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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여행 갤러리

2013-02-25: 노년의 안나푸르나 트렉킹 제 2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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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총무
댓글 0건 조회 54회 작성일 24-06-0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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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안나푸르나\n트렉킹 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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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은 고레파니에서 새벽에 푼힐(Poon\nHill,3,210m)에 올라 일출을 보는 날이다. 일출 구경후 데우랄리,\n반단티를 거쳐 타다파니(Tadapani,2,630m)에서 잠을 자게 되는데,\n이제는 높은 언덕을 지날 때면 멀리 눈덮인 산 봉우리들이 여러 개 떼지어 나타나곤 한다. 가이드들이 열심히 봉우리의 이름을 알려주곤 한다. 그 여러 봉우리 오른편에 유난히 눈에 뜨이는\n한 봉우리가 있으니 그 이름이 마차푸차레(Machhapuchhre,6,997m, 별명이\nFish Tail)라고 한다. 사진도 제일 많이 찍히고 제일 입에 많이 오르는 네팔의\n명산이라고 한다. 이 산은 네팔에서 가장 신성시되어 아무에게도 등산 허락을 아니 준다고 한다.\n우리는 앞으로 며칠간 이 산을 바라보며 산행을 하는데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아름다운 자태와 위용은 이\nABC 프렉킹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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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메라를 마노즈(Manoj)라는 현지인 가이드에게\n맡기고 기회 있을 때마다 찍어 달라고 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나하고 많은 대화도 하고 가져온 먹을거리를\n주기도 하고 등산 용품을 주기로 약속도 하게 되었다. 그의 신상 이야기도 듣게 되었는데, 그는 27살로 카트만두에서 영어 선생 자격증을 겸한 석사학위를 받은 네팔의 지식인이었다.\n영어 선생의 월급은 약 4만 루피인데 가이드 수입이 더 좋다고 했다.\n미화 일불은 약 85루피이니까, 그의 월급은\n$500이 미처 안되는 것이다. 네팔의 경제 수준을 대변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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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파니라는 조그만한 마을은 다른 마을들처럼 높은 산 중턱에 있는데 유일하게 전기가\n없는 곳이었다. 이 산중 마을들은 외부의 전기공급은 없고, 자체로 산에서\n쏟아지는 물을 이용해서 발전을 한다고 하는데, 그나마 여러 마을이 협력해야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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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은 시누아(sinuwa,\n2,360m)가 목표였다. 언뜻 고도만 생각하면 수월한 산행이라고 하겠지만,\n이것이 큰 함정이었다. 시작 지점과 종착점만 고도 표시가 되어 있는데 이에 속은\n것이다. 산 중턱 랏지에서 아침에 출발하면 보통 조금 내려가게 되고 강을 건너면 다시 오르막길이 되고,\n이것을 몇번 하다보면 몸은 지치고 앞의 까마득한 돌계단을 바라볼 때마다 힘이 빠지고, 왜 이런 짓을 시작했나 싶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열대 기후 지역을 지날때는 그래도\n그늘이 있고 울창한 숲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고도가 더해 가면서 산은 바위와 폭포뿐이요, 봉우리는  높고 웅장하며\n골짜기는 한없이 길고 길게 뻗혀 있고 나는 점점 힘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은 일행에게 뒤지지 않으려고\n선두에 서서 가보기도하고 사진도 찍으며, 중간 마을에선 손자들께 줄 선물도 사고, 웃어보기도하며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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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인 이날, 도중에 있는 어린이 학교에서 미리\n준비된 기부행사가 있었다. 등교일이 아닌데도 어린 학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우리는 준비해 가지고간 선물을 전달하고 그 자리에서 현금 모금도 했다학교측에서는 모두의 목에 노란색 명주로 된 환영의 목둘레를\n감아주며 환대하고 이마에는 붉은색으로 칠을 해 주었다. 전통적인 환영이란다. 모두들 낯설은 행사에 얼떨떨하며 연설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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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물은 주로 치약 학용품 등이었다. 학생들은\n교복을 많이 입고 있었으나 신발은 빈약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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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원래 계획은 시누아(sinuwa, 2,360m)였는데 모두 지쳤는지 계획을 바꾸어 촘롱(Chhomrong, 2,170m)에서 여장을 풀었다.\n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이 마을은 비교적 큰 편으로 100여호가 넘는 듯 했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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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은 시누아, 뱀부(Bamboo, 2,310m), 도반을 거쳐 히말라야(Himalaya,\n2,920m)까지 갈 계획이다. 다른 날보다 갈 길이 멀고 좀 험한 편이었다.\n뒤에서 포터하는 소리가 들리면 모두들 한쪽으로\n비껴서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발걸음이 빠른 짐꾼들에게 길을 내어주곤했다. 나마스테를 연발하면서. 그러다가 현지인들은 이 포터라는 말을 싫어 한다고해서 헬퍼라고 바꾸어서 부르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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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나마스테라는 인사는 네팔 사람들에게 쓸려고 배운 것인데, 산에서 부딪치는 모두에게 하다보니 편리하기도\n했지만 나마스테하고 쳐다보면 한국사람인 경우가 자주 있었고 서로\n어설프게 웃고 지나기도 여러번 하게 되었다. 여기는 네팔이고, 깊은\n산중인데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유럽사람들이  많은 듯했고, 단일국으로서는 우리 한국 젊은이들이 단연코 많았다. ‘내가 그 나이 때는 상상도 하지못할 일인데하면서 우리 국력이 많이 커졌음을 실감했고,\nLA에서 세상 변해가는줄 모르고 살아온 50년 가까운 나의 지나간 세월이 새삼 느껴지기도\n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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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왔다는 25살의 아가씨를 만났는데 혼자서\n포터 하나만 데리고 산행을 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그 아가씨가 그의 포터와 문제가 생겨 포터는 다음 마을까지만\n가고 그만 두겠다고 하여 어쩔줄 몰라하는 것을 보았다. 농담으로 “I hate you”라고 한 말에 오해를 사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가 안된단다. 내 가이드 마노즈가 설득을 해보았지만\n안 듣더라고 했다. 한국식 농담이 네팔 포터에게 통하지 못했나보다. 그 아가씨는 인도를 거쳐 한달 후에나 서울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여행을 잘 마쳤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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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길을 며칠째 걷다 보니 다른 그룹 사람들과 앞 서거니 뒤 서거니 하면서 자주 만나게되어\n낯도 익게 되고 손 흔들어 인사도 나누게 된 유럽계통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마을에서인가 같이 쉬게 되었는데\n우리의 H라는 젊은 대원이 싸이의 말춤을 그들에게 가르치고 모두가 같이 어울려 한판 춤을 추는 장면을 보았다.\n이 멀고 먼 곳에서 생면부지의 외국인들과 어울려 노는 이 장면에 나는 이상한 희망과 쓸쓸한 감회를 금할 수 없었다.\n세상은 좋아지고, 화합하며 잘 살아가는 미래의 희망이 보였고, 우리가 살아온 세월과는 너무나 생소함을느꼈다. 이렇게해서 세상이 더 좋와 지고,\n젊은 사람들은 더 행복한 삶을 갖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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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 와서 점점 식욕이 부진해 지며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곤 했다.\n빵이나 계란은 그런대로 먹겠는데 달밧 이라고 국과 안남미 쌀밥은 잘 먹어지지 않았고 스파게티라는 것도 모양만 비슷하고\n맛은 영 없었다. 닭고기를 가끔 주는데 그것도 잘 먹지를 못했다. 뒤에\n알았지만 은근히 고산증세가 오는 때문이었나부다. 영양 캔디를 준비해 갔는데 무게를 줄여달라는 바람에 호텔에\n놓고 왔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나----. 마냥 아쉽기만 했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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