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부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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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부의 추억
이른 아침, 커피는 맛보다 내려지는 소리와 향기가 더 그윽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커피를 만들기 위해 아침 일찍 부엌으로 내려갔다.부엌 책상 한 곁에 어제 저녁 꺼내 놓은 앨범들이 눈길을 끈다. 컴프터 모니터를 켜놓고 커피를 만들기 위해 물을 부었다. 진한 향기를 보내며 주룩주룩 커피가 내려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따라 향과 소리가 더 정겹다. 유난히 마음이 설레는 오늘 아침, 컴퓨터 판도라에서 흐르는 음악이 기분을 더욱 돋운다. 강아지는 어김없이 졸랑졸랑 침실에서 부엌으로 내려와 안아 달라고 다리를 긁는다. 이 강아지는 3년 전 내가 장기산행 시 아내의 적정을 덜어주기 위해 딸아이가 갓 난 것을 데려 왔다. 이제는 제법 커서 재롱둥이 역할을 톡톡해 텅 빈 집안을 훈훈하게 한다 딸아이가 엘모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른 아침마다 내게 문안하고 저녁에 귀가하면 나를 가장 반기는 귀염둥이, 밤이면 내 팔을 베고 서로 마주 보며 하루의 안부를 물으며 잠을 청한다.
엘모를 안아 무릎 위에 앉히고 오른손에 커피잔을 입가에 대며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긴다. 가슴에서 피어 오른 씁쓸한 미소가 입술에 맴돈다. 지금 딸아이 나이쯤 되었던 사진 속 아내의 모습에서 지난 삶이 스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오늘은 나와 아내가 부부 인연을 맺은 지 30년째 되는 날이다. 눈에 선한 눈 덮인 산행을 접고 30년 전 결혼 피로연을 마치고 친구들과 같이 떠들썩하면서 식사를 한 말리부의 한 식당을 찾아 볼 참이다. 그 후 그 식당을 여러 차례 들락거렸지만, 오늘 그곳을 다시 떠 올리니 감회가 더욱 깊다.
우선 식을 올린 예식장을 찾았다. 식장이었던 윌셔 연합감리교회에 도착하니 2부 예배 시작을 알리는 성가대 합창이 성스러이 들려온다. 친분이 있는 안내원이 반기며 다가온다. 타운에서 30년 이상 살았으니 어디를 가나 지인들이 눈에 띈다. 가까이 지냈던 지인들을 가끔 어디선가 마주치면 변한 모습에 새삼 놀란다. 많은 시간이 흘렸음을 말한다. 상대도 나를 보면 같은 느낌일 것이다. 안내를 받아 옆문으로 들어가 뒷좌석에 앉았다. 얼핏 엿보아도 아는 분이 여럿 보였다. 벌써 나를 알아보고 손짓하는 친구도 있었다. 저 친구 오늘 웬 일인가 하고 궁금했을 것이다. 목사님의 설교는 마치 나의 방문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 같았다.역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삶을 살고 몇 년 전에 세상을 달리한 여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의 이야기다. 크리스마스에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내용을 소개하면서 동영상도 함께 보여 주었다. 부유한 부모에서 태어났지만, 전쟁으로 환경이 바뀌어 홀어머니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학력은 국졸, 아름다운 미모의 덕도 있겠지만, 헌신의 노력으로 영화계 대상들을 모두 차지했다. 생을 마치기 전 마지막 4년간을 본인은 암의 덫에 걸려 고통을 겪으면서도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헌신적으로 돌보며 생을 마감했다. 그 삶에 감동되어 아카데미는 1993년 ‘인도주의 상’ 을 계획하였으나, 그녀는 끝내 그 영광을 보지 못하고 63세에 복강경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어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져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 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기억하라. 만약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엄마 오드리 햅번-
나는 이 감동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의 이곳으로 옮긴 발길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배 마지막 순서인 교회 소식을 전하는 시간이다. 목사님은 십자가 뒤에 있는 커튼을 가르키며, 저 커튼은 어느 여 집사님이 손수 디자인하여 만들어 헌사 한 것인데 그분이 어제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 금요일에 이곳에서 장례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오랜 친구인 남편으로부터 아내의 병환이 심상치 않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렇게 비보를 접하다니 정말로 안타깝다. 우연히 접한 상황이다.
예배를 마치고 식을 올렸던 예식홀로 향했다. 난간을 지나는 동안 30년 전 기억들새록새록 떠 올라 이 짧은 통로가 무척이니 길게 느껴졌다. 마침 예식 홀은 비어 있었다. 교회 사진 담당인 친구도 그곳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덕분에 결혼을 다시 하는 기분으로 포즈도 취해 보았다. 아내는 교회 앞뜰에서의 격은 일들을 일일이 기억해내고 있었다. 평상시 아내로부터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이는 일상에서의 관심부족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서 나와 윌셔 길고 나섰다. 아내는 그때 미장원이 아직도 있다며 손을 가르킨다. 그럼 들려볼까 했더니 그냥 상점이나 가자고 한다. 상점에서 신을 고르며 이것저것 묻고는 사도되느냐고 묻는다. 물론 남편 허락 없이도 사고 싶으면 샀을 것이다. 남편이 옆에 있으니 한번 해본, 아니 응석 한번 부려 본 것을 나는 안다. 다른 점포에 들려서 그릇과 내 속옷을 만지작거린다. 내 것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 집에 와 보니 가방 속에 언제 샀는지 그 물건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아내와 같이 물건을 고르며 함께 한 지가 얼마 만인가. 아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차를 산타모니카로 몰았다. 아내는 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드라이브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으나, 날이 날인만큼 곧 알아차렸다. 운전하는 동안 내 머리에는 비치가 식당의 주변 상황으로 가득 차 있다.
말리부 해안의 시원하고 잔잔한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때는 날씨가 매우 화창했었는데 오늘은 구름이 제법 많이 끼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해는 저 멀리서 머뭇머뭇 바다로 잠기기 시작했다. 비둘기 한 마리가 고급승용차 위에서 우리를 반긴다. 비둘기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 눈 속에는 우리를 사랑하는 이를 보았다. 나는 아내에게 조심스레 눈짓 주며 비둘기에게 속으로 말을 건넸다.“나의 사랑의 아바타 비둘기님 안녕하세요.”하며 속으로 중얼거리며, 놓칠세라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하늘에 계시는 두 부모님께서 보낸 전령임이 분명했다.
언제나 붐비는 그 식당,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식당 안 벽에는 추억의 메모들 이 즐비하게 붙혀 있다. 나는 서성거리다 식당 안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본다. 가슴에 닿는 무언가를 기대했는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사진 한 장 붙여 놓는 건데” 벽난로 앞에서 땅콩을 입에 물고 아내가 말한다.한 시간 넘게 기다려 받은 좌석은 그때와 같은 좌석은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바로 옆줄 자리이니 다행이었다. 창가 쪽으로 바라보니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었을 친구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내 앞에는 아내인 그레이스양이 애 띈 얼굴로 웃으며 조잘거리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오늘은 그 자리에서 젊은 연인들이 30년 전 나와 아내와의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아내는 감정 어린 빛으로 아무 말 없이 메뉴만을 보면서 그때 우리는 이거 이것 먹었다면서 기억들을 솔솔 풀어내기 시작한다.
아내와 대면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렸을까. 순간 타이타닉영화의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나타난다. 머리가 하얀 여인이 나타나 젊은 시절을 상기하면서 영화가 시작되는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산타모니카 비치에서 처음 에이트 했던 아내의 모습이 보이더니 서서히 변해 머리가 하얀 여인으로 앉아 있었다. 다시 서서히 변하여 지금 이 모습 다시 나타났다. 나는 무슨 말이던 이어 가야 했다.“그래 참 맛이 있었지. 그 때 포도주 맛을 기억해 낼 수 있을까”하며 말을 건넸다. 실상 내가 하고 싶은 말은‘함께 있어 준 시간들, 애들 잘 키워줘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쑥스러워 할 수가 없었다.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를 정서의 세대 차라고 늘 우리는 변명하면서 기회를 놓아주곤 했다. 식당 안에는 대부분 내 아들딸 또래가 대부분이고 나와 같이 추억을 찾으러 온 이들도 있음직했다. 우리 둘은 오랜만에 애들 이야기, 새집 지을 때 번잡 했던, 일상 사소한 일까지도 소재가 되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애들이 곁을 떠난 후 이런 시간들이 언제 있었는지 기억조차 아물아물 하다. 앞으로 사소하지만 감명 깊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웨이트리스가 다가와 방문한 특별한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식당에 온 연유를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분명 무언가 서비스가 있을 거라고 은근슬적 기대를 해 본다. 아내가 맞았다. 그녀는 그러냐면서, 잠시 후 커다란 초콜릿 케이크를 가지고 와서 정말 축하한다며 다시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도 곁들였다. 좌석 주위의 몇 분들이 알아차리고 손을 흔들며 미소로 축하해 주었다. 우리는 화답으로 케이크를 나누어 권했다.
식사를 마치고 비치로 나오니 이미 어둡기 시작한다. 먹이 찾아 모였던 새들은 잠자리를 찾아 모두 돌아갔고 어둠 속에는 파도소리만 요란하다. 비치가 의자에 걸터앉으면서 아내는 밤의 바다는 적막하다며 말을 꺼낸다. 나는 그러냐고 대답하고 어떤 이 에게는 환희 일 수도 있고, 다른 이 에게는 고요함 일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바다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 때문이라 덧붙이고 나서 곧 후회했다. 이러한 대답은 선방에서나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금시 알아차렸다. 그냥 “그렇지”하면 되는 것을.
언젠가 산행을 마치고 맥주 집을 들렸는데 동행인이 고산에서의 느낌을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산행을 철학과 종교와 관련을 지으면서 열변을 했더니 한 여자 분이 관심 없다는 듯이 두리번거렸다. 그때 나는 알아차렸다. 대화는 듣는 이의 언어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간결하고, 친절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 그 순간이 포착된 것이다. 나는 저 멀리 환한 곳이 엘에이 공항이고 그 앞이 산타모니카 비치라고 말문을 이어 갔다. 방향 감각에 민감하지 못한 아내는 금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말들만이 지금 이곳에서 필요한 대화다. 중요한 느낌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어도 이미 공유했지 않았는가.
아내는 앞에 있는 피어에서 사진 찍은 것이 기억난다고 한다. 걷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쥐며 아무도 없는 피어를 걸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잠시 후 내 애들 또래가 왁짝지껄이며 다가온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젊음은 환희이고 희망이다. 우리도 늘 마음이 젊다고 소리치지만, 막상 실행으로 옮기려면 몸의 반응이 원활하지 않다. 성숙인지 퇴보인지는 구지 알 필요는 없다.
다만 흐름인 것은 분명 하다. 잠시 후 애들은 곧 가버렸다. 우리 둘은 계속 천천히 걸었다. 드디어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 당신 애들 키우느라 정말 수고 많이 했어. 나와 같이 지낸 세월 고맙고”라며 말을 건넸다.잠시 말없는 시간이 흘렀다. 아내도 드디어 입을 열었다.“당신 가장으로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너무 고생 많이 했어요.” 우리는 다시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각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머리에서 맴도는 말들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는 긴 세월이 지나갔고 다시 가슴에서 올라와 입으로 시인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구나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세상 무엇보다 당신 곁에 있어 행복하다는 말과 나 자신보다 당신을 보살필 때가 더욱 행복했다는 말도 전하고 싶었지만 그만 시점을 놓치고 말았다. 이 마음을 다시 전하는데 얼마나 긴세월이 더 필요할까.
유별나게 일출 일몰을 좋아하는 나는 오늘은 특별한 일몰을 기대했지만, 날씨가 투정부려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내년에 다시 오리라는 다짐만 해 본다.
2011 3월 7일 / 이 만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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