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08: 노년의 안나푸르나 트렉킹 제 3 부 마지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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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안나푸르나\n트렉킹 제 3 부 마지막편
제6일은 히말라야(2,920m)를 출발, 데우랄리(Deurali, 3,200m)를 거쳐\nMBC(Machhapuchhre Base Camp, 3,700m)로 해서 드디어 ABC(\nAnnapurna Base Camp, 4,130m)에 가는 날이다.
아침 7시에 출발, 데우랄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서는데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나 싶었는데, 11시 가까이 되면서\n발에 힘이 빠지고 걷기가 힘들어졌다. 여기가 어디 쯤 되느냐고 했더니 MBC 바로 밑이라고하며 천천이 가도 되니까 쉬었다 가라고 가이드가 말해준다. 좀 쉬다가 다시\n30분정도 갔는데 점점 걷기가 싫어지고 앞에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다가오니 나도 모르게 길옆의 돌에 앉아지고 움직이기 싫어졌다.\n가이드에게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으니 약 3시간이면 ABC라며 97-98%는 성공한 것 이라고 한다. 처음으로\n돌아서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많은 시간의 준비와 지금까지 올라온 고생----\n그리고 언제 또 오겠는가 등 수많은 생각이 스쳐가며, 목표를 코 앞에 두고 돌아설\n것이냐, 좀 무리해서라도 더 갈 것이냐 갈등을 하며 하늘을 보니, 한\n조각 흰구름이 유유히 떠 있다. 뭐 그렇게 억지로 할 게 있느냐고 나에게 묻는 듯 하다. 산악회에 누를 끼치는듯해서 망서렸지만, 드디어 결심을 하고 이재걸군에게 무전을 쳤다.\n돌아서 내려오는데 마노즈가 후속 조치를 취할테니 가는데까지 가서 자고, 마지막 롯지\n란드루크(Landruk, 1,565m)에 본대와 합류하게 된다고 여유가 있으니 쉬며 쉬며 내려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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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돌아서자마자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어느덧 데울랄리에 다시 들어가 쉬고 있는데 한 떼의 한국사람들이 들어왔다. 알고보니 이들은\n혜초여행사에서 모집한, 서울에서 온 산악인들이었다. 마침 마주앉은 사람과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선생님은\n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물어, 한국나이로 일흔 여덟이라고 했더니,\n깜짝 놀라며 ‘대단하십니다. 우리 그룹에도\n노인들이 세명 있는데요’ 라고 한다. 그러고 있는데 저만큼에 있던 남자가\n가까이 와서 ‘선생님 지금 이 약을 두 알 드십시요. 완전히 탈진한\n얼굴입니다’ 하고 하얀 알약 여섯개를 내민다. 포도당 알약이라며 지금\n필요할 것 이라고 한다. 그 약을 받아 먹고 10분가량 되니 얼굴에\n화기가 돌고 생기를 느끼는 듯 했다. 그분이 얼마나 고맙던지! 나는\n내 상태가 그 정도인지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은 혜초여행사의 윤익희이사님으로서\n그팀을 인솔하고 있었으며 산행 전문가 이시었다. ‘힘든 운동 중에 갑자기 쓸어져 죽는 사람은 자기 상태를\n자기도 모르고 계속하다가 쓰러지나 보다’하는 생각이 드니 소름이 쭉 끼쳐온다. 이런 줄도 모르고 무리를 해서 끝까지 갔더라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구 끔찍해.\n어 휴!
점심을 먹고있는데 누가 찾아와 인사를 하며 ‘선생님\n대단하십니다. 저는 예순 여덟인데 제가 선생님 나이에 이렇게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라며 꾸뻑한다. 이거 원 내가 그렇게\n늙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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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뒤지지 않으려고 기를쓰지 않아도 되고, 여유있게 나 혼자 내 마음대로 가고 쉬고 할 수 있다. 아, 아 ,자유! 자유! 자유가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그날은 다시 히말라야에 돌아와 독방에서 밤을 지냈다.
제7일 아침 늦게 천천이 가이드 마노즈와 둘이서\n내려왔다. 산도 물도 골짜기도 하늘마저도 새롭게 보이는 것 같아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아 아 좋다! 심호흡을 실컷 해 봤다. 그날은 촘롱에서\n 일찍 자기로 했다.
제8일은 늦게 떠나 곧 지누단다(Jhinudanda,\n1,780m)가 나오고 그 옆에 천연 온천이 있어서 오랜만에 목욕을 했다. 얻어\n쓰기 어려웠던 더운 물이 세 군데서 콸콸 나오고, 두 개의 제법 큰 노천 욕탕이 있어서 헤엄도 쳐보고, 약 한시간 가량 쉬었다. 정말 날아갈\n것만 같았다.
온천을 떠나 약 30분 가량 내려가는데 뒤에서\n어떤 사람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쫓아 오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서 있는데 이 사람이 가까이 오더니\n불문곡절하고 돌멩이를 들어 마노즈를 때린다. 나는 영문을 몰라 서있는데, 이 청년이 마노즈가 들고 있던 내 빨래가 들어 있을 비닐봉지를 나꿔채서 내게 보여주는데, 들여다\n보니 그 비닐 안에는 현금이 한웅큼 들어 있었다. 의아해서 마노즈를 보니 곧 정황을 알아챌수 있었다.\n마노즈는 내 빨래 봉지로 잘못 알고 비슷하게 생긴 그 남자의 현금 봉지를 들고 온 것이다. 이 두 네팔 청년들이\n다시 온천에 올라가 오해를 풀고 오는데 한참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남은 것은 란드루크에 가서 자고 내일이면 8박 9일의 트렉킹 일정이 모두 끝나고 서울로 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다고 생각하며 물병을 찾으니 어 어, 물병이 없다. 마노즈가 내 배낭 무게를 줄여준다고 그가 지고 다니던 \n물병이 아까 그 소동 속에서 잃어 버린 것이다. 어찌해야 하나?\n나는 마실 물이 없었고 우리는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었고, 어느쪽으로도 한 시간\n이상은 걸린다고 한다. 마노즈가 최대한 속도로 지누단다로 가서 물을 사오기로 하고 나는 서서이 길을 계속\n가기로 했다. 한 시간쯤 더 걷는데\n하도 목이 말라서 안약을 몇방울 혀에 떨어뜨리니 좀 나아지는 듯 했다. \n얼마후 가지고 온 물의 맛은 형용 못할 만큼 환상 이었다. 마시고 또\n마시며, 이젠 살 것만 같았다. 인간은 이렇게 물 없이는 못 사는 약한\n존재인가 생각하니 숙연 해 진다.
오후 일찍 란드룩에 와서 먹고 마시고 낮잠까지 자면서, 현지 주민들과 대화도 하면서 쉬고 있으니,어느듯 어두워지면서 머리에 램프까지 켜달고 늦게 도착하는\n본대를 만났다. 마지막 날 후미 그룹의 일정은 거의 내가 이틀간 걸어온 길이었다. 내가 만약 무리를 해서 돌아서지 않고 이들을 따라 갔었더라면 나도 저렇게 강행군을 했어야 했으리라. 아 아 얼마나 지혜롭게 잘 생각해 돌아 섰던가! 후유. 내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기분이다.
그날 저녁은 우리와 가이드와 헬퍼(포터)가 모두 한자리에서 처음으로 식사를 같이 하며 노는 작별 파티 자리었다.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n사람도 있었다. 이것으로 힘든 일정은 끝나고 내일 포카라로, 카투만두로\n가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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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에서는 International Mountain Museum이 유명하다고 구경을 했고, 몽골에서 온 난민촌에 가서 구경하며 그들의 수제품을 몇개 구입했다.\n오랜만에 한국식당에서 닭고기 냉면을 먹었는데 그동안 부실했던 식사 탓인지 아주 시원하고 맛있게 먹었다. 호텔로 가는 길에 창밖의 시내 거리는 혼잡하지만 카트만두 보다는 깨끗해 보였고, 크고 누런\n소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내 생애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할 큰 산행을 마쳤다. 히말라야에서 8박 9일, 쉴 새 없이 계속된 강행군을 77세의 암 생존자로서, 산악회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무사히 마친 사실은 가슴 뿌듯한 자신만의 인간승리로 치부하고\n싶다. 이 원정을 격려해 주고 도와주신 모든분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또 이 원정을 기획하느라 수고하신 조상하 기획이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길석기, Fullerton, California
Novemb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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