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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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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lbert
댓글 0건 조회 620회 작성일 12-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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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기

     

   한여름의 Ice House Canyon 오르는 길, 산자락이 맞닿은 계곡은 물의 용틀임 그대로입니다. 산의 정기(精氣)가 물살을 타고 내려오다가 바위를 만나 치솟아 오릅니다. 물의 포말(泡沫)은 겸손을 보여주라는 부서짐이고, 물의 포효(咆哮)는 욕심을 비우라는 명령입니다. 이는 산이, 자연이 땅위의 모든 생명체에게 특히 만물의 영장(靈長)이라 스스로 일컫는 인간에게 깨우치라는, 마음 내려놓기의 가르침입니다.

     

    어제 산행 길, 뒤에 쳐져 올랐습니다. 오르기에만 급급했던 예전의 마음을 다잡고 서두르지 아니 하자, 발에 와 닿는 느낌이 다릅니다. 앞선 이의 발걸음 따라 그냥 좇아 걷기만 했던 길(trail)이, 그 길이 바뀜에 따라 산도 다르게 다가옵니다.

    꾀죄죄한 한해살이 들풀, 볼품없이 뒤엉겨 잡풀더미, 중키의 도토리나무, 그리고 하늘 찌르듯 뻗은 소나무 등, 이들의 내뿜는 향취는 모두 감미롭습니다.                 

   오름에 따라 하늘이 보여주는 색깔도 다릅니다. 푸른 하늘이 층층이 쪼개져 층마다 다른 색감(色感)으로 보여주어, 굽이굽이 돌아오를 때마다 고개를 젖히게 합니다.

   뺨살을 간질이는 솔솔바람, 목덜미와 등의 땀을 씻어주는 바람, 이 바람의 결도 길 따라 다릅니다. 포근한 흙길, 물 뒤넘는 징검다리길, 흙과 물이 엉킨 진창길에서는 솔솔바람이 불고, 부서진 바위가 널브러진 돌길에는 시원한 바람이, 깎여낸 산허리의 모랫길에는 하늬바람이 몰아칩니다.

     

   뒤쳐져 내려오는 길, 평소와 달리 느긋한 마음이 됩니다. 산이 말없이 가슴 안에 자리한 ‘버거운 생각을 선뜩 내려놓으라.’고 일깨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저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틀림없다는 확신으로 다가옵니다.

    몇 해 전 입적(入寂)한 스님 한분은 그의 수필에서 ‘맑고 고요하고 숙연한 산의 침묵에 묻혀있을 때, 사람은 자기 자신을 깨닫게 된다.’고 서술했습니다.

    2년 전 처음 가서 Vivian Creek Trail을 12시간에 다녀온 오만(傲慢)이, 지난 22일 겁도 없이 왕복 16마일의 San Bernardino Peak에 오르는 길에 들어서게 했습니다. 하룻밤 자고나면 회복되었던 젊음을 잃은 지 오래되었고, 꾸준한 산행을 등한시해 그동안 근육세포가 얼마만큼 줄어든 지를 망각(忘却)하고서. 산은 산마루 2마일을 남겨놓고 허벅지와 종아리가 뻣뻣하게 뭉치는 형벌(刑罰)로 주저앉혔습니다.

    여러 번 꿈꾸어왔던 John Muir Trail의 동경(憧憬), 허황된 욕심임을 뒤늦게 깨닫고 내려놓으니 마음은 차분합니다. 어디선가 읽은 “등정(登頂)은 산이 한때 사람의 오름을 너그럽게 받아주는 것이다.” 구절을 떠올리고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래도 좀은 아쉽습니다. (201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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