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스카란 산 등정 이야기 (3)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와스카란 산 등정 이야기 (3)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 만 우
댓글 0건 조회 504회 작성일 14-01-13 00:00

본문

 

 

와스카란 산 등정 이야기 (3)

 PERU 055.jpg

 

 

   무소 산간 마을로

 

     다음 날 아침 짐과 함께 대형 버스 두 대로 나누어 베이스 캠프로 향했다. 버스좌석은 사람보다 대부분 짐이 차지했다. 제법 많은 양의 짐이다. 우아이라스(Huaylas)계곡을 따라 거친 비포장도로를 2시간가량 올라 산입구인 무소(Muszo)마을에 도착했다. 고도가 3,100m나 되니 등정도 시작하기 전에 두통을 호소하는 대원도 있었다. 14명의 대원, 15명의 현지 도움이, 15마리 당나귀들에게 산행 중 필요한 각종 식픔, 등반 장비 및 취사도구 등을 베이스 캠프(4,400m지점)로 운반할 당나귀와 현지 도우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또는 지척의 쓱쓱 솟은 산봉우리들이 제각기 자기에게 오라며 아침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자태를 뽑낸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인다. 우리가 차로 이동한 아우일라스 계곡을 사이로 남북 산군의 상태는 사뭇 다르다. 높이는 큰 차이는 없는데도 남쪽은 눈이 전여 없다. 반면 북쪽 산들은 만 년 설로 덮여 있다. 남쪽을 Cordillera Negro(검은)로 부르고 북쪽은 Cordillera Blanca(흰색)로 부른다.

 

     아주 오래된 이 산간 마을은 고풍의 성당, 동상, 공원등 유적지가 눈에 띤다. 가까이 다가가 살피니 역사적 의미가 생생한데 나라 살림 사정이 여의치 안아 방치하는지, 혹은 침약자들의 유산이라 관심이 없어 돌보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침 겸 차를 마시고 싶어 마을에 유일한, 한눈에 마을 전경을 볼 수 있는 찻집에 들렸다. 순박한 아가씨가 반가이 맞이한다. 투박한 용기에 담긴 감자, 옥수수, 삶은 달걀에 현지 특유의 차는 도시의 어느 멋진 커피 삽 못지않게 정감을 주었다. 어설픈 스페인어로 역사에 관한 이런저런 질문을 해 보나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괄한다. 남 유럽인들의 침공이 그들의 살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도 관심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았으면 하는 마음뿐인 것 같았다.

 

     이곳 마을들을 스치면 재미있는 관경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마을 주택이나 다리에는 구조물 옆으로 위로 철근이 공사 중인 것처럼 불쑥불쑥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공사 중이 아니라 공사가 완료되어도 그대로 놓아둔다. 그들은 경제적 사정이 허락하면 계속 확장 증축하려고 철근을 자르지 않고 보존한다는 것이다. 공사가 말끔히 마무리되어야 하는 우리 생각과 사뭇 다르다. 삶의 방식에는 좋고 그름 보다 차이만이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모습이다. 

 

PERU 167.jpg

 

     베이스 캠프로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모두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산신령에게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행사도 잊지 않았다. 국립공원 관리 사무소는 산의 유명세 치고는 너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초라한 건물에서 직원 한 사람이 돈 받고 표를 주는 것이 고작이다. 한가히 산간 마을을 지나 빙하의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걸었다. 차디친 물속에 정상의 혼이 우리를 반기는 듯 했다. 물에게 묻고 싶어진다. 와스카란 정상에서 언제 출발했는지 그리고 그곳 날씨는 어떠한지를.

 

     잡목이 무성한 계곡을 지나서 능선에 올라 따라 한 시간 정도 오르니 맞은편 중턱에 대형 텐트가 보인다. 베이스캠프에서 먼저 도착한 대원들과 포터들이 식당 겸 회의실로 사용할 대형 천막과 침실용 소형 천막 5개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오후 늦게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모두들 피곤하고 시장한 모습이다. 베이스 캠프는 미 대륙에서 가장 높은 휘트니 산 정상과 같은 높이이다. 피곤한 상태에서는 이정도 높이에서도 고소증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저녁 식사 책임자인 왕 대원(성이 왕씨) 흰밥과 된장찌개로 저녁을 준비 중에 있다. 냄새가 코를 찌른다. 왕대원이 갑자기 소리친다. 누가 밥에 소금을 넣었어?” 알고 보니 현지 주방 도움이가 자기방식대로 소금을 넣어 밥을 지은 것이다. 입맛이 없던 차에 짭짤한 밥은 나는 그리 싫지 않았다. 현지 도움이들과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새로운 어떤 것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도 계속 있을 일이다. (계속)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Copyright © 한미 산악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