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頂에 서서 누님의 쾌유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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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頂에 서서 누님의 쾌유를 빌며
어제(14일), Mt. Baden-Powell(9,399피트)에 다녀왔습니다. Vincent Gap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새파란 쪽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청명(淸明) 그대로입니다. 오르기 한 시간 만에 중간지점에 이르자, 뺨을 얼얼하게 마치 송곳으로 꼭꼭 찌르듯이 칼바람이 휘몰아칩니다. 매서운 추위는 더욱 거세져 3마일 지점부터 정상까지는 몸마저 휘청거리게 합니다.
정상을 넘어 늘 찾는 둥지, 햇살이 칼바람을 쫓아내 아늑한 보금자리로 맞이해 줍니다. 점심을 끝낼 무렵, 길고 날씬한 은빛의 비행물체가 창공을 유유히 두어 번 선회합니다. 둥지에서 편안 받히지 말고 나와 자연의 품에 안기라고.
온 천지 사방이 확 트여 Mojave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고 Baldy와 Gorgonio, San Jacinto 산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발아래로 펼쳐진 산자락은 억천만겁(億千萬劫)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고사목(枯死木)들도 여기저기 나열해 있습니다. 그 처절, 처연(悽絶, 凄然)한 모습은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무거워 내려놓고 오려다 다시 집어넣어 온 DSLR에 담고, 드높은 창공을 향해 소원(所願)을 드립니다.
그끄제께 받은 자형(姊兄)의 전화가 마음을 내내 무겁게 누릅니다. 지난주 고국에 때 이른 추위가 엄습 날, 누님이 일산 호수공원에서 매일 새벽마다 하는 단전수련 중에 쓰러지셔서, 모세혈관에 있는 혈전을 제거하셨다고 합니다. 퇴원한 다음에야 알려주셨습니다. 다행히 뇌출혈이 아닌 뇌경색이고 곧바로 치료받아 닷새 동안 입원치료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누님은 5남2녀의 막내인 내게는 단순히 누님이기보다는, 연세가 많으신 어머님의 사랑과는 또 다른 사랑을 내게 늘 주셨습니다. 1-4 후퇴 때 용산역에서 남쪽으로 떠나는 군용열차 화물칸 안에서, 대구에 도착할 때까지 나를 품안아 겨울철 살을 에이는 칼바람을 온몸으로 막아 주셨습니다. 인천서 국민학교 다닐 때, 누님은 서울서 은행에 근무하는 틈틈이 뜨개질로 목까지 올라오는 ‘도꾸리’세타를 손수 짜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책을 보자기에 싸서 등 뒤 허리춤에 묶고 다니던 시절에, 누님은 란도셀 책가방을 사주셨습니다. 여태껏 베풀어주신 사랑은 이민을 떠나 온 후에도, 그리고 내 머리가 흰머리로 덮여진 지금까지도 여전하십니다.
사람의 한평생은 누구든 단 한 번의 삶을 살다간다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생명 있는 것은 반드시 죽을 때가 있고,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 이는 살아있다는 사실에 그 자체만으로도 늘 고마움을 지녀야 하며, 또한 순간순간마다 충실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육친(肉親)에 닥친 병마(病魔) 앞에서는, 이 글귀는 담담히 글자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아니 합니다.
엊저녁 늦게 전화선으로 누님의 또렷또렷한 음성을 듣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다가올 겨울철 매서운 추위가 빠른 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이 틀림없기에 염려를 놓을 수 없습니다.
자형께서도 2년 전인 2008년 8월에 팔순 잔칫상을 받으시고, 9월에 같은 병마를 이겨내셨습니다. ‘절대 금주령’마저 외면(극복?)하셔서 점심과 저녁때의 소주 반주(飯酒)도 다시 하신다고 합니다.
부부일심동체(夫婦一心同體)이기에 누님께도 불청객이 찾아왔고, 하여 쾌유도 굳게 믿는다고, 억지 위안을 삼습니다. (201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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