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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에서 삶의 길 ...: 202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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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 만 우
댓글 0건 조회 219회 작성일 20-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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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에서 삶의 길... 이만우(01/12/2020  산 하신토 눈길에서...)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 새벽녘 동쪽 하늘에 먹구름이 서려 있더니 흩어져 안개로 변했나보다. 이런 상황에서 고산 산행은 커녕 돌아가는 운전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맥카페 들려 커피나 마시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수북한 하얀 눈을 그리며 산 하신토로 향하는 중이다. 팜스프링 지역은 바람이 많다. 거대한 하얀 선풍기 날개가 하늘을 향해 죽죽 서 있다. 그 모습을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국립묘지 묘비 정렬을 떠오르게 한다. 풍차 발전 설비이다. 그간 실용성 없어 고철로 유령처럼  서 있다가 오바마 정부시절 청정에너지 정책 덕에 보수 확장되었다. 이젠 볼거리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중 밖을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살이 내리쪼인다. 청명한 하늘에 둥실거리는 구름사이로 산 하신토 정상이 얼굴을 내밀며 어서 오라는 손짓이 눈에 들어온다. 전에도 한 번 폭우로 산행을 접으려 같은 맥카페 들렸는데 곧 날씨가 곧 개어 기분 좋은 산행을 한 적이 있다. 

산 중턱까지 올려줄 트램 대기실에는 예상과는 달리 한산했다. 등산객은 나 혼자인 것 같다. 눈썰매를 끌어안고 줄을 서 기다리는 애들이 호기심 찬 얼굴로 내 차림을 흠쳐본다. 마운튼 스테이션까지 10여 분 동안 트램 안이 회전하면서 파노라마 뷰를 보여준다. 처음 방문한 이들은 신기한 듯 싱글벙글거린다. 이어 스피커에서 회전 트램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라는 안내방송이 자랑이나 하는듯 흘러나온다. 관광지에는 제일이라는 말이 늘 따라다니기 마련인데 이젠 제일이라는 광고는 신기하지도 감흥도 없다. 일전에 캄보디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안내서에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비치라는 광고가 있어 버스를 타고 기대감에 부풀어 가본 적이 있다. 그러나 역시 이름만 그러했다. 바닷물은 맑고 고요해서 그런대로, 비치 모래사장도 평균수준은 되는데 쓰레기가 즐비하고 화장실에는 물이 끊기어 있었다. 관리상태가 수준 이하 이여서 실망스러워 바닷물에 손 한번 적시고 돌아섰다. 그래도 여행 시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문구에는 귀가 솔깃하다.

마운튼 스테이션 안은 조용하고 훈훈해서, 더구나 큰 창문을 통해 나타나는 눈산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밖 사정을 살피기 위해 밖으로 향하는 문을 밀어 보았다. 맞바람이 너무 강해  문이 잠겨 있는 듯 했다.  고송을 쓸며 스치는 바람 소리에 차가움이 더해 급히 다시 안으로 들어 왔다. 산행을 할 수 있으려나, 꼭 해야 하나 하며 궁시렁거리며 옷과 장비를 다시 확인했다. 이어  퍼밋을 받기 위해 레인저 스테이션으로 나섰다. 그곳에서는 두 명의 레인저가 나를 반긴다. 허가신청을 냈더니 정말 정상에 갈거냐고 묻더니 내 복장 상태를 훌터보고 인정하는 눈치였다. 하산 시 꼭 족지를 남기라는 당부도 곁들인다.

처음 2마일 정도는 경사가 높지 않고 아침이라 눈도 단단히 얼어 있어 마이크로 체인으로도 충분했다. 숨이 조금 벅차고 힘들어도 아무도 없는 눈 계곡의 고요를 만끽할 수 있어 기분 좋았다. 경사가 가파르기 시작하여 스노우 슈즈로 갈아 신었다. 크기와 무게가 있어 거추장스럽지만 안정감이 있어 좋았다. 고맙게도 전날 누군가 만들어놓은 발자국이 있어 따라가기로 했다. 그러나  눈길에서는 발자국을 따라가면 잘못된 길로 들어 설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야간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왕좌왕해서 만들어진 눈길이 선명하게 돋 보여 옳은 길로 착각되기 때문이다. 때마다 삶도 그러하지  않은지 하며 돌아보는 순간이가도 하다.  오랜된 마차가 삐그덕 이며 굴러가듯 좌우로 뒤뚱이며 정상을 향하여 한발 한발 발을 옮긴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내 힘 닫는 데로만 천천히 오르다 보면 정사에 도달 할 것이다. 마지막 트램 하향 운행이 9:45 분이라니 여유롭게 혼자 산행을 만끽하리라.

정오가 훨씬 지나 정상에 섰다. 고생끝 에 낙이라던가. 사방이 확트인 시야로 흰눈으로 덮인 산봉우리, 드넓게 펼쳐진 사막, 상자를 늘어 놓은 듯한 도시, 조국 고향으로 이어지는 드 넓은 바다가 한 눈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예상대로 차디찬 바람이 위험하게 왜 왔느냐는 듯이 얼굴을 마구 갈긴다. 새로 세운 정상 표시판도 두 동강이 나 이리저리 뒹군다. 그래도 한 컷쯤은 하며 전화기를 꺼냈다. 밧데리가 제로다. 날씨가 차가운 탓일 게다. 바로 눈앞에는 산 고고니오, 저 멀리 발디산, 서쪽 멀리 바다 물결이 기우는 했살에 반짝이고 팜스프링 풍차 발전기는 제몫을 다 하느라 분주하다. 이 모두를 한컷 한컷 눈에만 담고 하산을 준비하는데 어디선 가 말소리가 들린다. 바람소리겠지 하는데 젊은 네 명이 불쑥 나타난다. 우리는 반가이 주먹을 부딪치며 인사를 대신하고 신상 파악에 들어갔다. 이들은 씨아틀에서 온 산악인이다. 아침 6시에 박물관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캑터스- 크라우드(C to C) 트레일을 택한 것이다. 8시간 만에 18마일 눈길을 주파했으니 열정이 대단하다. 다행히 그들이 대신 정상 영상을 담아주었다. 나에게 보내준다는 약속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날아가듯 훌쩍 떠나 버렸다. 해는 태평양으로 많이 기울어저 있었다. 나는 다시 크램폰으로 갈아 신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산행을 마치면 정상했냐고 묻는다. 나에게는 정상이 산행 목적은 아니다. 정상은 나에게는 방향이고 목표에 불과하다. 등대 이다. 망망 대해에서 길을 잃었을 때 등대의 만남은 얼마나  위안과 안도감을 주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특히 야간 산행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항해사가 등대를 보는 순간 거센 파도에도 아랑곳 없이 키를  굳게 잡고 항해하 듯, 힘겨운 경사와 미끄러움에 갑자기 푹빠지는 상황을 맞이 하더라도  정상을 한번 힛긋 올려다 보면 힘이 생겨 발을 이어가면 절로  정상에 이른다. 영국 산악인 조지 말로(1886-1924)는 에베레스트 등정시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왜 목슴을 걸고 산을 오르려 하느냐(“Why did you want to climb Mount Everest?”)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어서'(“Because it’s there.”)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렇듯 이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더라도,  나는 그저 산이 좋아 산행을 하는 것이다. 건강이 목적도 아니다 건강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고 믿는다. 때로는 무리해서 몸이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성취감은 무엇이라도 바꿀 수 없다. 이것이 계속 산행을 하는 이유이다. 단지 산이 좋아서.  삶 전체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 인생이 목적이 무덤이 아니듯 살아가는 동안 최선을 다하면, 그 자체가 목적을 달성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동의하고 싶다. 그러나 일상에 적용해 보려 지만 쉽지 않다. 지금까지 삶을 점수로 환산해 본다. 보나 마나 평균 미달임을 시인한다. 그래서 나의 산행은 계속 될 것이다.

신이시여 여명 속에 떠오르는 해 맑은 희망은 욕심이겠지요, 정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감당키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루의 소임을 마치고 바다로 잠기는 해가 붉은 여운을 남기 듯, 나의 남은 삶도 그러한 모습으로 남고 싶습니다. 기억해 주시옵소서 !  하늘에는 산 능선 너머로 잠긴 해가 남긴 석양의 물결이 아직도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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