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스카란 산 등정 이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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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스카란 산 등정 이야기 (5)
정상을 향하여
뜬 눈으로 지샌 밤, 새벽 1:30분 마르코가 준비한 따뜻한 꼬까 차를 마신 후 칠흒같은 어두움 속에서 정상을 향한 등정이 시작 됐다. 오직 헤드렌턴의 안내를 받으며 줄에 묶여 앞으로 앞으로만 향한다. 크래바스를 통과하면 빙벽이, 빙벽을 통과하면 다시 크래바스가… 어느 한 걸음 방심하면 사고가 난다. 로프를 함께 맨 대원 모두가. 날이 밝아 오면서 정상이 지척같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 했다. 그러나 갈 길은 멀었다. 우리는 캠프 #2에서 기후 때문에 거의 정상에서 돌아선 유럽 등정 팀, 사고로 다리 골절로 부축을 받으며 내려오는 또 다른 유럽 등정 팀을 만났었다. 가급적 일찍 정상에 오르라는 조언을 우리에게 해 주었다. 늦어도 오전 10시까지는. 고산에 기상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고산은 자기 고유의 날씨를 가졌다고 흔히들 말을 한다. 게이지를 보니 6,600m이다. 정상이 6,768m이니, 168m의 고도를 더 오라야 한다. 배가 고프다, 아프다, 피곤하다는 정상 환경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극한 상황에서는 기진맥진만이 어울리는 용어다. 눈을 한 주먹 쥐고 입에 넣는다. 꿀맛이다. 정말 맛이 있다.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그렇게 느껴진다는 어느 경전에서 읽은 말을 대변한다. 마침내 날이 활짝 밝았다. 주변의 경관들이 시야에 펼쳐진다. 발 아래 먼 발치에는 수 많은 크래바스와 와스카란 북봉이 태양과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참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느낌으로만 가득하다. 피로가 한 번에 모두 가시는 기분이다.
마침내 정상인 것 같다. 그러나 아니었다. 정상인 것 같아 올라서면 다른 설사면, 이를 몇 번이나 그랬을까? 한 걸음 걷기 위하여 긴 호흡이 세 번 필요하다. 한 거름 내딛고 긴 호흡 세 번, 그리고는 서로를 둘러본다. 한 줄에 묶인 우리들 가장 힘든 이를 기준으로 움직여야한다. 굼뱅이가 보아도 기절초풍 할 모습이다.
만일 누군가 또는 내가 여기서 사고를 당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 하나도 감당키어려운데 남을 구조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반대로 내가 당하면 나머지 대원들이 나를 살려내는 일이 가능한 일인가. 내 가족은 ? 별야 별 생각을 다한다. 그래도 아무생각이나 몰두하는 것이 고산에서는 고통을 이겨내는데 좋은 방법이다. 사실 나의 목표는 와스카란 산이 아니다. 에베레스트 산이다. 이를 대비하여 와스카란 산은 한번 쯤 거쳐가야 할 산이기에 나선 것이다. 일전에 알래스카에 있는 맥킨리 산도 등정한 경험이 있지 않는가. 그런데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디 감히 에베르스트를. 그러는 사이에 발은 한 걸은 한 걸음 움직여 힘들고 느리기는 해도 정상에 점점 다가 가고 있었다. 눈으로는 정상이 지척인데 시간만 기다리지 않고 제 갈 길만 간다. 정상에 10시 전까지 서야한다. 그 후 기온이 오르면 기후를 예측하기가 어렵고 또한 하산 때 밝은 대낮에 위험한 곳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숨이 더 버거워진다. 견딜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앞선다. 고산에서의 무리는 곧 죽음이라던데, 차라리 돌아설까. ‘여기서 죽어도 여한은 없어’ 하는 만감이 교차한다. 그 때마다 줄에 한데 묶인 동료들이 괜찮으냐고 손짓으로 물으면 누군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늘 위로를 해 주었다. 조금씩 조금씩 정상으로 향하니 드디어 조그만 빨간 깃발이 눈에 들어온다. 제법 평편한 한가운데 펄럭이는 그 깃발이 정상임을 알리는 것이었다. 20여 번 발을 움직이면 정상이다.
드디어 정상이다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지 9시간 만에 정상에 드디어 도착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서로 얼싸 안으며 성공을 자축했다. 사방이 끝없이 펼쳐진 산 위에는 하얀 구름이 거센 바람에 밀려 이산 저산을 넘나든다. 신의 사주를 받았는지 매정한 차디찬 바람은 장상에 머무름을 허락하지 않고 하산만을 재촉한다. 항상 그랬듯이 정상에 서면 바람도 제법 세차고 매우 추워도 피로가 잠시 말끔히 사라진다. 좀 느긋한 마음으로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눈 산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벅차 온다. 드높아 보였던 구름조차도 저 밑에서 눈 산을 떠도는 부랑 초에 불과하며 세상을 모두 덮어 버린 하얀 눈과 그 위의 파란 하늘 그리고 그사이에 서있는 나만이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정상을 알리는 작은 깃발에 얼굴을 비벼대니 눈물이 절로 흐른다. 내일이면 사라질 것들을 움켜쥐고 누군가 쳐 놓은 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리며 사는 내 보습이 가련하여 잠시나마 그저 대자연과 자유로이 하나이고 픈 마음의 간절한 눈물인 것이다.
고산에서 정상에 서서 이러한 느낌을 가져 본다는 것은 반은 의지이고 반은 운명적이다. 아니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산소가 희박한 탓에 숨이 더 세차게 차 올름을 느낀다. 이러한 상태에서오래 머무르면 두뇌에 손상이 올 수도 있다. 서둘러 어설픈 포즈를 취하며 기념 촬영을 했다. 발 옆에서 파르르 떨는 꼬마 빨간 깃발도 함께.
미국에 산들은 정상하면 동판에 정보를 각인하여 놓아두는 것이 보통인데 지구의 명물인 와스가란 산 정상을 알리는 손 바닥 만한 뻘간 깃발이 고작이라니, 그러나 영구 구조물을 설치 해 봐야 언제 눈이 덮어 버릴지 알 수 없기에 수시로 가이드가 작은 깃발을 꼿아 정상임을 알린다는 가이드의 말이 이해가 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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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FNGKaR9OxEo&list=PL140B44B0928A1DCB&feature=share&index=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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