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상자 讚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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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讚歌
TV 수상기를 흔히들 ‘바보상자(箱子)’라고 부릅니다. 라디오의 단순히 소리(音) 전달뿐만 아니라 움직임(映像)의 보탬은 점차 책읽기를 쫓아냈고, 이는 사람만이 지닌 능력, 생각(思惟)함을 서서히 줄였습니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상자’로 전락(轉落) 되었습니다.
이 바보상자를 스무날 가까이 못 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참혹한 지진의 참상을 외면하려거나, 깊은 산이나 외딴 섬을 찾지도 않았고, 뒤늦게 철들어 Mass media 홍수에서 헤어나려 한 것도 아닙니다.
이곳서 몇 년 전 TV 방송 송출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뀔 때, LCD TV의 품질로 세계 1위인 고국의 한 제품을 구입했습니다. 선명하고 예리한 색상에 빠른 채널 바뀜 등 만족했으나, 지난 10일 갑자기 원격작동이 안 되고 이어서 하루가 지나자 아예 손으로 눌러도 켜지지 않았습니다.
고객센터에 모델과 시어리얼 넘버를 알리고, 인터넷으로 다운로드 받은 반송표를 붙여 동부의 New Jersey 주로 보냈습니다. 화물차로 가는데 만 일주일이 걸리는, 대륙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의 끝으로 옮겨서 고치고 온 길을 되돌아오게 됩니다. 이사할 때 겉포장을 버려 포장비용으로 $35.이 들었으나 부품, 수리비, 운송료 등은 내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오래 거주한 많은 사람들이 흔히 “한국 방송은 이곳 생활에 도움이 안 되어 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일손을 놓고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 7시에 같은 날 고국의 저녁 9시뉴스를, 저녁 5시에 고국의 다음 날 아침뉴스를 거르지 않고 보아왔습니다. 늙은이의 수구초심(首丘初心)이 몸만 이국땅에 발 딛고 있는, 이민 1세대의 전형(典型)으로 굳혀 놓았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記事)와 사진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인쇄된 신문에서는 기사 배치와 제목의 표기-크기에서 편집자의 의도를 읽어내듯이, 방송에서는 진행자의 첫머리(冒頭)말에 억양과 눈빛 등을 보태진 body language에서 뜻을 받아들입니다.
TV에서 종합뉴스(비록, 한 채널은 國營냄새, 다른 채널은 理念 편중이 보여도)의 특성을 대할 수 없게 되자, 평소에는 고마움을 모르고 무심히 보았던 TV가 예전과 달리 그리워졌습니다.
뉴스이외에 고국 곳곳을 누비는 명소순례, 특산물 소개, 내고장맛자랑 등의 프로그램도 즐겨 보았습니다. 연속극에도 빠져, 월-화나 수-목 드라마에도 탐닉했습니다. 16회까지 보아온 <President>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달 들어 첫 토요일 하루만 눈 덮인 산에 왕복 5마일을 다녀왔을 뿐, 예년과 달리 주말마다 찾아온 폭우와 혹한이, 작은 체구를 아파트 안에 휑하니 주저앉혔습니다. 지난해 11월 일요산행 때, 방한복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나섰다가 뺨을 에이는 강풍에 호된 고역을 겪었습니다. 산에서 수시로 바뀌는 날씨에 겸허히 순복(馴服)하는 마음가짐과 함께 옷가지 등도 충분히 지니고 다녀야 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첨단(尖端) 기능성 섬유로 만든 등산복들이 새롭게 나오고 있습니다. 고무를 입히지 않았어도 방수와 방풍이 되고 땀을 내보내며 무게도 가벼운 겉저고리와 바지의 비옷, 딸린 주머니에 움켜 넣으면 무게가 고작 320g의 오리털로 만든 스웨터 등은 워낙 가격이 비싸 ‘그림의 떡’이지만 지니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게 합니다.
주말에 자연의 품에 안겨있어야 할 몸과 마음이, 산이 아닌 사람이 사는 인공의 거처(居處)에서는 곧바로 나태(懶怠)해집니다. 책을 펴들어도 고작 두서너 페이지를 넘기고 고개가 아래로 꺾어지면, Natural Geography 채널을 보여주던 ‘바보상자’에 찬가(讚歌)를 아니 바칠 수 없습니다. (201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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