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파리: 201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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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파리
“요놈이 또 들어왔어.” 아내가 흥분한다. 요놈이 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다른 놈이 들어온 것이다. 지난번에 온 놈은 억울하게 파리채에 얻어맞고 묵사발이 되어 황천길로 갔다.
어쩌다 부엌에서 고기굽는 냄새라도 풍기면 언제 어느 틈으로 들어왔는지 파리 한 마리가 부엌을 빙빙 돌면서 아내의 신경을 건드린다. 아내는 양손에 파리채를 들고 결사 투쟁으로 잡으려 하나 만만치 않다. 문을 열어 놓으면 스스로 무서워 도망칠 터인데 무슨 원수지간인지 꼭 잡고야 말겠다는 결심으로 쫓아다닌다. 때로는 정신없이 쫓다가 음식을 태운 일도 있었다. 어떤 놈은 파리채만 들고 있어도 숨어 버리고 또 어떤 놈은 밖으로 급히 나가려다 유리에 머리를 드려 받고 뇌졸중으로 추락하는 사고도 일으킨다.
청결치 못한 곳을 들락이고 때로는 병균을 옮긴다는 학습 때문에 모든 파리는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사실적 근거가 충분치 않다. 건강에 관한 한 오히려 경계해야 할 사항은 대기오염과 먹을거리에 첨가된 화학성분 그리고 빨리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탐닉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들이다. 무고한 파리 한 마리를 죽이려 그리 신경을 곤두세울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파리채를 들이대면 놀라서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파리의 스트레스는 감히 짐작할 만하다. 그 중 대부분은 파리채에 몸이 으스러져 죽는다. 아마도 증오심을 품고 죽는지도 모른다. 파리 처지에서는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노릇인가. 성인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외부에 대한 적계심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한다. 크건 작건 생명을 해하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노 모두가 가해자에게 돌아와 심적 신체적 병으로 직결된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알게 모르게 수없이 해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오늘도 한 놈이 음식 냄새도 없는데 부엌을 찾았다. 먹다 남은 강아지 밥에 앉아서 내가 다가가는 지도 모르고 열심히 핥고 있었다. 몹시도 허기진 모양이다. 나는 가만히 살펴보았다. 참으로 귀엽게 생겼다. 몸은 검은색에 푸른색을 띄우고 날개에는 섬세하게 줄이 그려져 있다. 주위를 잘 살필 수 있도록 큼직한 눈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실 같은 다리로 몸은 균형을 유지하면서 그리 맛있는지 바쁜 입놀림은 신기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놓고 자리를 피했다. 잠시 후 돌아오니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파리채로 잡아버릴 때 보다 마음이 포근함을 느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생명에 대한 배려 때문인가. 남에 대한 적개심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말과 같은 이치로 남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곧 나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라는 말로 다가온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두 잡아버려야 한다며 흥분하던 아내가 빙그레 웃으며 수긍하는 눈치이다. 오늘 조그마한 생명이 이러한 교훈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귀여운 파리가.
글 쓴이 - 이 만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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