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속에서 다시 새김니다: 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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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Life and God - 삶의 질곡 (현동 이 만 우)
"저는 배고프고 벌거벗고 집이 없으며 신체에 장애가 있고 눈이 멀고 병에 걸려서,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며 사랑받지 못하며 사회에 짐이 되고 모든 이들이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기쁘게 받습니다."라고 인도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 Aug. 26, 1910-Sep. 5, 1997)는 노벨상 수상 소감을 이어 갔다.
인도 여행시 시바 힌두사원을 찾은 일이 있다. 힌두 경전인 바가다드기타나 우빠니사드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그들의 삶에 어떻게 배여 있는지 알고 싶었고, 마하리쉬 라마크리슈나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영적지도자들의 숨결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려 나선 여행이었다. 사원에서 간단한 의식도 치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박물관에 들렀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테레사 수녀의 초상화 앞에서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춰졌다.
인도의 가난한 지역의 생활환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나 역시 히말라야의 산을 등락이며 여러 차례 접했어도 막상 목적을 두고 접한 현실은 사실 그 이상이었다. 무엇이 그런 환경을 만들었을까. 나는 시대적 지역적 문화 문명 종교의 혼란이 일조했다고 본다. 도시 중심부를 흐르는 작은 강에서는 풍기는 악취는 일상의 단면을 말해 주고 있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해 코를 막지 않고 서는 걸을 수 없을 정도이고, 굶주린 개와 고양이는 먹을 것을 달라고 애들과 함께 졸졸 따라다닌다. 고대 히말라야의 산자락으로 이어진 인도반도, 지구의 영혼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온 곳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삶과 죽음, 종교와 믿음, 철학과 사랑, 신 등 지금까지 머리에 쌓인 관념적 단어들의 정의가 한 번에 무너져 뒤죽박죽되어 멍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진정한 영혼을 배반한 인류의 긴 문명은 결국 이렇게 된다는 절규의 메시지인가.
사원 밖에는 거의 발가벗은 상태에서 바싹 마른 몸을 옹크리고 누워있는 이들이 종종 목격된다. 구걸할 힘도 없어 애절한 눈빛만 보내는 이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감감하다. 이들을 사이에 두고 많은 사람이 일상인 듯 무심코 지나친다. 잠시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눈물이 핑 돌아 돌아서는 발길이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오늘 저녁이면 분명 세상을 달리할 것이 뻔한데.
세상에 나와서 사랑 우정 행복 아름다움이란 단어를 접해보기나 했는 지, 하늘로 향하는 계단만 바라보는 눈빛은 아직 초롱초롱하다. 차라리 빨리 저 세상으로 가 다음 삶을 기다리게 해달라는 기도의 눈빛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아들이 어머니를, 아버지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 어느 눈빛과도 다르지 않았다. 찰나에 마주친 눈빛과 이렇게 깊은 교감을 주고받은 일은 흔치 않았다. 이러한 일들이 거대한 힌두사원 밖에서,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알라에게 기도드리는 여명의 울림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지금도 그 모습을 떠올리며 자판을 두드리니 마치 내가 죄를 지은 양 가슴이 조여 잠시 멈추기도 한다.
이 모습에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수도원을 뛰쳐나오게 했으리라. ‘안녜저 곤제 보야지우’는 알바니아인으로 오스만제국령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아일랜드에서 테레사란 이름으로 수녀가 되었다. 그 후 인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 귀화하여, 인종 종교 지역을 떠나 사회에서 버려진 이들을 끌어안고 보살핌에 87세 생의 마지막 날까지 온 몸을 던졌다. 얼마나 질곡스런 삶을 살았는지 손과 얼굴에 잡힌 주름만 봐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성당 안에서 비교적 안락하게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참상을 보고 있을 수만 없었다.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관념에 열을 올리는 제도적 삶에서, 가슴에 웅크리고 있던 양심이 이념의 벽을 뚫고 종교의 담을 넘었다. 오직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의 아픔을 덜어 주고자 뛰어들었다.
예수님, 하나님에 관한 어느 기자의 질문에 “나는 예수님 하나님을 잘 몰라요 오직 아픈 이들에게 마음이 다가갈 뿐”이라는 그녀의 대답이 생각난다. 작고 가냘픈 한 여성의 발심이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고아, 나병, 결핵,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단체로 승화하여 사랑의 선교회라는 이름으로 123개 국가에서 610개의 선교 단체가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골방으로 나를 겹겹이 가두고 안일과 바램에 매달려 온 내 삶이 부끄럽다. 발길을 멎고 그녀의 삶에 나의 삶을 포개보니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잠시나마 두 손 모으고 마음에 펼쳐진 그녀의 길을 따라 걸어본다. 위대한 시인 타고르, 위대한 영혼 간디가 지나간 그 길을 마음으로나마. 구수한 찌개를 담아온 질그릇처럼 거친 얼굴에서 비추어진 맑은 미소가 나의 발길을 지켜본다. 그녀의 시 ‘그래도 (Anyway)'의 낭송이, 기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그 일을 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와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 밤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도 만들어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줘라.
언젠가는 알리라 너의 행위는 너와 주님과 관계이지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기도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를 구원 하소서.
칭찬 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 명예 스러워지고자 하는 욕구에서.
신뢰 받고자하는 욕구에서 ,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
인기를 누리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를 구원 하소서.
굴욕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를 구원 하소서.
멸시받는 두려움에서, 비난 받는 두려움에서
중상모략 받는두려움에, 잊혀지는 두려움에서
오해받는 두려움에 , 조롱당하는 두려움에서
배신당하는 두려움에서 나를 구원 하소서
봄이면 캘리포니아 들판에는 퍼피, 민들레 등 야생화가 노란 물결을 이루고 있다. 작지만 모이니 바람 따라 아름다운 물결로 출렁인다. 은은한 향기도 바람에 실려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가냘픈 씨앗이 차가운 겨울과 메마르고 뜨거운 여름을 견디고 모진 땅을 뚫고 나와 더욱 그러하다. 이제 인도는 고난의 사슬이 느슨해지면서 조금씩 범죄가 줄고 미약하나마 거리 질서도 잡혀간다는 한 안내원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이에 방점을 찍고 싶다. 모두가 톰니처럼 돌아가는 세상에서 힘들겠지만 나를 깨고 작은 보살핌의 마음을 내면 큰 물결이 되어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로 찾아가, 그러면 어린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모습을 미소 띄운 얼굴로 바라보는 날이 성큼성큼 다가오리라. 이 세상과 저 하늘나라는 지평선으로 연결된 하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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