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West 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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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웨스트를 찾아서
태평양 연안의 로스안젤에스와 대서양 연안인 플로리다 마이아미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로스안젤에스는 사막지역이어서 건조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지만, 마이아미는 대평원의 열대성 습지대로 비가 자주 와서 초록색으로 짙게 덮여져 있다. 비치 가 고급스러운 현대식 건물과 대서양의 푸른 바다가 즐비하게 세워 놓은 요트와 함께 어우러져 부자 마을 냄새가 물씬 풍긴다.
마이아미 인근에는 바다를 배경으로하는 명소가 많다. 그중 플로리다키(The Frorida Keys) 전체를 관통하는, 섬과 섬을 다리로 연결하여 만든 하이웨이 원( Florida HWY One)은 바다경치의 극치이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하이웨이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길 마지막에 키웨스트 섬이 있다.
플로리다키 전체 길이는 129마일, 마이아미에서 키웨스트 섬까지는 150마일이며, 진입로부터는 109마일 된다. 전체 구간을 다섯 구간으로 나눈다. 첫 구간 30마일을 키라고(Keys Lago)로 부르고 과거 영화 촬영지로 유명했다. 두 번째 구간 아이스라모라다(Islamorada, 22마일)은 바다낚시의 천국이다. 세 번째 구간 15마일의 마라톤(Marathone) 은 수심이 낮고 모래가 고와서 아름다운 비치로 명성이 있으며. 네 번째 구간인 빅파인키(Big Pine Keys, 26마일)은 야생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 사슴 등 야생동물이 뛰어놀고 있다. 마지막 구간 9마일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키웨스트 섬이다. 국제비행장, 유명호텔, 해군기지 가 있는 제법 큰 도시이다.
키웨스트 향하는 섬 주변 바다는 연두색, 초록색 , 푸른색 그리고 고동색을 띠며 출렁이고, 섬마다 리조트 시설이 바다와 어우러지게 잘 설치되여 경관을 자아낸다. 곳곳에는 보트, 가야키, 낚시, 스노글링, 젯스키 등 물놀이하는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 없다.
키웨스트까지는 거리상으로는 멀지는 않지만, 대부분 제한 속도가 40~50마일이고, 중간 중간 차을 마시고 분위기 있는 식사도 하려면 6시간은 족히 걸린다.
지나치는 곳마다 주변 지명이 대부분 'xxx Key' 로 되여 있음이 특이 했다.
키웨스트 및 주변 섬에는 오래전부터 쿠바 하바나(Havana)에서 온 고기잡이들과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았다. 1763년 대영제국이 플로리다 지역을 지배할 시는 그들은 모두 하바나로 쫓겨 났으나 스페인이 점령한 후에 다시 이주 하여 스페인과 함께 영구히 정착하게 되었다.
스페인 해군기지 사령관 개인 소유였던 이섬은 플로리다가 미국영토가 된 후(1821년) 미국인이 그당시 범선 한 척 값인 $535에 구입하였으나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본격적인인 주민 이주는 쿠바 독립 소요와 남북 전쟁 시 피신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하기 할 때부터 이다. 그 후 하바나인이 이곳으로 대거이주 정착하였는데 이들을 콘치(Conch)라고 불렸다. 그들은 이주자를 솔트워터콘치 (Saltwater Conch),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을 프레시워터콘치 (Freshwater Conch)라 구분하여 부른다. 1890년대에는 이곳 인구가 18,800명이나 되었고 플로리다 주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의 하나이었다.
콘치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콘치조개(Conch Shell, 피조개)을 나무 가지에 걸어 집 앞에 세우는 관습이 있다.
이 피조개 스프가 이곳의 특산음식이다.
그들은 1982년 4월 23일 The Conch Republic 독립을 선언하고 매년 독립기념일 행사를 하면서 실제적인 독립을 염원하고 있다.
1912년 바다와 섬 위 마이아미에서 키웨스트를 연결하는 철도가 세워졌다. 100년전 이 거대한 공사를 진행한 기술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나 이 철도는 1935년 허리케인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몇 곳에만 원래모습이 남아있어 일부는 낚시터와 인도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1938년 섬과 섬을 다리로 연결하여 현재의 길이 만들어졌다. 긴 다리는 7마일이나 된다니 이 거대한 공사에 그져 경이하게 바라볼 뿐이다.
키웨스트에는 헤밍웨이 등 유명 인사들이 작품 활동을 한곳이기도 하다. ‘무기여 잘 있거라’ 도 이곳에서 쓰였다. ‘욕망이라 부르는 열차’, ‘장미문신’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극작가 테네시 윌리암도 1983년 세상 을 떠났을 때까지 줄 곳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유명한 두 작가는 이 좁은 섬에서 살면서 헤밍웨이 집에서 한차례 만난 것이 고작이라 한다.
해리 투루만 전 대통령은 겨울이 되면 이곳에서 3개월가량 집무했다. 그곳을 겨울 백악관(Winter White House)이라 부른다. 미국에서 가장 남쪽이라는 표지인 키 웨스트 이정표(Southernmost Point, Continental USA) 는 관광 명소이다.

이정표에 도착한 때는 해지기 바로 직전이었다. 도로가 매우 협소하며 파킹장 찾기가 매우 어려워 배회하니 일몰을 놓칠까봐 안탑까웠으나 다행이 한 자리 구했다 말 탄 경찰이 순찰하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인 이었다.
이곳에서 쿠바 하바나 까지는 구십 마일 정도로 마이아미 보다 가까우니 날씨만 좋으면 눈앞에 있을것 같았다. 출렁이는 망망 바다 저 멀리에는 저녁노을 그리며 조용히 잠기는 태양과 막막히 떠있는 이름 모르는 배가 어우러져 평화스런 모습을 자아 냈다. 이를 배경으로 이정표에서 폼 한 번 잡아 보았으나 마음에 차지 않았다.
상업중심 듀발 (Dubal) 거리를 중심으로 늘어선 상가는 오래된 주택을 개조하여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안내소에서 소개받은 식당을 찾았다. 바닷가를 낀 스포츠 바를 겸한 크고 분위기 있는 식당이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손님이 넘쳐 매우 혼잡했다. 대부분 유럽에서 온 손님들인 것 같았다. 다시 조용한 식당을 찾아 옮겼다. 200년 가까이 됐다는 집이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전 되어 있었다. 이름도 기억 못하는 생선 요리로 초출한 저녁시간을 가졌다. 식사 후 구경삼아 거리로 나와 오랫만에 상점들을 드나들면서 이것저것 기웃거리니 나에게는 모두 생소한 물건들 뿐이어 신기하기도 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삶을 즐기는구나 하면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거려진다. 불경기란 말이 무색 할 정도로 여행객으로 분주한 거리 모습이다.
예약한 숙소를 찾아 나섰다. 도중 ‘김스 쿠비안샌드위치’ 라는 간판이 눈에 띤다. 이 주일가량 여행하면서 한 명의 한인도 만나지 못해서인지 ‘김스’ 라는 단어에 눈길이 간다. 내 숙소는 물가에 있는 오래된 리조트이다. 널찍한 방에 비치 분위기에 맞게 잘 꾸며져 있었다. 맑은 대서양 물결이 식당 앞까지 출렁거렸고 이 물가를 따라서 만들어진 운치있는 산책로가 마음에 들었다.
밤이 깊어지니 파도소리가 요란해진다. 눈을 감으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산이 좋아서 중남미를 몇 차례 여행하면서 그곳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지금 들리는 파도소리에서 잉카, 마야, 아스테카, 문명의 원주민들의 슬픈 사연이,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음이, 스페인 포르투칼 정복자들의 고성이 함께 들려온다.
시간에 묻혀 버린 상이한 아메리카대륙의 문화의 흐름 속에서 나의 현 위치가 어떠한 관련성 있는가를 회상하면서 잠을 청해 본다.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세월속에서 끊임없는 부딪침과 흐름에 떠밀려 지금 이곳에 누워 있다.
지금 이곳에 있음이 나 자신과 세상에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
밤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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