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13: 노년의 안나푸르나 트렉킹 제 1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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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안나푸르나 트렉킹 제 1 부
- - 길석기 - -
한미산악회에서 주관하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렉킹에 참가하는 결정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우선 일흔일곱이라는 내 나이가 생각나고, 암 수술 회복 과정도 그렇고, 혼자 집에 있을 집사람도 걱정이다. 그러나 아직 내 삶에 무엇인가 보람을 찾고 싶은 욕구는 그냥 접어 두기에는 너무나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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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8박 9일이라는 연이은 산행일정과 4,130 m 를 오르는 난이도, 경험자들의 이야기, 내 산행 능력 등을 면밀히 검토하였다. 결국 우리 큰 딸 Julie의 적극적인 성원이 힘이 되어 도전하기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돌아 오는길에는 서울에 들러 지인들을 만날 계획까지 세웠다.
2012년 11월 10일 드디어 출발, 집을 떠난지 거의 24 시간만에 Kathmandu, Nepal에 도착, YAK YETI 호텔에 짐을 풀고 이어서 이틀간의 시내 관광에 나섰다.
도시는 생각보다 컸으나 우선 질서 없는 교통체계, 정리 안 되고 지저분한 열악한 거리, 수 많은 거리의 사람들, 신호등도 없는 거리를 마구 질주하는 오토바이들, 소음, 그리고 먼지 --- 등등.
관광은 주로 역사적 유물인 종교시설 즉 사원, 옛날 왕궁들을 중심으로 했는데, 히말라야 산맥으로 둘러싸인 북쪽과 인도에 둘러싸인 남쪽, 평원과 산악지역으로 구분되는 국토를 가진, 항구 하나 없는 가난한 나라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경이스럽게 생각되었다. 사람들은 풍족해 보이지는 않아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다행스러웠고, 순박한 얼굴 표정들은 친근감마저 주고 있었다. 이 나라의 종교는 힌두교와 불교가 지배적이고, 이 나라의 역사와 국민 생활을 지배하며 이어왔다고 한다. 종교를 빼고는 네팔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삿말인 \"나마스테\"(NAMASTE)가 말해준다. 내 가슴으로 당신의 가슴속의 신을 본다는 뜻으로, 당신의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는 인삿말이며, 이때는 두손을 합장하고 경건한 얼굴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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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렉킹 제1일은 국내선 항공으로 제2도시인 포카라(Pokhara, 820m)로 이동, 이어서 전용 버스를 타고 40분, 나이아풀(Nayapul,1070m)에 도착하여 곧바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는 첫발이라 그런지 어느 정도의 흥분과 기대가 있었다. 이곳에서 화장실을 찾아 가는데 우선 상점 바닥의 판자를 들쳐 사다리를 내려가 그 밑에 급경사진 돌 층게가 약 15미터는 됨직한 곳에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용해 교묘하게 만든 수세식 설비는 트레킹 하는 동안 내내볼수 있는 것이었다. 히말라야의 험한 지세를 맛본 첫 경험으로 오랫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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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가니 비레탄티(Birethanti,1025m), 점심을 시켜먹는데 약 2시간이나 소비했다. 이곳에 우리의 유명한 산악인 엄홍길씨가 세웠다는 학교가 있어서 선배 산악인의 행적을 보는듯 했다. 또 이곳에는 ANNAPURNA SANCTUARY의 출입을 관리하는 사무소가 강건너 요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관리 통제하나 하고 의아해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개개인의 사진까지 붙여서 증명서까지 발급하고 있었다. 하기야, 이나라의 국가적 차원의 산업이라니 그럴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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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은 티게통가(Tikhedhungga,1520m)에서 산행 첫 밤을 지냈는데, 2인 1실로, 나는 이재걸 군과 같이 지냈다. 이 친구는 오랫동안 보이게 안 보이게 나를 염려하고 은근히 나를 보살펴 주는 고마운 친구이다.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사와 감기를 피하는 것이다. 정수된 물만 마셔야하니 항상 준비를 게을리 할 수가 없고, 수시로 변하는 덥고 차가운 바람은 땀에 젖을 때가 많은 산행에서는 공포의 대상이다. 물 2 리터를 사서 준비하고 카메라와 전화기의 충전을 했다. 전화기는 통화는 안 되지만 사진은 찍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외부 세계와의 연락은 포기한 상태이였다. 사실, 집을 떠나온 후로 처와의 연락을 못한 상태여서 마음은 좀 아쉬웠다. 에이 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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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일은 고레파니(Ghorepani,2860m)가 목표다. 1,340 미터를 오르는, 힘든 산행 일정이라고 한다. 이들의 표준 시간으로 6시간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것보다 훨신 더 오래 걸린 듯 하다. 참고로 이곳의 이정표는 미터나 마일로처러 거리로 표기 되어있지 않고 표준 산행으로 몇시간 걸린다고만 되어있다. 이것은 아마 이곳의 험한 지형 탓이라고 생각 된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이 사실상 중요하고,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는 이 지형에서는 몇 킬로미터라는 거리는 사실상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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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끝없는 돌게단의 연속이고, 오르고 또 올라도 또 방향을 바꾸어 다시 오르는 시커먼 돌게단의 연속은 힘이들고 짜증까지 나곤 했다. 어느 가이드는 울레리(Ulleri, 1,960m) 올라 가는데만 약 3,000 개의 돌게단이 있다고 하던 말이 기억이 난다.
울레리를 향해 돌게단을 오르던 중에 우리 일행중 한 여자분이 들어누어 일어나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그러나 모두 뾰죽한 대책이 없어 당황 하는중에, 기획사 가이드에게 사태를 맡기고 나머지 일행은 계속해서 진행하라는 결정이 내려젔다. 나는 마침 가지고 있던 Emergen-C라는 약을 물에 타드렸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날 늦게 고레파니에서 잠자리를 준비하는데 뒤에 처졌던 분들이 따라 올라와서 합류하게 되어 모두가 환호하며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의례적인 안내가 항상 뒤따랐다. “5시30분에 기상해서 6시까지 짐을 방 앞에 갖다 놓으십시오. 6시30분에 식사하고 7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짐은 포터들이 두 사람 것을 합쳐 한 포터가 둘러메고 우리보다 먼저 출발을한다. 여기서 포터들의 노력은 정말 초인적이고 신속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사람도 있고,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애도 있었다. 제대로 먹기나 하는지, 잠자리는 어떠한지,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누리는 것 보다는 훨씬 열약하다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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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의 잠자리 이야기를 하자면, 랏지라고하는 숙소는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고 샤워와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데, 건물은 날림으로 지어 허름하고, 더운 물은 여간해서 얻어 쓰기 힘들고, 좁은 방에 두개의 간이침대가 있다. 전기불은 아마 30촉이나 될까 말까하는 전등불 하나, 가방에 있는 물건 하나 찾으려면 헤드램프 전등을 켜야했다.
-제 2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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