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생일에 즘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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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 생일에 즘 하여
이 만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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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네, 저녁 먹었니? 응 대충. 누구하고? 그냥 공부하면서. 오늘 잘 지냈어? 그렇지 뭐."
이것이 딸 아이와 나눈 오늘 대화이다.
어쩐지 ‘대충, 그렇지 뭐’라는 말에 신경이 쓰인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일이 창의성이 없어 보람을 못 느낀다며 2년 만에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딸 아이가 무척이나 안쓰러워 보였다. 한때 이제 애들이 제구실을 하나 싶어 ‘나는 자유인이다.’라며 기지개를 켜기도 했는데, 공부를 더 하겠다니 부담이 느껴져 미워해 본 적도 있다.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지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벌써 잊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그 나이에 큰 녀석을 돌보고 있었는데, 아직도 어항 속에서 먹이를 받아먹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금붕어처럼 내 눈에는 어른 아이이다. 어려서부터 성적 잘 받아오는 것만 대견스레 이 생각했지 재능을 찾아 키워주지 못해 진로에 방황하는 모습을 볼때는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경쟁적인 일을 던져버리고 자기 가치에 따라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 대견스럽다.
내 그 나이 방황했던 시절 20대 후반, 스스로 설정한 리셋버튼 한번 눌러 보지 못하고 주변 상황에 끌려 여기에 와 있는 나 자신을 회상하면서 ‘나는 진정 성숙한 어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인성과 정서면에서 좀 관심을 기울였다면 달라졌을 터인데 하는 죄책에 내 딸이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는 변명만 늘어놓는다. 나는 분명 아버지로서 할일을 게을리 했다. 이 심경을 아내에게 털어 놓으면 "다 그렇지"라고 대답하지만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일은 딸 애 생일이니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을 해주고 싶어 자판 앞에 앉았다. 사내아이 같으면 내가 편한 대로 이야기하면 되지만, 딸 아이가 “또”하며 짜증을 낼까봐 좀 신경이 쓰인다. 지금도 딸아이를 대면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오늘도 기껏 하는 이야기가, ‘늦었네, 저녁 먹었어, 오늘 어땠어.’ 하는 것이 고작이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오늘은 조심스레이 세대에 걸맞은 말을 해주려 뜨거운 말, 미지근한 말, 차가운 말은 골라내고 부드럽고 따스한 말을 찾는 중이다. 제값을 못하는 어른, 이미 세상을 맛본 애들에게 자기 생각조차 바르게 전달 못 하는 내가 맘에 들지를 않는다.
먼저, 다양한 방면에 친구를 많이 사귀고 그들과 잘 지내라고 말하고 싶다. 삶에사 아주 사소란 것들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편안한 친구들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물론 만나는 즐거움과 헤어지는 아픔, 성취의 기쁨과 실패라는 좌절을 겪을 것이다. 이는 한 묶음으로 누구나 겪으면서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늘 책을 접하고 생활에서 느낀 바를 적어 보는일, 취미활동도 게을리하지 말 것을, 가족이나 벗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이들은 앞으로 살아 사는는데 얼마나 소중한지 많은 사람들이 너무 늦어서 깨닫는다는 말도 남기고 싶다.
‘너무 목표 지향적이면 주위에 소중한 것들( 건강과 정서관리, 이웃돌봄 등....)을 지니치기 쉽다’는 말도 곁들이고.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올 때 못 본 / 그 꽃.’ (‘그 꽃’ 전문, 고은)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김춘추 ‘꽃’ 중에서)
라고 노래한 시인처럼
내 지난 먼 시절 자신과 주위에서 못 본 그 꽃들을 지금 내려가는 길에 보이니 너는 지금 자세히 살피라고, 꽃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꽃이 되어주라는 말도 당부하고 싶다.
‘잘 엮인 책처럼’ 살라고 당부하련다.
울타리가 되는 표지 위에느 삶의 목표인 제목이 뚜렸한 책말이다. 이 표지를 넘기면 여백이 있어 잠시 마음을 가다듬게 하고, 이를 넘기면 삶에 여정인 차례가 가즈런이 놓여있고, 삶을 펼쳐나갈 머리말을 시작으로 내용이 전개되는 책. 글자가 중요도에 따라 크지도 작지도 않고, 가끔 여백을 두어 쉬면서 생각할 여유를 주게 하고. 내용은 ‘모든 이와 이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 이면 좋겠고 중간마다 삽화가 있어 상상을 끌어내어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책. 구상을 마무리하는 에필로그와 살면서 도움을 준 이들의 색인이 있는 그러한 책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나의 바램이 메아리가 아닌 진정으로 가슴에 스며드는 말이 될 수 있을까. '그간 중요할지도 모르는 사소한 것들에 너무소홀히 했구나, 어서 나보다도 더 따듯하고 믿음직한 손이 나타나 딸 아이 손을 잡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두손 모으면서 고민해 본다. 지나친 당부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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