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禮讚—산에 오른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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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禮讚—산에 오른다, 고로 존재한다.
어제 MT. Timber에 다녀왔습니다. 산마루 바로 밑 하늘 높이 뻗은 솔잎을 보려면 고개를 90도 꺾게 하는 노송(老松)들이 주위를 둘러싼 그리고 진토(塵土)된 고사목이 널브러진, 갈 때마다 찾는 쉼터자리에서 점심과 낮잠을 즐겼습니다.
여러 번 다녀 낯익은 길이기에 내려가는 걱정을 아니 해도 된다는 마음 놓음이, 땅에 가깝게 다가가게 했습니다. 맨땅에 머리 가슴 팔 다리 등 온몸을 오체투지(五體投地) 마음가짐으로 엎디었습니다. 숲은 맑고 푸른 향(香)을 내뿜고, 산은 나무가 길어 올리는 땅의 정령(精靈)으로 충만했습니다.
쉼터는 쾌척했고 식후의 나른함이 부드러운 맨땅에 취해 며칠 전 고국의 한 웹사이트에서 읽은, 2백만 년 전의 유인원(類人猿)은 직립인(Homo erectus)이 사유인(Homo sapiens)보다 앞섰다는 글을 되짚게 했습니다.
동물과 달리 사람만이 지닌 사유(思惟)능력은 두발로 서서 걸을 수 있게 된 다음에 얻은 진화(進化)라고 합니다. 똑바로 서서 걷게 되자 두 손은 걷기에서 벗어나, 이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도구를 사용하게 했고, 도구 사용은 두뇌를 쓰게 해서 점점 높여진 지능은 생각(思考)을 나누게(疏通) 했다는 풀이입니다.
좀 더 덧붙이면, 현대인에게 ‘걷기’는 “발과 땅의 일치를 보여주며…자연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는 내밀함(라무르 지음 <걷기의 철학>)”이고,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 놓은 고즈넉한 방법이다(브르통 지음 <걷기 예찬>)”고 서술했습니다.
이 걷기에서 한 차원 높임이 산 오르기(山行)입니다. 이로써 산행의 위대함도 입증되었다고, 좀은 억지 합리화시키고 몸을 뒤집었습니다. 올려다 보이는 하늘은 전보다 훨씬 푸르러 선계(仙界)인 듯싶게 다가왔습니다.
이 환상(幻想)은 잠시뿐이고, 땀 냄새 맡고 몰려온 개미등살에 떠밀려 소나무 등걸에 기대앉자, 제 꾀죄한 몸꼴이 꿈을 깨라고 질책합니다. 꿈에서 깨어난 현실은 불현듯 ‘삶이란 무엇인가’ 에 젖게 합니다. 더구나 늘 떨치지 못해 왔던 ‘늘그막의 여생(餘生)’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나이 들면 가슴에 묻어두었던 상흔(傷痕)을 씻어내, 감당하기 힘들었던 일 억울했던 일 배신당한 일, 그리고 남에게 상처를 준 것 등……이런 모두를 떨쳐버려야 홀가분해진다고 합니다.
산을 사랑하고 먼저 간 많은 분들은, 이 마음비우기를 산의 품에서 찾으라고 글로 남겼습니다. 산에서 나(我) 또한 자연에 귀속된 하나의 생명체로 안기면, 자연은 언제나 부드럽고 넉넉하게 품안아 준다고 누누이 강조합니다.
데카르트의 명언<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비롯된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를,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응당 <산에 오른다, 고로 존재한다.> 로 바꿔져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어쭙잖은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혜량(惠諒)을. (2011/08/08)
추 고 : 총무님, 認證사진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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