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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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BC500) 인도 지역에는 여러 소 국가들이 있었읍니다.
고오타마 싣다르타 (석가모니 부처 실명)는 기필라성 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의 왕자로 풍족한 생활을 누렸으나 어느날 모든 사람들이
“생노병사”의 문제에 직면 한다는 사실을 알았읍니다. 왜 그럴까하며 고민하여 당대 유명한 스승을 초빙 물으니 대답을 얻을 수 없어서 이를 꼭 해결 하리라는 결심을 하고 처자를 두고 몰래 성을 나왔읍니다. “ 내 이를 해결 않고서는 결코 다시 성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선언” 하면서.
그후 많은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받았으나 역시 답을 구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그당시 유행했던 고행하는 수행을 피골이 상접 할정도로 6년간 했으나 이 또한 해답을 얻을 수 없어서 중단하였읍니다. 그리고 다시 보리수 아래를 수행처로 삶고 가부좌를 틀고 깊은사색(삼매) 에 들어간후 깨달음을 증득 하셨읍니다. 그때 세수가 40세 였읍니다.
그당시 인도에서는 제사장계급의 신격화와 카스트로제도의 붕괘로
운명론이 부정되면서 인생은 단생이니 그져 즐겁게 살자는 쾌락주의 자들과 육의 괘락은 고통의 연속라면서 육체 쾌락주의를 부정하고 육체가 삶의 고통의 원인이니 육체의 쾌락단절만이 깨달음을 준다는 고행주의가 고행주의가 만연, 양극화 현상이 두두려 졌읍니다.
이에 고오타마 싣다르타는 운명론(신의 의지)을 부정하는 동시에 깨달음의 길은 쾌락이나 고행의 양극에 있지 않고 “중도” 에 있음을 알았읍니다. 금강경에서 이 중도를 “ 아뇩다라삼막삼보리( 무상정등각), 무유정법( 삶에는 정해진 길이없음)” 으로 표현되고 반야 심경에서는 “공” 라고도 하지요.
이 어마한 깨달음의 사상은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없고 다만 상호 의존 관계로서 존재함을 깨달음에 근거하고 있읍니다. “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사라지면 이것도 사라진다”-인과연기- 라는 단순 논리를 증득 하였읍니다. 이는 당시 주요사상인 절대신(외부)과 고정된 영원 불멸의 실체인 아트만(내면) 사상을 부정하는 계기가 되였읍니다.
이는 신본 주의사상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를 인정하고 생명을 중시하는 인본주의 사상으로 전환 함을 말함니다.
고오타마 싣타르타는 존재는 항상 변화하며(제법무상), 고정된 실체가없으며(제법무아), 이를 잘못 아는 무지속에 있어 삶은 항상 괴로우며 기쁘다 하더라도 이는 잠시, 결국 고통이라는 것 (일체개고), 그래서 이 무지를 타파하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열반적정) 로 정리 하였읍니다. 제법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열반적정을 사법인 이라고 부르며 불교의 존재의 원리에 대한 기본 가르침입니다.
무지하면 욕심(탐)이 생기고, 화(진)를 내며, 의기소침(치)해 지고, 자기주장 (의) 이 생기고, 자만(만)해서 투쟁이 생기어 삶이 고통으로 이어 진다는 것입니다. 탐진치를 삼독(세가지 독소)이라 말함니다.
부언하면 세상에는 변화하지 않는것은 없읍니다. 사람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읍니다(생노병사). 생각 과 마음은 생겼다 머무르다가 희미하다 없어짐니다(성주이멸). 우주도 생겼다 머무르다 무너지다 없어집니다(성주괴공) .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착각 합니다. 또한 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착각 합니다. 이러한 착각(무지) 이 결국 삶의 고통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고통은 무지를 집착해서 생기며 이 집착을 끊기 위하여 8가지도(길, 팔정도)를 수행 할 것을 제시 했읍니다. 이는 고집멸도 라 하며 불교에서는 사성제 즉 성스러운 네가지 진리라 부름니다.
왜 무지해 지는가 ? 이에는 대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기독교 성경의 원죄와 같읍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달으신후 매우 기뻐서 가능한한 모든 이들을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하기위하여 49 년간 각지 각층을 상대로 설교(설법)하셨읍니다. 이 설법 내용 모두가 팔만 대장경에 수록되여 있읍니다.
경전의 기본내용은 원래 우리모두는 완전한 깨달은 존재(부처) 인데 무지해서 헤매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는것 입니다. 허상을 실상으로 착각한다는 것 입니다. 이는 마치 쥐가 쥐약을 맛있는 음식인줄 알고 먹고 고통스레이 하는것과 같은것 입니다. 또한 꿈을 현실로 착각하고 꿈속에서 괴롭다고 신음함니다. 그러니 꿈을 꿈인줄알고 잠에서 그냥 깨어 나자는 것입니다. 그깨어난 상태를 “해탈(니르바) 또는 열반” 이라 함니다.
왕자는 왕자답게 살아야지 자기가 왕자인줄 모르고 거지 생활하면서 인생이 고달프다고 푸념 해서야 되겠읍니까. 사자가 사자답게 살아야지 어쪄다 염소 집에서 길러져 염소처럼 살아서야 되겠읍니까. 우리는 원래 완전한 존재이니 어서 꿈에서 깨어나 열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석가모니 부처님게서 49년동안 설하신 8만대장경에 남아있는 내용이 모두 꿈을 깨어나자는 이야기 입니다.
반야 심경에는 이를 핵심요약하여 “원리 전도몽상 구경 열반” 즉 꿈을 깨면 곧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경전내용 중에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욕계, 색계, 무색계로 나누는데-욕계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세계, 색계는 무지를 알아 가면서 윤회하는 세계, 무색계는 색계를 초월한 세계를 말함니다. 유대교, 기독교에서 천당의개념, 야훼신의 세계가 무색계와 동일한것 같읍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세가지 세계가 모두 허상의 세계, 고통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읍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벗어난 상태를 또한 “해탈(니르바)”또는”열반”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우리를 구속하는 일체의 속박에서 즉 천계와 인간계, 신과 인간에서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남을 의미 합니다. 이는 정말로 획기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읍니다. 불교는 근본적으로 신을 부정함니다.
금강경에서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야견제상 비상이면 즉견여래” 라는 유명한 경구가 있읍니다. 즉 이세상에 인간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것이 실체가 이님을 아는 것이 나(부처)를 는것, 즉 깨달음을 아는것 이라 하였읍니다.
그래서 인사말로 “ 성불 합시다” 라고 말 하기도 함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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