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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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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llie
댓글 0건 조회 578회 작성일 11-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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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래스카행 149편 8시 비행기를 타실분들은 지금 탑승해주십시요. " 탑승을 알리는 안내 방송을 듣고 비행기에 오른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후 13일 간은 긴 잠을 자면서 꿈을 꾼것처럼 텅 비워져 버렸다. 그리곤 다시 LA에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린 기억이 전부다. 지금으로선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단지 다시 돌아온 이곳의 모든것들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며칠이 지난 지금, 차츰 기억의 단편들이 퍼즐의 조각들 처럼 떠오른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장면의 조각 조각들을 찾아 이 여행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이제 그 기억들을 찾아 다시한번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알래스카, 인디언 말로 The Great Land 라는 이 단어는 시간을 거꾸로 돌아가게 하는 신비한 주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 말속에서 그 옛날 얼음위를 길을내며 끝없이 걸어와 신대륙에 정착한 후 오늘날의 에스키모인이 된 인디언들이 흘린 피와 땀의 냄새와 그들이 지나온 시간의 지취가 느껴진다.

처음보는 알래스카, 기대와 흥분감으로 충만해진다. 언제나 그렇듯이 미지의 땅에 첫발을 내닫기전의 긴장감은 내가 찾아 가야할 장소를 표시해 놓은 펼쳐진 지도위의 한점이 바로 현실의 장소로 바뀌고 그 지도위에 드디어 내가 서게 되는 감동으로 바뀌게 된다.

여행의 시작이다. 내가 오기 훨씬전부터 있어온 곳이지만 처음으로 이 공간에 걸어 들어온 나로써는 모든 것이 새롭다. 새로운 것의 시작인 것이다. 여행의 시작은 항상 이 낯선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출발해서 익숙하지만 또 다른 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공항을 빠져나와 빌린 차를 타고 달리는 차 유리창 안으로 시원한 바람이 밀려들어 온다. 태고의 향을 간직한 이 바람, 수천수만년의 시간을 가두어 놓은 빙하를 지나쳐온 이 바람이 이땅에 들어온 우리들을 환영하는 듯 시원한 바람꽃을 머리위에 살포시 얹어준다. 차를 타고 달리던 배를 타고 가던, 어디하나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지 않은 곳이 없고 모두들 기대치 이상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만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곳, 어디를 가나 큰 산이 있는 곳엔 눈 덮힌 산 봉우리가 시원하게 시야를 밝히며 강이든 바다든 빙둘러 품고 안으며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들을 연출해 낸다.

지구를 몇바퀴 돌며 배낭 여행한 사람들도 이곳 알래스카를 인간의 손길이 덜가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이 지구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꼽고 있다고 하니 그 말이 실감이 난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세계. 아주 먼 태고적 부터 존재해왔던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바다. 그 바닷속에서 물고기 한마리가 걸어나와 이상한 네발달린 짐승으로 변했다가 다시 벌거 벗은 원시인으로 진화하여 이 바닷가 모래 언덕위를 걸어서 저 멀리 사라져 간다. 어느 낯선이의 뒷모습처럼 말이다. 어느 유명한 화가의 그림 속에서 본듯한 실제보다 아름다운 풍경이 내가 서있는 무한의 공간속에 전시되어 있는냥 그림속에 갇혀, 나도 그 그림의 일부가 되어 버린냥 온 몸이 굳어버린다. 그 위로 이글거리는 태양의 아지랭이 만이 이 낯선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나는 이 낯선 시간과 공간에 내 몰린 채 표류하여 떠내려와 이 바닷가 모래 사장위에 부서져 내리는 파도를 바라보며 할말을 잃고 한참이나 서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땅, 해가 지기를 거부하는 땅에서 자란 나무들은 또 얼마나 완벽한지 티하나 없는 푸르름과 건강함으로 당당히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하지만 이런곳도 6,7,8월 3개월의 시간이 지나가면 얼음속으로, 다시 기나긴 어둠속으로 가라앉아 버린다니 천국과 지옥, 밝음과 어둠은 이웃 사촌임에 틀림없는것 같다. 이 완벽한 아름다움과 평화뒤에도 그것을 지키기위한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우리 여행의 시작에서 마지막까지 모든것은 전쟁의 연속이었던것같다. 피난민들처럼 바리바리 싼 짐들을 지고 비행기에 오르고, 맥킨리 산 캠핑장에서의 모기와의 사투속에서 어디 한군데 성한곳 없이 머리 정수리에서 부터 발등까지 수두 자국처럼 물려 엄청 피흘린 것하며, 총알이 날아드는 전쟁터에서 식사를 하는것 처럼 살아남기 위해, 또 하루를 보내기위해 먹어야하는 사정과, 바닷가 갯벌에서 조개 잡이하며 벌인 조개와의 한판 싸움, 잡느냐 잡히느냐의 기로에서 나는 그만 조개들의 포로가 되어 두손 두발 다들고 항복하고야 말았다. 이 놈들이 어찌나 빠른지 발자국 소리를 듣고 벌써 땅굴 파며 재빠르게 숨어 버려서 나중에는 기진맥진 해서 갯벌에 왕대자로 누워버렸다. 연어와의 전쟁도 처절했다. 빌린 낚싯대를 잡고 강둑에서 수없이 던져 보았으나 요리조리 피해가며 약올리는 연어들 때문에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LA를 떠나오며 주위 사람들에게 연어 많이 잡아가겠다는 말들이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어 흐르는 강물과 함께 멀리 멀리 떠나 보내야 했다.

이 모든 일련의 싸움들은 우리 모두의 평화를 지키기위한 것이었다. 이번 여행을 보다 알차고 재미있게 채우기위해 이 전쟁들은 불가피한 것이었고 그래서 얻은 경험들이 우리 여행의 소중한 추억들이 되었다.

 

여행이 끝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몇가지 기억들이 있다. 처음 만난 우리들에게 감추고 있던 자신의 모든것을 보여주며 우리 모두를 행운아로 만들어 준 맥킨리 산. 구름 사이사이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의 기운을 송두리채 뿜어내며 당당히 서있는 모습하며, 자정가까운 시간에 붉은 석양으로 온몸을 물들이며 부끄러운 듯 수줍게 미소짓던 모습. 수천 수만년의 시간을 가두어 놓은 빙하로의 크루즈에서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전부터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또 무한의 시간속을 살아갈 에메랄드 빛 빙하들속에서 거울처럼 반사되어 돌아오는 태양빛 같은 밝고 아름다운 미래가 보이는 듯 했다. 백야의 도시, 페어뱅스. 어둠이 실종되어 버린, 또 과거의 시간이 그대로 남아 정체되어 있는 그곳에는 치나 강을 따라 원주민들의 생활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정착민 촌. 거기서 조상때 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자신까지도 그들의 터를 지키며 살고 있는 에스키모 소녀의 빛나는 눈동자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디날리 공원에서의 온갖 동물들과 나무들, 새들. 특히 갈색 곰 가족이 언제까지나 자신들의 고향을 잃지않고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길 바란다.

이 모든것들은 내 가슴속에 오랫동안 남아 나를 언제고 다시 알래스카로 불러들이는 원동력이 될것이다. 나를 감동시킨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남아 내 뒤로 찾아오는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감동을 줄수있길 바란다. 몇백년 몇천년 뒤까지도...

 

약 2주간의 여행이었지만 2년은 다른 세상을 떠돌다 온것처럼 몸과 마음이 모두 소모되어버려 껍질만 남은 것같다. 그러나 아직 이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또 하나의 나를 알래스카에 남겨두고 왔으니 말이다.

가도 가도 질리지 않을 것같은 땅, 알래스카. 이곳에 돌아온 나의 영혼이 지치고 버거울때 또 다른 나를 찾아 돌아갈 것이다. 반쪽이 아닌 온전한 내 자신이 되기위해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13일간이라는 짧지않은 여행속에서 가끔씩 힘들어 하며 투정부려 본의 아니게 주위 분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제는 예전의 정신력으로 버텨내기엔 체력이 감당이 되지 않는것 같읍니다. 그러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예쁘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함께 여행할수 있어서 정말 좋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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