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香氣, 산의 精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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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香氣, 산의 精氣
어머니 날인 그제(8일), 만 1년 전인 지난해 5월9일 Palm Spring의 Tramway를 거쳐 올랐던 Jacinto Peak를 반대편인 MT. Marion에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닫힌 주차장 입구에서 내리자, 숲의 향기가 산의 정기(精氣)와 함께 맞이합니다. “숨쉬기부터가 다르다”는, 고 영국님의 표현 그대로입니다. 남가주 최고봉 San Gorgonio 산 바로 옆에 자리해서 그런 듯싶습니다.
처음부터 가파른 오름 길은 삶을 끝낸 고목(古木)이 진토(塵土)되어 부드럽고, 맑은 개울물이 흘러내리는 도랑이 그대로 Trail이 되기도 합니다. 꽐꽐 굽이치며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살, 고만고만한 도토리들의 지천(至賤)으로 널브러짐, 몇 백 년 수천 년 동안 한자리에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거송(巨松)들의 굳세고 의연함,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보다 더 커다란 솔방울의 열병식(閱兵式)도 속계(俗界)가 아닌 숲 향기 가득한 자연의 품속임을 가르쳐줍니다.
치오르던 발걸음이 주춤해지자, 넓은 경사진 평지가 펼쳐집니다. 멀리 키 작은 나무들이 삼면을 일렬로 에워싸서 포구(浦口)인양 나타납니다. 여기에 숲과 산과 하늘이, 마치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자연 본래의 모습을 내보입니다. 숲의 향기로 가득 채워집니다.
오를수록 숲이 숨 쉬어 토해낸 산안개(山霧)는 짙어지고, 은백색의 잔설(殘雪) 무더기가 늘어납니다. 하여, 문득 산안개는 산의 정령(精靈)으로 다가옵니다.
지난해 정상에서 내려오다가 휘몰아친 강풍에 혼비백산했기에 두터운 차림으로 나섰으나, 햇살은 회백색의 구름에 가려져 치오르기에도 덥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어 번 숨 돌리고 4시간 남짓 오르자, 불청객 칼바람이 휘몰아쳐 추위를 안겨줍니다. 정상을 채 2 mail도 남기지 않은 곳에서 오름을 접고 점심요기를 합니다.
온 사방은 눈 덮인 산등성이에 곧게 뻗어 오른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널찍널찍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 학수님이 “나무가 열기(熱氣)를 내뿜고 있다”고 말하며, 소나무 밑동을 가리킵니다. 밑동을 중심으로 지름 2-3 feet 너비의 정원(正圓)이 자리하고, 원안에는 눈이 사라지고 밑에는 검붉은 흙을 내보입니다. 나무가 땅속뿌리에서 길어 올린 생명의 움틈이, 위로 올라와 허리춤까지 쌓였던 눈을 녹여내 버렸습니다. 이 또한 산의 정령이겠습니다.
위쪽의 정상 표지판 아닌 온 길로 되돌아 내려옵니다. 추위를 잊으려 애써 몸을 빠르게 움직입니다. 눈앞의 언덕만 보고 오를 때보다 내려오는 길에서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갖게 됩니다. 고사목(枯死木)의 처절한 잔해(殘骸)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가 하면 소생(蘇生)의 꿈을 간직한 고목(古木)의 의연함도 숲에 향기를 보탭니다. ‘돌고래’ ‘새끼곰’ 등 기암괴석(奇巖怪石)에 이름표를 달아준 박 종석님의 비유(比喩)가 실제 모습으로 다가와 절로 감탄하게 합니다.
거의 다 내려올 쯤,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산안개가 승천(昇天)하기 시작합니다. 고즈넉한 신비와 적요(寂寥)로 산의 정기를 끌어올리며 하늘로 오름, 여기에 털어내지 못하고 제 가슴 켜켜이 쌓아놓았던 앙금도 풀어서 함께 올리고 싶습니다.
내려오는 산길에서 그리고 모였던 곳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지은이가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다’라고 밝히며 쓴 글(散文)을 되뇌깁니다.
“등을 대고 누우면 부드럽고 편안하고 흙 속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꼼지락대는 것 같은 탄력이 느껴진다. 살아 있는 것들만이 낼 수 있는 이런 기척은 흙에서 오는 걸까, 씨앗들로부터 오는 것일까. 아니 둘 다일 것 같다.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 이 구절을 집에 돌아와 책을 펴 확인합니다. 두어 번 읽고서 원로 문인(文人)의 깊은 뜻을 어찌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어렴풋이나마 흙에서 태어난 세상 만물은 끝내는 흙으로 돌아가기에, 겸허하게 자연으로 귀의(歸依)하라고 깨우쳐주는 것 같습니다.
이민 1세의 굴레인 망향(望鄕)이 수구초심(首丘初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제게 산행은 마음의 의지처(依支處)입니다. 처음으로 오르고 내린 길을 이끌어주신 김 중석 선배님께 고마운 마음 드립니다. (201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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