한, 상호 ‘○○’ 다음에 ‘골’ 글자 하나가 더 들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한적한 곳이고 또 주중인데도 주차장에는 승용차가 꽤나 들어서 있습니다.
“맛이 어떠냐?” 는 물음에 맛있다“고 대답했으나, 솔직히 먼저 집에 깃들여진 입맛에는 그저 그렁성저렁성합니다.
설 렁 탕 점심 때우기로 안성맞춤, 특히 서울 시내와 외곽도시 곳곳에 같은 상호로 같은 인테리어 그리고 똑같은 맛을 내고, 깍두기와 김치를 원하는 만큼 직접 꺼내먹을 수 있도록 한 차림에 이끌려 ‘○○설렁탕’에 자주 다녔습니다.
아침에 숙소를 나와 볼일 보고 다음 약속 때까지의 자투리 시간을 메우기로는 광화문 교보문고와 인사동 거리만한 곳이 없습니다. 거의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간서적 훑어보기와 사진-회화-조각-공예 등의 상설 전시회를 기웃거리는 재미는 쏠쏠합니다. 몇 번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 약속시간에 늦기도 했습니다. 두 곳은 지척이기에 출출해지면 바로 인사동 거리에 자리한 설렁탕집으로 옮깁니다.
사족蛇足 하나, 식당 안에는 의외로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햄버거 피자 등을 마다하고 우리 음식을 찾는 그들이 대견해 보이기도 하고, 급히 떠넘기는 배고픔 덜기가 아닌 이야기꽃을 나누는 모습에서 여유를 보며, 각자 먹은 만큼 제몫의 계산을 치루는 젊은이들에게서, 이방인異邦人으로 내몰린(?) 내게는 달라져 보이는 세태世態, 새삼 격세隔世를 느낍니다. 사족 둘, ○○ 안에 들어갈 한자로 싱싱하다는 新鮮인지, 속세를 떠나 선경에 사는 神仙이 맞는지, 또는 둘 중에서 편리한대로 기억하라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한 정 식 광나루 모래사장 바로 위에 자리한 ‘나루 ○○’에서 한정식에 딸려 나온 손만두에 매료되고, 특히 따로 주문한 우거지 곰탕도 독특한 맛으로 입맛을 다시게 합니다. 토요일 주말, 번호표를 받고 반시간 넘게 기다려 앉습니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모래사장이, 사십 여 년 옛일을 불러옵니다. 다니던 직장 회식會食 때, 지붕을 얹은 놀이 배를 타고 먹던 장어구이, 숯불 판에서 지글지글 익혀 먹었던 장어는 요즘은 흔하지 않은 민물장어로 기억됩니다.
순 대 구리시에 위치한 ‘○순대’ 집, 강 아무개가 자신의 이름을 상호에 넣고 찹쌀로 만든 순대를 선보입니다. 이른 저녁녘에 도착했으나 24시간 문을 여는 곳답게 주차장은 번잡하고, 넓은 식당은 삼삼오오 식도락꾼들로 가득합니다. 만만치 않은 가격표만큼 양은 푸짐하고, 냉동된 순대에 익숙했던 혀가 놀라 젓가락을 분주히 오가도록 맛있습니다.
교외로 꽤 멀리 벗어나와 입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여유로운 모습은 70년대에 고국을 떠나왔기에,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광경입니다.
오 이 도 삼 면이 바다에 둘러싸이고 한쪽 끝이 땅 끝에 디귿(ㄷ)자로 놓인 듯 육지와 연결된 오이도, 섬이 아닌 땅 끄트머리에 숙소에서 자동차로 오십 여분 달려 닿습니다. 까마귀 오烏에 귀 이耳, 지명과 달리 바다와 섬의 풍광은 드넓습니다. 디귿자로 이어진 섬의 둑을 따라 ‘먹거리 길’의 음식점도 평행으로 이어집니다. 어느 한곳의 이층에 올라 바닷가를 가슴 가득히 안으라고 전체를 통유리로 만든 창 앞에 앉습니다. 막걸리와 해물파전에 이어져 나온 해물탕은 일행 네 명에게 포만감을 안겨줍니다.
둑길에 오르자 태고의 숨결을 고이 간직해온 갯벌이 펼쳐집니다. 오른쪽에 눌러앉아 있는 커다란 부표浮漂에 눈에 들어옵니다. 찾아가 오릅니다. 바다에 바닷물 대신에 갯벌이 펼쳐져 있어, 살아있는 ‘삶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갯벌의 벌렁 벌렁거림, 내쉼과 들숨이 모아져 가늘게 흐르는 실개천을 보여줍니다. 소금기 머금은 바다 내음이 쌉싸래하게 반깁니다. 헌데, 끝없이 이어져야 할 저 피안彼岸에 우뚝 선 시멘트 덩어리의 군집群集, 송도 신도시가 떠억 버티고 서서 가로막습니다.
다시 둑길에 올라 왼쪽으로 걷다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옛적에 즐겼던 놀이를 만납니다. 조금 전 올 때는 없었는데, 아니 있었는데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쳤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흑설탕에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끓여서 양철 판에 붓고, 이 반죽에 철판을 구부려 만든 도장을 눌러 찍어, 동그라미 안에 들어있는 삼각형을 발라내는, 뽑기를 만듭니다. 뺨살에 주름살이 가득한 할머니에게 천원을 건네고 뽑기를 받아 왼손 엄지와 검지에 조심스레 쥡니다. 하여, 작고 얇디얇은 황금 색깔의 타임머신time machine에 오릅니다.
육십 여 년 전의 머슴아이의 가슴 콩콩대던 셀 레임을 맞습니다. 핥아내는 혀끝에 닿는 달착지근한 맛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곧바로 동그라미와 삼각형을 함께 부러트립니다. 예전에도, 뽑기에서 상품을 탄 적은 한 번도 없기에, 나이 탓만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 삼습니다.
허리에 하얀 색깔로 ‘오이도’ 글씨를 감아 안고 있는 빨간 색 등대(뱃길에 빛을 비추지 못하는 무늬만의)가 푸른 하늘로 솟아있고, 등대 아래로는 고깃배가 닿는 부두가 자리하고, 부두에는 작은 수산시장이 길지 않은 부두 끝까지 양쪽으로 이어집니다.
천막으로 세찬 바닷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막은 간이簡易점포들은 비슷해 모두 고만고만합니다. 점포 앞에는 호스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양동이에 도달이, 간재미 등이 갇혀있습니다. 한 아낙의 부름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갑니다. 안에는 옆집과 함께 사용하는 화덕이 한가운데, 그리고 작은 탁자와 두 명씩 앉는 긴 의자 두 개가 양편으로 놓여있습니다. 들어와 둘러보니 매우 작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앳되게 보이나 알맞게 검게 그을린 얼굴, 건강미가 흐르는 아낙은 지나가는 손님 호객하랴, 붙잡은 손님에게 앉은뱅이저울을 가리키며 값 흥정하랴, 펄펄 뛰는 생선을 잽싸게 놀리는 손으로 다잡아 회를 뜨랴, 잠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삼십대 후반쯤 되리라 지레 짐작하고 나이를 물었더니, “쉰을 엊그제 넘었다”는 답변이 시원스레 돌아옵니다. 바깥양반은 뭘 하고 혼자 장사를 하냐는 물음에는, “배에서 그물 손질한다”고 답합니다. 주중에는 함께 배타고 나가 고기를 잡아오고 주말에는 역할을 나눈다는, 부부 일심동체一心同體의 본보기를 봅니다. 만나지는 못했으나, 건장한 몸에 올바른 마음을 지닌 아낙의 지아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이 무척 부럽습니다. 생선회 두 접시에 막걸리 두 병을 비우고, 다음 손님을 받으라고 자리를 비워줍니다.
이외에도 둘레를 한 바퀴 돌면서 번데기, 호박엿, 군밤, 문어, 찐빵, 강냉이 등으로 군것질 하며, 하루를 즐겼습니다.
퓨전 한정식 의왕시 백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먹거리 언덕’에 자리 잡은 ‘사랑의 ○○’ 퓨전 한정식, 왕년의 여가수 최 아무개가 자신의 애창곡 제목을 상호로 내걸고, 한식과 양식을 합쳐 만든(?) 음식인 듯싶습니다. 디너 풀코스dinner full course, 접시가 바뀌어 나올 때마다 이것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 궁금증에 빠지고 여기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과정을 거치야, 비로소 식도락食道樂을 제대로 깨우치게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맛본 느낌은 색다릅니다. 아니 솔직히, 사람 수에 곱해져 매겨진 만만치 않은 음식 값에 혀가 느끼는 맛있음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늙은이다운 생각을 좀처럼 지우기 힘듭니다. 하지만, 처음인 나를 제외한 일행들과 옆에 자리한 젊은이들이 입맛을 다시며 즐기는 표정이 역역합니다.
복 지 리 전철 사당역 7번 출구 근처에 자리한 일식 전문집에서 두 시간 가까이 앉아, 시성詩聖 소동파가 일찍이 “복어를 먹어보지 않고서는 생선 맛을 논하지 말라”던 복지리를 음미吟味합니다.
여태껏 먹어본 복요리는 엉터리였다고 단언斷言케 한, 시원하고 담백한 맛의 백미白眉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50년 만에 만나는 반가움에, 산행에 일가견一家見을 이룬 경험담 듣기가 보태져 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서울에 와 있다는 연락을 받고 흔쾌히 만나주었고, 친필 서명한 『명산에 오르면 세상이 보인다』산행 수필집도 건네줍니다.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재직 중인 동문 학장이 닷새를 경남 양산서, 이틀을 서울에 머무는 촌음寸陰을 쪼개어, 복지리의 참맛을 일깨워준 고마움을 길이 간직하렵니다.
참게메기탕 세 분의 형님이 계신 동화경묘공원, 기독교공원, 청아공원에 다녀오는 길에 들른, 예전에 쓰레기 매립지로 쓰였던 난지도蘭芝島, 亂芝島 ? 부근의 고양시 덕은동에서 민물고기를 맛봅니다. 찾아가는 길 주변은 고철 등 건축자재 집하장이 몰려있어, 서울과 근교 어디서나 큰길을 벗어나면 마주치는 ‘먹거리 길’과는 전혀 다릅니다. 호젓하게 홀로 떨어져 있는 식당의 이름도 ‘물레○○’로 색다릅니다. 도착한 일요일 저녁, 주차장에는 손님이 타고 온 차들과 업소에서 손님을 태워온 승합차도 보입니다.
메기구이 찜과 참게메기매운탕이 대표 메뉴인데, 몇 해 전에 작고한 소설가 박 완서의 수필집에서 읽은 참게 이야기가 불현듯 생각나서, 참게가 들어있는 매운탕을 고릅니다.
벼가 누렇게 익을 무렵 집 앞 논에서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참게로 담근 게장 맛은 내가 칠십 평생 맛본 음식 중 최고의 진미다. 암케 딱지 속의 고약처럼 검고 찐득한 알의 맛을 안다는 것만으로 나는 이 세상의 어떤 미식가도 못 따를 최고의 사치를 했다고 자부한다. ―― 박완서,『두부』,창작과 비평사, 2002, 165쪽
할아버지는 암게 딱지 속에 든 고약처럼 새까만 게장을 당신 젓가락 끝으로 꼭 귀이개로 퍼낸 것만큼 찍어서 밥숟가락 위에다 얹어주시곤 했다. 아, 그 맛을 무엇에 비길까. 그건 맛의 오지, 궁극의 비경(秘境)이었다. 아무리 작은 양이라도 혀 전체가 반응하고 입 안의 점막까지도 그 맛을 한 번만 보면 생전 잊지 못한다. ―― 박완서,『호미』 열림원, 2007, 185쪽
개성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피난 내려와서, 개성 박적골에서 잡은 참게로 담근 장을 먹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끓여져 나온 매운탕에서 ‘궁극의 비경’을 깨우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부드럽게 씹히는 메기 살코기와 함께 아삭아삭 깨물리는 참게의 맛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기회가 온다면 꼭 다시 찾아가 맛보고 싶습니다.
북 한 산 서울 다녀올 때마다 우러러 보기만 하고 발길을 돌린 북한산, 산마루에 오르지 못했어도 처음으로 품안에 안기고 온 감회는 무척 큽니다. 북쪽을 향해 오름은 틀림없는데 오르기 시작하는 길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지는지 좀체 가늠하지 못합니다. 산천은 유구悠久한데, 주변만 천지개벽天地開闢된 듯싶습니다.
즉석에서 부쳐 내온 빈대떡에는 북한산 영기靈氣가 배어있어 속세의 맛과 다릅니다. 주말이 아닌 주중이어서 재료가 동나 주문을 더 못 받는다는 선언에 아쉬운 대로 선택한 두부. 북한산 자락에서 만든 손 두부도 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습니다. (2013/05/28)
太初에
――烏耳島 갯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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