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개, 이슬비 그리고 눈보라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산안개, 이슬비 그리고 눈보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albert
댓글 0건 조회 448회 작성일 11-11-22 00:00

본문





산안개, 이슬비 그리고 눈보라

  

   어제 아침, 2번 H'way에 오르자 산안개가 마중 나오고 굽이돌아 오를수록 겹겹이 감싸옵니다. Buck Horn 주차장을 한 구비를 못 미쳐서부터 홀연히 설원(雪原)이 펼쳐지고, 차를 내리자 싸아한 하늘 내음을 내뿜는 이슬비가 내립니다. 곱은 손가락을 연신 주물럭거리며 방한복을 걸치고 아래위로 방수복을 덧입습니다.

    “오동나무 잎 하나 떨어져 천하의 가을을 알 수 있다(梧葉一落盡知秋)”인양 화씨 34도의 쌀쌀함이 겨울산행이 되었음을 일깨워줍니다. 햇살을 받지 못한 곳곳에는 먼저 내린 눈이 굳어져 있고 오를수록 삭풍(朔風)이 제철을 만남을 보여주듯이 거세집니다.

    40여분 오르자 이슬비는 싸락눈으로 바꿔져 뺨살을 에이게 찌르고, MT. Waterman과 갈라지기 조금 전부터는 소나무 가지마다 눈꽃(雪花)을 피워냅니다. 이 눈꽃은 왜인지 “봄날 느닷없이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직접 진홍색 요요한 꽃을 뿜어낸다.”는, 어느 글에서 읽었을 뿐 직접 마주하지는 못한 ‘박태기나무 꽃’을 머릿속으로 그리게 합니다.

    세거리 길에서 두 봉우리를 오르내려 닿은 Twin Peaks saddle에서 점심요기를 싸락눈과 함께 허겁지겁 마치고 곧바로 되돌아 나섭니다. 왔을 때의 발자국은 흔적도 없어져, 마치 아득히 넓고 끝이 없는 바다(茫茫大海)에 홀로 떠있는 한척의 조각배(一葉片舟)가 된 듯싶습니다.

    얼마 전 비운(悲運)의 촐라체 사고 후 고국의 원로산악인 한분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산행은 집에 돌아옴에서 끝난다.”는 말씀이 새내기인 제게도 되뇌어집니다. 그리고 산에 오를 때는 좀 더 겸허하게, 자연에 조금이라도 거슬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다짐하며 한걸음씩 내딛습니다.

    어느덧 어스레 어둠에 잠기는 주차장에 다다르자 지붕과 유리창에 수더분하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차들이 따사한 이불 속처럼 느껴집니다.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 산길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안전히 이끌어주신 김 중석 선배님과 미끄러운 눈길에 낙석(落石)으로 어지럽혀진 내리막길을 운전하고 태워주신 김 길영 선배님께 고마운 마음 가득 드립니다.(2011/11/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Copyright © 한미 산악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