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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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 창밖으로 보안등이 희뿌연 빛을 내는 새벽 5시에 눈이 떠집니다. 전날 밤 몇 시에 누웠든, 이르든 늦든 10 여분 안팎으로 마치 울린 자명종에 깨어나듯이. 언제인가 다녀온 듯싶으나 어딘지 헤아리지 못하는, 꾸불꾸불한 미로(迷路)를 헤매다가 그리고는 요의(尿意)에 미몽(迷夢)에서 벗어납니다.
자동차로 20 여분 떨어져 있는 뒷산 5마일 오르내리기와 우거(寓居) 바로 옆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은 왕복 한 시간 거리의 산책길 거닐기를 번갈아 다니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희뿌연 잿빛의 하늘은, 천지창조 때도 이와 같았겠다고 혼자 애써 의미를 부여하고 위안도 삼으며 걷습니다. 햇살이 동쪽에서부터 서서히 붉은 기운을 거느리고 오릅니다.
산책길에 다녀온 날은, 오전 7시에 같은 날 서울의 저녁 9시 종합뉴스를 실제로 불과 두 시간 늦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이곳의 지상파 TV 방송이 디지털로 바뀐 후부터 덤으로 얻은 혜택입니다. 일상생활과 특별히 연관지울 것도 없고, 인터넷으로 읽는 신문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도 동영상을 찾습니다. 이것도 이민 1세가 떨치지 못하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한 가닥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합니다. 가식(假飾)으로 덧씌워지지 않은 본래의 자기를 찾으면, 마음가짐은 저절로 겸허(謙虛)해진다고 합니다.
사람 한평생은 크게 즐거울 때와 슬플 때의 이어짐이고, 이 즐거움과 슬픔을 일으키는 데는 늘 필연적인 곡절(曲折)이 있고, 이를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으로 나눠지고, 자만하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에 행복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겸허하다’는 뜻은 사전(辭典)에 ‘아는 체하거나 잘난 체하지 않고, 겸손하며 삼가는 태도가 있다’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행복은 특출하거나 크고 거창하지도 않고, 평범하고 작은 일상의 일들 속에 있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잡다한 욕심을 걷어내어, 내게 주어진 틀 안에서, 작은 것에서부터 살아있음의 고마움을, 삶의 보람을, 행복한 마음 지니기를 찾으려 발버둥 칩니다.
‘기러기 아빠’는 좀 더 계속되어야 합니다. 두서너 달마다 San Francisco에 다녀오고 있습니다. 기껏 사나흘 머물고 오가고 있지만 늙은이의 파적(波寂), 아니 주책(籌策)으로 ‘오작교(烏鵲橋)를 건넌다!’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돌아와서는 예전대로, 주중의 아침녘 걷기와 주말의 동기(同期)와 일요(日曜) 모임의 두 곳 산행에 따라 다닙니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되도록 거르지 않습니다. 이 쳇바퀴 돌기에 보태어 조금 더 욕심을 부려, 사진과 독서 그리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줍는데 매달리고 있습니다.
풀 한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구루, 그리고 벌레 한 마리, 또한 갓 열린 하늘에 나래치는 작은 새 한 마리 등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침햇살이 비출 때마다 새롭게 활기를 띱니다. 그리고 같은 코스의 길을 되풀이 다녀도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게 가슴에 와 닿아, 평소에는 그냥 지나쳐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형상(形象)에 눈을 뜨게 합니다. 이를 DSLR에 담아 모니터에서 확인했을 때의 희열(喜悅)은 온 세상을 독차지한 듯싶습니다. 혼자만의 느낌을 혼자만의 방법으로 표현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일으키면 성취감과 자긍심도 함께 얻습니다. 서투른 흉내이지만 자아도취(自我陶醉)에는 충분합니다.
얼마 전부터 책을 펴들고 서너 페이지 넘기면 앞에서 읽은 구절을 기억하지 못해 되짚습니다. 더욱이 졸음마저 찾아옵니다. 뇌세포가 줄어들어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집중력마저 왜 떨어지는지? 이도 쇠진(衰盡)한 탓이겠습니다.
가슴 깊숙이 고여 있는 생각을 글로 옮기기는 사진 찍기보다 더욱 어렵습니다. 흔히들 글쓰기는 자신의 샘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일이라고 하지만, 늘그막에 접어든지 오래인 졸자에게는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다만 주어진 일상생활에서 스치는 느낌을, 할 수 있는 한 추스르고 싶습니다.
오래 전에 읽은 어느 문인(文人)의 글이 불현듯 떠올라, 다시 뒤적여 확인했습니다.
“자유의지로 자기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인간(人間)인 것은 한 커다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불행하다 하더라도 불행을 느낄 줄 아는 자의식(自意識)이 있음도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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