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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에 내려온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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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lbert
댓글 0건 조회 514회 작성일 1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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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에 내려온 보름달

  

   한가위 대보름달을 꼭 한 달 앞둔 그제, 하늘에서 내려온 보름달을 산마루에서 맞이했습니다. 또 하루를 역사의 뒤안길로 넘긴 해님, 그 햇살의 잔영(殘影)이 서쪽으로 스러져 온 사방이 어슴푸레 잠깁니다. 이에 맞춰 달님이 동쪽으로부터 떠올라 교교월색(皎皎月色) 휘영청 밝음을 내뿜습니다.

     

   “달 달 둥근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위에 떴지……”

  

   남산의 달님이 이곳 산마루에도 내려왔습니다. 밝음을 내뿜어 온 산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으나 해님처럼 세찬 바람은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잠자리를 조금 아래 둔덕으로 밀어낸 대신에 타임머신을 불러서, 50여년을 훌쩍 되돌려주었습니다.

    연날리기, 횃불 돌리기, 쥐불놀이에 빠져 들판을 헤치고 다니던 유년(幼年)시절로 데려다줍니다. 꼬맹이는 1-4후퇴 때 피난 내려와 대구 부산을 거쳐 인천 학익동에서 국민학교를 다닙니다. 지금의 인하대학교가 자리한 터는 논과 밭이고, 밭에서는 중국인들이 토마토를 기르고 있습니다. 이 논과 밭이 끝나는 곳에 자리한, 어느 회사의 사택 뒤뜰에서 토끼에게 풀을 디밀어주면서 꼬맹이는 혼자서 비죽비죽 웃습니다. 어느 해 정월 보름날, 서울서 직장과 학교를 다니는 형님과 누님이 내려오자 꼬맹이는 선친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방패연을 하늘 높이 띄우고 으스댑니다. 오남이녀의 막내로 나이차이가 많은 꼬맹이는 늘 보듬어주는 큰누님을 졸졸 따라다닙니다.

  

   금년 들어 2백26일째 맞은 어제 새벽녘, 보름달이 여명(黎明)을 기다리는 하늘을 은은(殷殷)하게 사로잡습니다. 이 어슴푸레 속의 고요를, 비행기 꼬리날개 불빛이 깨트리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길게 지나갑니다. 마치 별똥별이 스러지듯이. 불현듯, 누구든 이승을 끝내면 그의 별도 떨어진다는 생각이, 또다시 28년을 거스르게 합니다.

    부모님 두 분만 역촌동 한옥에서 지내실 때, 아침진지를 드신 아버님이 마실 나가신 후에, 어머님도 따로 나가셨다가 곧바로 돌아오셔서, 나들이 한복차림으로 방에 누워 홀로 가셨습니다. 옆집 아낙이 “어찌 그냥 돌아오시느냐”고 묻자 “머리가 갑자기 휑해서…누워야겠다.”고 대답하셨다는데, 이 말씀이 이승에 남기신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팔순을 보내신 해의 가을철이었고, 어머님보다 3년 연하이신 아버님께서도 팔순을 넘기시고 어머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역마살(馬煞)이 끼었기에 태어난 곳이고 길러준 고국을 등졌겠으나, 햇수로 35년을 기거(寄居)했을 뿐 여태껏 뭣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기에, 부모님 임종마저 모시지 못한 죄책감이 시(時)도 때도 없이 솟습니다. 그리고 나이 들었음을 확인하려는 듯이 수구초심(首丘初心)도 점점 늡니다.

  

   해님이 서서히 온 누리를 밝히며 모습을 내보입니다. 새날을 여는 원천(源泉)이기에 땅과 산에 그리고 바다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일깨우고, 그들로 하여금 늘 우러러 받들게 합니다. 해님이 동쪽에서부터 서서히 모습을 보이자, 보름달은 본래의 맑고 밝음을 잃고 바래져 서쪽으로 밀려 나가갑니다.

    해님은 수많은 행성을 거느린 태양계의 모태(母胎)입니다. 그 절대자(絶對者)의 위엄과 완벽한 동그란(正圓)모습은 결코 인위적인 모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멀리 발아래서 깜박이던 시가지(市街地)의 불빛이 서서히 스러져갑니다. 인공의 모방(模倣)은 암흑 속에서만 잠시 대신했을 뿐입니다.

  

   보름달이 Ski-Hut을 거쳐 saddle서부터 길잡이 해줘 한밤중임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르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산마루서 올려다본 하늘은 건너편의 산자락의 짙은 잿빛의 침울함과 더불어 낮과는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때문인지, 까마득한 유년기의 기억을 다시 들춰냅니다. 처음 수학여행가기 전날 밤에 콩닥거리던 어린 가슴, 이 설렘과 낯설어 좀은 편하지 않은 Bivy Sack 잠자리가 한목소리로 잠들지 말라고 부추겨 비몽사몽(非夢似夢)에 잠기게 합니다.

    처음으로 백두산보다 높은 해발 10,064피트의 MT. Baldy 산마루에서, 보름달의 위용(威容)과 해돋이를 영접한 기쁨은 컸습니다. 그리고 주차장부터 두발로 걸어 3,900피트를 올랐기에, 그만큼 속진(俗塵)에서 벗어났고 또 그만큼 선계(仙界)에 가깝게 다녀왔다고, 감히 덧붙입니다. (201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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