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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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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eterLee
댓글 0건 조회 554회 작성일 1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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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눈물

 

아주 먼 옛날 벨링 해협으로 왕래할 수 있었던 시절, 몽골인은 세계 다른 민족의 이동과 마찬가지로 시베리아와 벨링 해협을 통하여 남쪽으로 이동했다( 추정).

 

알라스카를 거처 캐나다, 미국, 멕시코, 중미, 남미로 이동했다고 한다. 우리는 알래스카 원주민을 에스키모라 부른다.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기진 그 호칭을 그들은 싫어한다. 그들은 이누이트라고 불러주기를 바란다. 북미, 중미, 남미 모두 원주민을 인디언( Native American 리라 불러 주기 원함)이라고 부르는데 스페인인이 이곳을 인도라 착각하여 부쳐진 이름이다. 또한, 중남미의 원주민은 북미 원주미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인디오(‘인디헤전트’라 불러주기 원함)라고도 부르고, 멕시코 인구 대부분 차지하는,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인 사람들을 ‘메스티소’라 부른다. 모두가 외부인들이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붙여진 이름들이다.

 

남미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소수 원주민만이 살고 있었다. 높고 험난한 산맥이 남북으로 뻗어있어 소수만이 그 산맥을 넘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원주민은 중미 즉 지금 멕시코 남부와 칠레 북부에 거주하면서 올메까문명(BC12), 마야문명(BC300 시작) 테오티와칸 문명( AD300 시작), 아스테카 문명 (14세기 초) 잉카문명(12세기, 태양신 인띠)이라 불리우는 삶의 자취를 남겼지만, 지금은 유적 흔적만 조금 남아있고 기록된 자료는 미미하다.

 

동로마제국의 멸망으로 동양으로 가는 육로가 막혀 황금의 땅 인도로 무역에 나선 스페인인 Cristobal Colon (원래 이탈리아인)이 1492년 10월 2일 중미 섬(큐바의 바하마, 아이티)에 도착했는데 그들은 그곳이 인도인 줄 알고 있었다. 스페인인이 중미지역 이동 이전까지 원주민은 멕시코에서는 Texacoco호수 인근 아스테카제국 (인구 2,000-2,500만 명 추산), 페루에는 Cusco를 중심으로 잉카제국 ( 인구 2,000만 명 추산) 등과 소수의 부족 국가가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Columbus가 America 대륙을 발견(사실은 침공, 교두보의 시작)했다고 배웠다. 이는 터무니없는 말이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발견이라니 유럽사람 처지에서는 그렇게 표현할 수 있지만 우리는 달라야 한다. 유럽인이 최초로 이곳에 왔다는 표현이 옳지 않은가.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지금은 역사의 이야기에 불과 하지만 당시 상황은 지금도 쉬지 않고 행해지는 존귀한 생명 살상 그 이상 종족 말살이었다.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은 물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여타 지배구조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긍정이든 부정이든 생명의 존엄성 하에 이루어 져야한다. 희생된 수많은 생명은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들딸들이며 믿음직하고 다정했던 형제 자매였을 것이다.

 

우리는 북미와 중남미 사람 중 멕시코를 경계로 북미에는 백인 일색 , 중남미에는 인디오 및 혼혈인 일색인 것을 일 수 있을 것이다. 북미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가족단위로 이주 (잉카 제국 멸망 100년 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원주민과의 투쟁에서 그들의 희생은 물론 수천만 명의 인디언들(원주민들)이 사라졌고 지금은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소수만이 명목을 유지하고 있다. 종교적 가치하에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God Bless America를 줄기차게 부른다. God Bless America와 함께 희생된 영영들의 명복도 빌어야겠다.

 

한편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중남미까지는 긴 항해를 해야 하므로 남성 위주의 이주가 시작됐다. 스페인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문화권이 형성된 도시를 집중적으로 점거하여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원주민이 서양의 신식무기에 의해, 종교적인 이유로 몰살되었다. 지금은 안데스 산속에서 소인만 살고 있다. 남성은 전쟁 에서 대부분 전사했고 여성만 남아 인종 혼합이 시작 됐다. 포르트갈인은 지금 브라질과 주변으로 이주하여 브라질은 비옥한 영토에 노동력의 필요로 아프리카인을 강제로 이송 시켜 노동혹사로 흑인 노예제도가 시작되었다. 그들의 아프리카인 후손 및 혼혈족 ( Mulato)이 지금 8-9천만 명이나 된다. 검은색에 잘 생긴 사람이 대개 이 혼혈이다. 노예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Carabian 지역 섬에서 정착했다 . 그래서 그곳 섬에는 흑인 일색이다 .

 

중미에서 오래된 유물이 유럽으로 약탈 되었으며, 이곳이 원산지인 감자 옥수수는 유럽 기근을 해결해 주었으며 화산폭발로 생긴 안데스산맥의 천연자원, 특히 사금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양이 유럽에 흘러들어가 종교적 건물에 금 치장을 할 정도로 유럽 경제에 효자 노릇을 했다.

 

요사이 한국에서는 지구눈물 시리즈 로 많은 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북극의 빙하가 감소함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를 다룬 북극의 눈물, 지구의 마지막 희망인 아마존 대자연이 사라져 가는 모습과 원시림에서 원시적으로 살아가는 소수 원주민(몽골인)이 현대 문명의 침투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익숙하지 않은 현대 문명과 갈등에서 오는 그들의 고통을 다룬 작품이 아마존 강의 눈물이다. 이 작품을 통해 남미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남미 페루에는 마추픽추라는 유네스코 지정 유적지가 있다. 스페인어로 ‘잃어버린 도시’ 또는 ‘공중도시’라는 의미이다. 태양신 ‘인띠’를 섬기는 한 부족이 건립한 잉카제국이 1572 년 9월 24일 스페인과 전쟁으로 멸망되기 전 마지막 저항요새인 ‘빌카밤바라’라는 곳이다. 기록조차 없어 후에 발굴된 이 곳에서 원주민들이 삶을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알 수 있으며 바로 이곳에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 도착 후 혹독한 지배 전쟁은 드디어 막을 내린다.

 

잉카제국의 수도는 쿠스코인데 얼마 전까지 페루의 수도였다. 지금 페루의 수도인 리마는 바닷가에 위치하면서도 200여 년간 거의 비가 오지 않았다. 날씨가 흐리면 가랑비 정도가 고작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 안개비에 그들 조상들의 한이 맺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 안개비를 잉카의 눈물 이라 부른다.

 

1492년 8월 2일 스페인에서 출발한 한 상선 선장의 우연한 실수가 존귀한 많은 인명을 희생시킬 원인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나의 지금 사사로운 언행이 먼 훈 날 어떠한 결과를 맺을까 생각하면 옷깃을 가다듬게 된다. 남미 산행 시 느낌이 떠올라 몇 자 적었습니다. 내 가슴에는 풀지 못하는 더 많은 것이 쌓여있습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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